9월 20일 오전 10:50분 연합뉴스에는 “바늘로 100번 찔러도 90도 열에도 끄떡없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헝가리 연구진 “지금껏 알려진 바이러스 중 최고의 탄성””이라는 부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윤고은 홍콩 특파원이 작성한 기사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라는 언론사의 기사가 원본이다. 기사는 첫 단락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가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해서 “실험실에서 바늘로 100번 찔러도, 90도 열을 가해도 죽거나 모양이 파괴되기는커녕 곧 원
“밀려 드는 기업의 돈이 학문적 과학의 진정성을 오염시킨다… 지식추구가 상업화의 방향으로 전활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이 어쩔 수 없이 뒤따른다. 경제적 성공을 갈망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편향을 주지 않을까? 과학자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회의나 불신이 스며들지 않겠는가? 학계와 산업계 사이의 구분이 점차 흐려진다면 학문적 과학과 기업 과학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책 의 한 구절 코로나19로 인도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1억명에 가까운 인도의 비공식 노동자들은 인도 대도시 경제의 버팀목이었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최형섭의 묘비문 중에서 기초과학을 위한 급진적 패러다임 전환유사과학과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은, 한국사회에 과학적 삶의 양식이 흘러 넘쳐, 유사과학의 활동영역이 축소되고 국한되어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유사과학은 결코 소멸시킬 수 없다. 그건 인류가 보유한 과학기술로 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면, 과학자는 과학의 전통과 가치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을 이 선언문이 강조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과학자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을 지지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민주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의 중요한 한 요소는 상실될 것이다."-해리 콜린스, 로버트 에번스 의 서문 중에서 유사과학은 과학을 빙자한다. 과학이 아니면서 과학을 참칭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로부터 과학이 얻어낸 권위를 악용해 대중을 현혹한다. 유사과학이 그토록 대중에게 효과
과학의 목적은 유사과학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내부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해 확실한 지식을 축적하는 활동이며, 외부적으로는 역사적으로 시험된 지식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사회에 합리성의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과학이 민주주의에 근거를 제공하는 활동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새로 나온 책, 를 참고).과학이라는 지식추구 활동의 본질이 바로 이 두가지 목적에 있다고 할 때, 유사과학을 탐색하고 제거하는 활동은 과학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저 자연을 탐구하
국내 회의주의자들의 역사는, 유사과학과의 전쟁보다 회의주의자들 간의 잦은 갈등과 다툼으로 점철되어 있고, 결국은 정치적인 우경화의 길로 빠져들어 유사과학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국내 회의주의자들이 주장의 근거로 삼는 대부분의 문헌들은 미국의 과학적 회의주의자를 위한 잡지 에 기대고 있다(은 현재 바다출판사에서 번역해 판매하는 잡지로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다). 스켑틱을 설립한 학자 마이클 셔머는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실험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그리고 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학자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에게 셔머의
뉴스톱에 쓴 글들 때문에 유사과학단체에게 고소를 당했고, 평범했던 과학자의 삶에는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평범한 시민이, 그것도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상아탑의 과학자가 고소를 당할 일은 거의 없다. 다양한 매체에 날 선 글을 써왔고, 때로는 대통령과 정권의 실책을 매섭게 비판해왔지만, 단 한번도 그 권력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은 없다. 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특히 지식인의 권력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중요한 활동이라 생각한다. 모든 권력은 견제받아야 한다. 특히 그 권력이 평범한 시민의
치매와 암, 그리고 눈먼 시계공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라 불리는 질병은, 뇌의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뉴런들이 나이가 들면서 사멸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을 통칭한다. 흔히 퇴행성 뇌질환으로 불리는 질병들로는 알츠하이머 외에도 파킨슨씨 병, 루게릭 병 등이 포함되며, 신경과학자들과 의생명과학자들의 상당수는 바로 이 질병들의 치료를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치매는 흔히 선진국형 질병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치매에 걸리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암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증가한 선진국형 국가에서 암과 치매 환자가 늘어날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정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정치인 안철수는 대통령 출마선언에서 SF소설가의 말을 인용했다. 그의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해졌지만,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단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윌리언 깁슨의 말은 맘에 와 닿는다. 안철수의 말처럼 미래가 이미 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래학과 미래학자들은 우리 주변에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래학이라는 분야 자체의 역사는 짧다. 구미에서 시작된 미래학은 1960년대 기술혁명에 의한 정보화시대 진입과 함께
