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정세를 살펴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외교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늘 외교관계는 조금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근대 역사 속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이 여럿 있는데 정동과 덕수궁 일대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을사늑약의 현장인 중명전도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의 흔적 가운데 한 곳이 외국, 그것도 미국 워싱턴에 있습니다.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시절 설치한 공사관 건물인데요, 2018년에 비로소 복원이 끝나서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고 합니다. 이 공사관 건물과 당시 조선, 그
우리 아이가 자신이 입학하는 고등학교에 수학여행이 없다고 실망을 하더군요. 원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인데 수학여행은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보낸다는 점이 여행 이상의 뭔가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수학여행에 대한 열기가 덜한 편입니다. 3~40년 전에는 여행 자체가 귀한 때라는 점에서 수학여행은 중, 고등학교 시절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수학여행이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당시 수학여행의 전체 모습은 아니겠지만 잠시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수학여행(修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관심이 조금 뜸해지긴 했지만 매년 가축 역병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공장식 축사의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지만 지금은 일단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이 최고의 관심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매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농축산 관계자 분, 또 방역을 위해 여러 영역에서 참여하는 분들의 노고와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해 조선시대 가축의 역병, 그 중에서도 소의 역병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축 중에서 왜 소를 다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