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s les pavés, la plage!”너무 강한 느낌의 의역이라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인용해보면 “보도블록을 들추어라, 해변이 나타날 것이다!”정도의 의미인 68혁명의 구호가 떠올랐다.영화 의 로케지라는 명성에 로열패밀리의 거처로 쓰일 만큼 화려한 외관, 무엇보다 백만 여 점의 판화와 6만 5천 여 점의 드로잉, 6만 여 점의 현대미술작품이라는 컬렉션이 방문객을 압도하는 알베르티나 박물관에서 낯선 아시아 작가의 흑백사진을 접한 순간이었다.도로위에서 정면충돌한 두 대의 자동차, 연기인
“뜨거운 사내들의 세계”라든가 “남자냄새 물씬 풍기는” 같은 영화포스터 카피를 접하면, ‘사회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슴 한구석에 눌러놓았던 반골 기질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온다.뜨거운 사내? 그게 무슨 소리지? 몸이 더워지는 건 자율신경과 호르몬에 의해 유지되던 체온의 균형이 깨져서다. 남자냄새? 이것도 거슬린다. 신병훈련소의 악몽이 떠오르거든. 남의 돈을 투자받아 만드는 흥행 상품이 무슨 기능성 면도크림도 아닌데 왜 타깃을 제한할까. 그러나 거부감 드는 선전문구 조차 은근슬쩍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폭력을 갈등의 해결수
해설을 맡은 학예사의 영어는 금실이 수놓인 예복 위 호박 단추처럼 유려했다.노르웨이 오슬로 왕궁궁원 인근 입센 박물관.100주기를 맞아 그가 만년을 보낸 집에 만들었다던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인증샷’처럼 찍어놓은 서재에서의 사진은 부자연스러웠고 안내데스크와 전시실을 지나 맞닥뜨린 근대극의 세트 같은 공간도 딱히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거기 없었으니까.‘뭐가 그리 못마땅하냐’는 핀잔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작가를 어떻게 바라볼 지는 수용자(Rezipient)의 주관에 달려있거니와.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 필자에게 입센은
1998년 가을, 두 모자가 버라이어티프로를 보고 있다.수요일 밤 열시부터 한 시간 가까이 방영되는 TV쇼는 여러 가지로 센세이셔널 했다. 우선 진행자가 그랬다. 코미디언으로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다 영화감독으로 데뷔, 베니스국제영화제 금사자상을 거머쥔 천재. 못지않게 재미를 더해준 건 세계 각국에서 온 출연자들이다. 유학생, 회사원, 엔지니어,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그들은 톡톡 튀는 개성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타향살이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중학생 아들이 운을 떼었다.“외국인이나 혼혈인들은 지
메트로 12호선 솔페리노 역에 내려 걷기 시작한지 5분이나 되었을까. 둥근 천장에 대형시계가 유럽 어느 도시의 중앙역을 연상시키는 건물과 마주쳤다. 물론 느낌은 달랐다.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1900년의 시간 속으로 향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까.일찍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도 “도시가 아니라 세계(non urbs, sed orbis)”라 극찬한 파리가 19세기말부터 구가한 황금시대를 더듬어 볼 기회였다. 인쇄된 화집이 아니라 생생하게 보존된 작가의 켈렉션을 통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폭을 조절하며 너무 일찍 도착하지 않으려고 애썼
초청작 상영이 끝나고 스크린 앞에 선 감독, 간단한 소개 뒤에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호감을 표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 열띤 분위기 속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차분하게 정리발언을 이어갔다.“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라 제 의견이 특별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저는 그저 한때 이 작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따름이니까요.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이죠. 영화를 불러주신 분이나 틀어주신 분, 또, 즐겁게 봐 주신 분 모두의.”필자와의 막역한 관계는 차치하더
법률이 정한 교육제도에 따라 전일제수업을 받으며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하기 까지 꽤 오랜 기간을 학교에서 보냈다.하지만 이 모든 근거를 기념사진으로 찾는다면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이후 그 어떤 세레모니(ceremony)에도 가족이 온 적 없으니까. 작년 이맘때쯤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두어 살 터울의 형님과 친구처럼 대화하던 《뉴스톱》 동업자(그는 원래 성격이 좋기로 유명하지만)의 모습이 홈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가정환경 때문이었다고 해두자.하지만 이런 ‘다름’이, 입 밖에 내는 순
