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유사역사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이 나왔다. 장신 박사의 (역사와 현실 115)이다. 아래 내용의 대부분은 장신 박사의 논문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이다.계연수는 를 편찬했다고 이유립이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계연수의 실존성에 대한 의문은 있었는데 이유립이 왜 계연수라는 인물을 내세웠는지에 대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이유립은 를 통해서 고성 이씨가문을 내세웠다. 각 편의 지은이인 이암, 이맥과 감수자 이기 등이 모두 고성 이씨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과거 이력 때문에 가 언론의 하이라이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가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거론된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정희 대표는 를 보고 마고력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라는 책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는 신라의 박제상이 쓴 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위서이다. 이 책을 보면 4~5세기 경의 인물인 박제상이 7언절구의 한시까지 짓고 있는 등 5~6세기 경의 금석
사관이란 무엇인가?유사역사학에서는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가리켜 식민사관을 따르는 식민사학이라 부르는 것을 즐겨한다. 그런데 정작 식민사관이 무엇이냐 물으면 별다른 답변이 없다. 이들은 대개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식민사관이다, 임나일본부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식민사관이다, 초기 기록을 불신하면 식민사관이다, 가 위서라고 말하면 식민사관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것은 유사역사학이 역사학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가 된다. 이들은 ‘사관’이라는 것이 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체 ‘사관
유사역사학은 사이비, 엉터리 역사를 주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엇이 엉터리이고 거짓인가를 판별하는 방법은 역사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별하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본 지면의 “유사과학이 ‘과학’이 아니듯,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이 아니다”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그런데 이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론이라고 올라오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가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만든 용어, 혹은 만든 용어를 원용한 것이라는 엉터리 반론이고(단 한 번도 주장 이외의 증거가 제시된 적
지난 컬럼 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은 1913년 단군교 정훈모 교주의 글 에서 그 이름이 처음 나왔고, 이후 1920년 정병훈의 에 전문이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단군교에서는 1921년에 기관지 을 통해 이 1916년 가을에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되어 1917년 1월 10일에 단군교로 보내져왔으며 보낸 사람은 계연수라고 주장했다. 그후 애류 권덕규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천부경에 대한 글을 쓰면서 관심이 급증되었다. 단재 신채호는 이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나라의 명산대천에 혈침, 즉 쇠말뚝을 박아서 지기(地氣)를 끊는 풍수 침략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산속 깊은 곳에 박힌 쇠말뚝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일들이 진행되었다.쇠말뚝을 땅에다 박아서 인재의 맥을 끊을 수 있다는 말 자체가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과학이 헤쳐나가고 있는 21세기에, 지표면에 말뚝을 박아서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발상을 진지하게 믿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풍수 중에서도 용맥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 수 없는 미신이지만 지
2019년 3월 5일자 교수신문에서 이덕일 신한대 대학원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秦)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조선의 황해도 수안까지 들어왔다고 우겼는데, 이런 주장을 남한 강단사학계에서 받아들인 결과 이런 왜곡된 만리장성 지도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지도를 제시했는데, 위 신문에는 지도의 출처는 명기되어 있지 않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지도이다. 위키피디아의 지도가 어느 정도 공신력을 갖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 지도를 보면 주홍색(한장성),
라는 희대의 위서가 판을 치게 된 근원을 알게 되면 매우 허탈해진다. 그것은 단지 글자 하나를 잘못 읽어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는 우리나라 최초로 단군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책이다. 에는 왕검은 등장하는데, 단군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에는 단군의 계보도 같이 나온다. 이 계보가 문제가 되었다.에 따르면 환인(桓因)이 있고 그 아들 환웅(桓雄)이 있다. 환웅의 아들이 바로 단군이다. 문제는 이 단군의 할아버지인 환인에게 있다. 환인의 ‘인’은 전해오는 에 因이라고
일반적으로 삼일운동하면 반사적으로 '민족대표 33인'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들 33인에게 백업 요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모른다. 33인은 잡혀갈 것이므로 그 후 시위를 지휘할 사람들을 백업요원으로 둔 것이다. 이들 15명을 33인에 포함하여 민족대표 48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책에는 뒤지니 49인으로 나오는데 언제부터인지 48인으로 변해 있다.)사람들은 흔히 만해 한용운 이외에는 민족대표가 모두 변절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한다. 정말 그럴까? 민족대표 중에는 옥고로 숨을 거둔 사람도 있고(4명), 이후 계속 독
를 내놓은 이유립에 대한 자료로 2007년에 9월에 나온 에 흥미로운 자료들이 있다(권말부록 : 의 진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이유립은 이승만 정부 시절에 구금된 바가 있는데, 그에 대해서 해당 기사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이승만 정부 시절 이유립은 이씨 왕조를 보존하자는 주장을 펼치다가 왕정주의자로 몰려 구금됐었다고 한다.”그러나 경향신문 1952년 7월 16일자 기사(2면 '왕정복구를 몽상 일당팔명을 검거문초중')를 보면 ‘이씨 왕조를 보존하자는 주장’ 정도가 아니었음을 알
1985년 6월에 가나출판사에서 나온 라는 책이 첫 번역본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광주농고의 국어교사였던 김은수였다. 이 김은수에 대해서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의 회고가 두차례 한겨레에 실렸다. 전교조 지도부 역사관에 영향 끼친 김은수 이 회고를 보면 김은수와 광주농고에서 같이 근무한 정해숙은 1982년에 김성호의 (지문사)이라는 책을 보고 “식민사관에 의해 고정된 우리의 역사관을 뒤집”게 되었다. 또 광주일
지난 가을에 중고책 사이트에 원본이라는 매물들이 올라왔다. 서너 권쯤 올라온 이 ‘원본’이라는 책은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그 중 한 권을 구매했다.이 책은 매우 특이한 물건이었다. 옛날 책처럼 생겼지만 1979년에 나왔다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전혀 없는 깨끗한 책이었다. 오래된 책은 박물관에나 있으면 모를까 헌책방에 나올 책이라면 이런 상태일 수가 없다. 이 책은 판권 표시가 기존에 나온 (광오이해사 발간본)와 달랐다(아래 사진 참조). 가격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유립이 붙였던 정오표
단군의 가르침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라는 글이 있다. 81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주의 진리를 담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에 대한 이야기에는 너무나 많은 거품이 끼어 있어서 그 실체를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따라서 의 비밀을 추적해보고자 한다.이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단군교 교주 정훈모의 이라는 첩(帖:종이를 접어놓은 것)이다. 1913년에 쓰인 것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천부경과 각사의 진리를 단전에 양정수련하야 심
유사역사학은 영어 pseudohistory의 번역어다. 우리의 근대 학문이 다 그렇듯이 이러한 개념들은 서구에서 발전한 것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슈도히스토리’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이 일제강점기의 유사종교라는 말에서 나왔다느니 하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유사라는 말을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나, 이 말에 역사학이라는 말이 붙어있다고 불편하다는 지적 역시 무의미한 이야기가 된다. pseudo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