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s les pavés, la plage!”너무 강한 느낌의 의역이라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인용해보면 “보도블록을 들추어라, 해변이 나타날 것이다!”정도의 의미인 68혁명의 구호가 떠올랐다.영화 의 로케지라는 명성에 로열패밀리의 거처로 쓰일 만큼 화려한 외관, 무엇보다 백만 여 점의 판화와 6만 5천 여 점의 드로잉, 6만 여 점의 현대미술작품이라는 컬렉션이 방문객을 압도하는 알베르티나 박물관에서 낯선 아시아 작가의 흑백사진을 접한 순간이었다.도로위에서 정면충돌한 두 대의 자동차, 연기인
초청작 상영이 끝나고 스크린 앞에 선 감독, 간단한 소개 뒤에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호감을 표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 열띤 분위기 속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차분하게 정리발언을 이어갔다.“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라 제 의견이 특별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저는 그저 한때 이 작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따름이니까요.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이죠. 영화를 불러주신 분이나 틀어주신 분, 또, 즐겁게 봐 주신 분 모두의.”필자와의 막역한 관계는 차치하더
긴장감이 흐르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자기소개를 부탁받은 20대 여성이 멍한 어조로 운을 뗀다. 약대 3학년, 딤섬도시락을 좋아하는데 점원의 ‘무료미소’는 싫단다. 뭐, 그런가 보지. 헌데 폭탄발언이 이어진다. 싫어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잔소리가 심하고 (아마도 홀아비?) 냄새나는’ 본인의 부친이란다. ‘어? 어?’ 하는 사이 ‘그런 사람이 사장인 이런 회사에는 추호도 입사할 생각이 없다’면서 직격탄! 이내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자 데스 메탈 밴드 활동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분출하고 있다며 샤우팅으로 마무리한다.“이상임다!”결과야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관방장관이 브리핑을 끝내고 사회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질의응답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정권 관련 인사가 직접 기자를 지목해 질문에 답하며, 경우에 따라 격론도 벌어지는 풍경을 연상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출입처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어느 순간 취재원과 기자라는 관계조차 모호해져버린 ‘이상한 연대감’이 지배하는 공간에서‘진실’이나 ‘시민의 알 권리’ 는 먼 이야기다. 오직 권력이 알려주고 싶은, 혹은 알기를 원하는 정보만 있을 뿐. 당연히 분위기도 차분할 수밖에 없다. 문자 그대로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한복이는 그런 말 할 만 했다. 그가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 돌판의 질기고 못생긴 무꽁댕이 같았던 그, 밟히고 또 밟히는 길가의 잡초같이 자란 한복이, 그에게도 수십성상의 세월이 실려 이제는 제법, 몸집은 작으나마 의젓하고 사려 깊은 현자 같은 눈빛을 볼 수 있었다.“나를 키운 거는 바람이고 빗물이고 마을사람이다.”― 『토지』 5부 2권 5장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중에서서재에서 박경리 대하소설의 한 구절을 찾아본 것은, 이후에 나온 수많은 글에 차용된 저 장의 제목 때문만
소극장은, 이 무렵이면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시선을 두지 않는 은행꽃으로 뒤덮이는 교정 인근에 있었다.경제 관련 글을 쓰던 커리어가 『21세기 자본론』의 토마 피케티를 만나 분수령을 이루던 연구실에서 도보로 대략 20분 거리. 전형적인 공연장의 외관과는 차이가 있어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던, ‘광장’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의 고마바아고라극장. 하지만 인류 지성사를 생각하든 꼬인 실타래가 몇 겹으로 얽혀있는 한ㆍ일 두 나라 연극사를 생각하든 이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크다
처음엔 좀 의아스러웠다.칸영화제에서만 세 번에 걸친 수상경력을 가진 구로사와 기요시가, 이제 와 왜 새삼스럽게 그간 도전해본 적 없는 시대극을 연출했는지.그러나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2004년 이후 출연작이 대부분 한국에 소개되어 이제는 결혼소식 등의 사생활 관련 기사까지 아무렇지 않게 국내매체에 보도될 정도로 친근한 배우, 아오이 유우가, 1950년대 우리영화의 고전 의 오선영(김정림 분)을 연상시키는 ‘고색창연한 말투’의 히로인으로 등장한지 대략 10분쯤 지나고 나니 알 수 있었다. 60대 중반을 넘
성에가 뒤덮인 유리창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시절 도망치듯 내려간 해운대에서 를 만났다.박찬욱 감독이 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해,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단짝 친구와 안데스산맥을 넘어 아마존으로 향한다는 계획 아래 낡은 모터사이클에 몸을 실은 주인공은 훗날 과테말라 정부군의 총탄에 스러진 뒤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68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에르네스토 ‘체(Che)’ 게바라였다.반군의 2인자에서 혁명정권의 관료가 되었다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리얼 슈퍼히어로
파리경제대의 토마 피케티와 공동프로젝트를 하는 연구실에 있었다.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수리경제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하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수식(fomula)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 바로 이 대목에서 시시때때로 청년기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한 사람의 프랑스 지식인을 떠올리며 실없이 웃곤 했었다.미셸 푸코.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프랑스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회자되는 그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한때 수장으로 재직하던 웁살라 프랑스문화원 강좌는 연일 성황이었으며 그 밖의 운영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팩트(fact)를 나열해보자.새벽 6시, 한 중년 주부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불을 턴다. 이유가 뭐였든 소리가 때마침 잠을 청하던 이들에게 방해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순간 신경이 곤두선 이웃 부부가 등장. 아니, 평소와 다름없는 심리상태였더라도 단잠을 깨우는 소음이 유쾌했을 리는 없다. 하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간신히 눈을 붙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테다. 그들이 어떤 어조로 운을 떼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내용은 대략 ‘지금 당장 그 행위를 멈추어 달라’는 것이었으리라.문제는 이 순간 이후 주부가 보여준 반응이다.오디오기기