딱 한번 올라가 본 적이 있다. 입장료를 낸 관객이 모여 있던 객석 앞 무대에, 노래를 부르러.어릴 적 친구들과 밴드를 했다. 지금은 ‘그냥 샐러리맨 아저씨’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들 중에 드문 수완꾼이던 친구가 사촌형을 졸라 소개받은 주부(中部)지방 소극장의 오프닝퍼포먼스였다.얼토당토않게 보컬을 맡은 이유는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는 두 가지. 해외거주 경험으로 영어가사 발음이 자연스러운데 마침 음치가 아니었다는 것. 그래도 미니밴의 시동을 걸 때의 마음만은 전도유망한 신예 밴드였다. 차에 붙어있던 “OO수산” 상호가 밴드 이름으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으로 가보자.2월 2일 관악산에서 소수의 아군이 중공군 정예부대와 맞붙었다. 선두의 병사가 눈에 띤다. 그는 1950년 12월 중공군이 남하했다는 정보를 목숨 걸고 얻어낸 전공이 있었다. 전투는 전원 한국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와 47명의 동료들이 중공군으로 위장, 적진지를 파괴하다 신분이 노출되면서 벌어졌다. 실탄이 바닥났음에도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저항하던 그는 결국 적의 총탄에 스러진다. 만 스물여섯. 1950년 10월 한국군 지휘관을 제 발로 찾아가 총을 든 ‘중국집 청년’이었다.함께
긴장감이 흐르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자기소개를 부탁받은 20대 여성이 멍한 어조로 운을 뗀다. 약대 3학년, 딤섬도시락을 좋아하는데 점원의 ‘무료미소’는 싫단다. 뭐, 그런가 보지. 헌데 폭탄발언이 이어진다. 싫어하는 게 하나 더 있는데‘잔소리가 심하고 (아마도 홀아비?) 냄새나는’ 본인의 부친이란다. ‘어? 어?’ 하는 사이 ‘그런 사람이 사장인 이런 회사에는 추호도 입사할 생각이 없다’면서 직격탄! 이내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자 데스 메탈 밴드 활동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분출하고 있다며 샤우팅으로 마무리한다.“이상임다!”결과야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관방장관이 브리핑을 끝내고 사회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질의응답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정권 관련 인사가 직접 기자를 지목해 질문에 답하며, 경우에 따라 격론도 벌어지는 풍경을 연상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출입처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어느 순간 취재원과 기자라는 관계조차 모호해져버린 ‘이상한 연대감’이 지배하는 공간에서‘진실’이나 ‘시민의 알 권리’ 는 먼 이야기다. 오직 권력이 알려주고 싶은, 혹은 알기를 원하는 정보만 있을 뿐. 당연히 분위기도 차분할 수밖에 없다. 문자 그대로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한복이는 그런 말 할 만 했다. 그가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 돌판의 질기고 못생긴 무꽁댕이 같았던 그, 밟히고 또 밟히는 길가의 잡초같이 자란 한복이, 그에게도 수십성상의 세월이 실려 이제는 제법, 몸집은 작으나마 의젓하고 사려 깊은 현자 같은 눈빛을 볼 수 있었다.“나를 키운 거는 바람이고 빗물이고 마을사람이다.”― 『토지』 5부 2권 5장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중에서서재에서 박경리 대하소설의 한 구절을 찾아본 것은, 이후에 나온 수많은 글에 차용된 저 장의 제목 때문만
소극장은, 이 무렵이면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시선을 두지 않는 은행꽃으로 뒤덮이는 교정 인근에 있었다.경제 관련 글을 쓰던 커리어가 『21세기 자본론』의 토마 피케티를 만나 분수령을 이루던 연구실에서 도보로 대략 20분 거리. 전형적인 공연장의 외관과는 차이가 있어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던, ‘광장’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의 고마바아고라극장. 하지만 인류 지성사를 생각하든 꼬인 실타래가 몇 겹으로 얽혀있는 한ㆍ일 두 나라 연극사를 생각하든 이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크다