정치인이 종교계에 잘 보여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무종교인이 한국에서 한번도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는건, 종교계가 가진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어떤 종교에던 귀의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던 종교는 불교였으나, 이제 그 누구도 개신교 세력의 강대함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는 언젠가부터 우파 정당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정치인이 교회에서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몇 차례 있다. 그 중 하나는 재판 중인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 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과 유사과학 혹은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경계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유사과학이 공공의 영역에 침투해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과학자들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동시에 과학자는 원래 자신의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게 옳다는 생각도 한다. 과학사회학자들은 흔히 과학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곤 한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지려 하는 걸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회사원들에게 내부고발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과학자 모두에게 내부고발자
학위논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부실연구를 아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학문에서의 엄밀함을, 모양만 그럴듯한 현란한 수식어와 관용구로 포장하는 행태는, 소칼이 를 통해 드러냈듯이 꽤 오래된 학계의 관행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학문을 논문으로 접하지 않는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잘 소화시켜 내놓았을 때, 그 책으로 학자들의 언어를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논문이 유통되는 세상은 학자, 그들만의 세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약 학술논문의 유통에 이해관계가 끼어들 경우, 학술논문
공자는 묻는 것을 예라고 부를 정도로 (是禮也) 학문적으로도 완성된 인간이었지만, 제자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인격적 완성을 이룬 (是丘也) 인간이었다. 그런 그조차 미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이비 군자인 향원(鄕原)이다. 맹자는 제자 만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다.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 공자가 사이비를 미워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일보는 와셋 사태 이후에도, 중국의 ‘비트’라는 엉터리 학술대회에 참석한 서울대 38명을 포함한 471명의 학자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자리 잡기가 어느 곳보다 어려운 한국에서, 그렇게 골라 뽑힌 인재들이 학계에서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학회와 엉터리 학회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필자 역시 하루에 엉터리 학회로부터 10개가 넘는 이메일을 받고, 훈련된 연구자의 눈에 그런 이메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엉터리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순진한 연구자가 있어서, 한 두번 그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한식 세계화를 극진히 챙겼다. 2009년에는 떡볶이 연구소를 차려 나랏돈 140억을 투입하기도 했고, 여기에는 간판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도 일조했다. 수 백억원의 나랏돈이 낭비된 이 애국 사업은, 이후 박근혜 정권으로도 이어져 도대체 뭘 하는지 알기 힘든 한식재단을 만들기도 했다(지금은 한식진흥원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 사업이야말로 나랏돈을 "국밥처럼 말아먹었다"고 했다. 김윤옥의 한식세계화에서 선정한 대표 품목이 떡볶이, 김치, 막걸리, 비빔밥이었다.'장기능 개선 막걸리' 받아쓰는 언론과 비판
연구자의 윤리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숭고하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유행해서였을까, KBS의 '끈질긴K' 코너가 '교수 딸 논문이 국제학술지에...누가 썼나 추적했더니'라는 기사를 썼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 과학기술계엔 연구와 논문을 둘러싼 처참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엔 국민일보에서 국내 교수들이 자녀의 이름을 논문에 공저자로 표기하고, 이를 자녀의 스펙으로 사용했다는 폭로를 했다. 이런 관행은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고, 그렇게 적발된 교수들 중 얼마나 처벌을 제대로 받았는지 알 수 없다.뉴스타파는 와셋/오믹스
어떤 과학자가 국내의 과학뉴스를 -물론 자신의 분야만 한정해서- 읽고, 잘못된 오류와 해석을 바로잡기로 마음 먹는다면, 아마 국내 뉴스 대부분을 손봐야 할 것이다. 시장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독점이나 과점, 혹은 부당거래를 단속하지만, 과학뉴스의 유통시장엔 공정거래위원회는 커녕, 그 뉴스를 감시해야할 심판관조차 없다. 심판이 없어도, 선수들이 게임룰을 잘 지키면 될텐데, 과학뉴스 바닥에선 심판과 선수가 짜고 경기를 치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과 과학자가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과장해서 기사를 내고, 기자는 검증도 없이 그 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