“셰헤라자데는 밤마다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멈췄기 때문에 나머지를 듣기 위해 왕은 하루하루 처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 샤리아 왕도, 독자도,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욕망과 결말을 알고 싶다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더더욱 이야기에 빠져들 뿐이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전문분야보다 21세기 독자들을 위한 필독서 매뉴얼로 더 유명한 피터 박스올 서섹스대 교수(문학이론)가 『천일야화』에 대해 기술해 놓은 위 구절은, 외국어 구사력의 ‘다른 위상’을 몸소 체험했던 필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필자는 일반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강력사건을 접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법은 보통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처벌’ 즉, 엄벌주의(punitivism)다.당연할뿐더러 나름 의미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을 지지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집단 괴롭힘의 끔찍함에 분노하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일 테니까. 아울러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전통적 상식에도 어느 정도 삶의 진실은 반영되어 있다.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보자. 엄벌주의는 (사형을 제외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조차 전제되는 갱생의 여지를 차단해버릴 위험
인생의 80퍼센트 이상을 랩의 마니아로 살면서 주위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그게 노래냐’는 것이다.하지만 딱히 진지하게 답한 적이 없다. 애초에 랩 자체가 음악적 기교의 하나일 뿐더러 표현방법 또한 다양하니까.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구어와의 차이는 타임라인이 ‘일상의 시간’이 아닌 ‘인스트루멘톨 트랙(instrumental track)’에 맞춰져있다는 정도. 반드시 박자에 맞추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오프 비트). 기원에 관한 설도 여러 가지다. 1960ㆍ70년대 뉴욕의 블록 파티(block party)에서 기원
단언컨대 그는 지난 2월 의 미국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던 해외 영화감독 중 한사람이다. 같은 아시아의 영화인으로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밖에도 몇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봉준호 감독과 그는 친구다. 한 살 터울의 또래로 비슷한 시기 조감독 생활을 거쳤다. (봉 감독은 , 등, 그는 , 등) 그리고 2000년 둘 다 장편상업영화 감독에 데뷔했다. 봉 감독은 2월에 개봉한 로 4월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다.지겨운 식사, 그렇지만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졌다.그 짐승도 그랬을 것이다; 삶에 대한 상기, 그것에 의해요즘 나는 살아 있다.”- 황지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돌이켜보면, 신간코너에서 시집을 읽다 이 대목에 밑줄을 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던 1998년 12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도 세상은 편치 않았다.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해군이 거제도 남쪽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을 격침시켰다. 크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긴, 특별할 게 뭐겠는가. 연일 이어지던 기업들의 줄도산 소식, 친
신촌으로 향하는 내내 거리에 잔류해있는 겨울의 스산함을 느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높아지던 일상복귀의 기대조차 무색할 만큼의 고요. 오랜만의 야간외출이 갑작스레 날아든 부고 때문이었음을 상기하며 입술을 깨문다. 수면제 장복에 따른 우울증이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역설적으로 20여 년 전 어느 날. 봄볕 가득한 백양로를 가로지르며 나눈 대화를 소환한 것은 바로 그 때다.“말의 의미는 알겠는데 공감하긴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어.”“뭔데?”“응. 자란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통 모르겠던데...”“...?”“외
지난주는 말 그대로 코로나19의 한 주였다. 그 확산세가 매우 뚜렷해지고, 사망자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등 전국이 위기적 상황을 실감하였다. 사회 분야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19가 핵심적인 이슈로 다뤄졌고, 네티즌들의 관심도 이를 따랐다. (1) 정치 분야 주요 이슈정치 분야 이슈도 대부분이 코로나19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갑자기 대구 경북 지역에서 엄청난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정책적으로도 큰 혼란을 주었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에 있어서도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주요 키워드 역시 코로나를 중심으로 가장 피해가 심했던 대구와
졸업하자마자 잉글랜드로 떠난 A와 재회한 것은 봄꽃 소식을 기다리던 지난해 3월 목요일 오후였다. 이미 학교를 떠난 필자를, “제발 이름을 불러 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생님”이라 칭하는 고지식한 그도 반가웠지만, 화사한 표정으로 건넨 붉은 페이퍼박스가 내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모처럼 준비해온 선물이니까 사양 말고 먹어 볼까?”염치없이 솟아오르는 식탐.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만화가 쿠엔틴 블레이크의 유명한 로고가 그려진 상자에서 묵직한 느낌의 쿠키를 꺼내 물었다. 직항로로 한나절 거리를 날아온 캐러멜 크
지난 주에는 며칠 간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비교적 각 분야에서 다양한 이슈들이 나타났다. 정치 분야의 경우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진입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만 사회 분야에서는 지역사회 감염으로 의심되는 29번째 확진자 사례가 발견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생활/문화 분야에 있어서는 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면서 많은 후속 기사들을 만들어냈다. (1) 정치 분야 주요 이슈아무래도 총선 기간이다 보니, 전현직 국회 ‘의원’과 관련된 어휘가 많았다. 또한 총선을 준비하는 정계개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후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마침내 아카데미에서 4관왕에 오른 것은 아카데미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고 세계영화사 차원에서도 놀라운 사건이다. 아마 다양한 매체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해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기사가 나올 것이다. 여기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영화산업, 특히 미국영화산업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보자. 미국영화시장은 법적으로 외국영화 수입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외국영화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그래서 ‘기생충’ 수상 이전에 온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