처음엔 좀 의아스러웠다.칸영화제에서만 세 번에 걸친 수상경력을 가진 구로사와 기요시가, 이제 와 왜 새삼스럽게 그간 도전해본 적 없는 시대극을 연출했는지.그러나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2004년 이후 출연작이 대부분 한국에 소개되어 이제는 결혼소식 등의 사생활 관련 기사까지 아무렇지 않게 국내매체에 보도될 정도로 친근한 배우, 아오이 유우가, 1950년대 우리영화의 고전 의 오선영(김정림 분)을 연상시키는 ‘고색창연한 말투’의 히로인으로 등장한지 대략 10분쯤 지나고 나니 알 수 있었다. 60대 중반을 넘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지면에 글을 쓰는 외에, 인문사회교양 관련 서적들을 번역ㆍ출간하고 있다고 소개한다.아이템을 선정하고 번역서를 기획, 편집자에게 제안해 성사될 경우 에이전시 역할까지 담당했던 책들의 성격이 대부분 비슷해 필자의 생각을 설명하는데도 유용해서다. 그렇게 2013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7년 7개월 동안 4ㆍ5개월에 한 권 꼴로 도합 스무 권의 책이 나왔다. 변역이 주업은 아닌지라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피로감은 없었다. 책으로 우리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일에 특별한 보람을 느꼈으니까.그런 필자의‘관련 도서
종종 흉내나 자기현시(self-display)와 혼동되는 연기에는 연출에 버금가는 역량이 요구된다. 상상력의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을 활용해 배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난이도의 작업이어서다.아울러, 어떤 표현의 장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지가 커다란 분기점으로 다가온다. 현장성이 중시되며 서사의 흐름에 맞춰 이뤄지는 연극에서의 연기와 달리, 영화에서의 연기는 장면이 쇼트(shot) 단위로 구성되고, 촬영 또한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연기자에게 무척 까다로운 일일 수밖에 없다. 미세한 동작이나 음성의 변화는 물론 숨소리까지 담기는 매
“보는 눈이 많다”는 말이 있다.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행동이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시선의 주체가 익명의 불특정다수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이와 같은 ‘시선’이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지는 지를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극찬을 받는 서사문학으로 그려낸 대표사례가 세계적 밀리언셀러 『헝거 게임』이다. 소설의 무대인 독재국가 판엠은 수도를 뺀 12개 구역에 대한 감시를 24시간 늦추지 않는다. 각 구역에서 동원된 아이들은 수도 시민의 여가를 위해 목숨 건 서바이벌 게임을 이어간다. 지옥도의 배경에는 최고명령권자 코리올라누스 스노우가 있다.
성에가 뒤덮인 유리창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시절 도망치듯 내려간 해운대에서 를 만났다.박찬욱 감독이 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해,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단짝 친구와 안데스산맥을 넘어 아마존으로 향한다는 계획 아래 낡은 모터사이클에 몸을 실은 주인공은 훗날 과테말라 정부군의 총탄에 스러진 뒤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68혁명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에르네스토 ‘체(Che)’ 게바라였다.반군의 2인자에서 혁명정권의 관료가 되었다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리얼 슈퍼히어로
해변이 보이는 언덕 위에 전화 부스 하나가 서 있다.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상대방과 화상통화까지 가능한 최근의 세태를 생각하면 뭔가 이질적인 느낌마저 드는 풍경. 안에는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와 이곳을 찾은 이들이 사연을 적는 노트 한 권이 놓여있다. 전화선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종이 위에 인쇄된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온다.“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바람소리나 파도소리, 혹은 새의 지저귐이 들린다면 당신의 마음을 전해주세요.”짐작할 수 있듯 전화 부스는 편의시설이 아니다. 아름다운 바닷가마을의 풍경에 이끌려 이주한 정
파리경제대의 토마 피케티와 공동프로젝트를 하는 연구실에 있었다.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수리경제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하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수식(fomula)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 바로 이 대목에서 시시때때로 청년기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한 사람의 프랑스 지식인을 떠올리며 실없이 웃곤 했었다.미셸 푸코.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프랑스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회자되는 그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한때 수장으로 재직하던 웁살라 프랑스문화원 강좌는 연일 성황이었으며 그 밖의 운영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