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다. 조기를 내걸고 경건히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이다.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어린 시절, ‘태극기를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반작용인지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를 들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국기에 대한 예의가 각별한 편이 아니다.하지만 또 한켠으로는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도 스며든다. 국가의 상징이라서가 아니라 국기에 서린 역사를 돌아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옷깃이 여며지는 것이다. 저 깃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과 땀을 쏟아붓고 자신의 일생과 영달은 물론 가족들의 안위까지 포기하며 싸우다 죽어갔
식상한 말이지만 5월을 두고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아침 저녁의 냉기도 말끔히 가시고 여름 문턱의 따사로움이 세상을 덮는데, 하늘은 푸르르고 어린이는 자라며 대학가를 라일락꽃 향기에 취하고 축제의 흥에 잠기니 참으로 멋진 달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5월은 T,S. 엘리어트가 잔인하다고 말한 4월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40년이 흘러도 슬픔과 분노가 샘솟는 5월 광주에 이어 이 달 23일 고향 뒷산 벼랑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아픔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돼.” 몇 년 전 중학생이었던 딸이 한일전 축구 경기를 앞두고 주먹을 부르쥐며 한 소리다. 나는 당연히 한껏 편안한 옷으로 의관정제하고 맥주 한 캔 들고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한일전의 스릴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열 너덧살이었던 딸이 그리도 야무지게 한일전 승리의 의지를 불태울 줄은 또 몰랐었다. “너희들도 그러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한국 사람이잖아. 몰라. 그냥 일본한테 지면 기분 나빠.” 나도 모르게 그 심경 내가 안다고 맞장구를 칠 뻔 했다.한일전은 그런 것이다. 한국 일본 축구팀이 4
연합이란 무엇인가. 우리 역사에는 우리가 참여한 ‘연합군’이 몇 번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명연합군’ 즉 조선군과 명나라가 함께 일본군에 맞섰다. ‘나당연합군’을 이룬 신라는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여원연합군’의 일원으로 고려는 몽골의 일본 침공을 거들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연합군’이지 우리가 대등한 ‘연합’의 한 축으로 전쟁에 나선 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기실 이런 ‘연합’(?)은 어느 대륙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강자는 강자의 입장이 있고 약자는 약자의 이해가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노원명 논설위원이 역대급 칼럼을 쓰셨다. 제목부터 매우 도발적이게 점잖다. 제목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졌는데 내용을 읽으면서 머금게 된 실소가 화사한 미소로 발전하고 급기야 폭소를 터뜨렸다가 박장대소로 마감하도록 만든, 희대의 명작이었다. 가히 2017년 4월, 북핵 정국에서 ‘한 달 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할 일을 상상하여 썼다는 이정재의 저 유명한 중앙일보 칼럼 , 그로부터 전개된 정상회담 정국 내내 우렁찬 성지(聖地)로 발돋움했던 문제작에 필적할 만하다. 그 독후감
나의 고등학교 국어 시간은 이상했다. 현대문학사를 배우면서 KAPF는 시험에 자주 나올만큼 중요한 문학단체였는데, 정작 KAPF의 문학 작품을 읽을 기회는 없었다. “잃어버린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한때 KAPF의 주도자였던 박영희의 회심 고백은 마르고 닳도록 인용되어 ‘박영희’는 아는데 그의 작품은 절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구인회’라는 문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분명히 아홉 명의 문인들로 구성된 모임일 텐데 거기서 필요한 이름은 이상, 이효석, 김유정, 유치진 정도였다. 그 외 다른 이름들은
언젠가 딸아이가 누군가를 두고 심각한 험담을 퍼붓기에 유심히 들었더니 이름이 정철이라고 했다. 뉘 집 자식인지 모르나 내 딸을 그리 괴롭힌다니 울화가 치밀어 정철이 그놈 뭐하는 놈이냐, 선생님한테 얘기했냐 하니 딸이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송강 정철 말인데 무슨 소리야 아빠. 사미인곡 속미인곡 같이 왕한테 아부를 왜 떨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고오오오.” 음 그러니까 송강 정철의 가사가 국어 시험 범위에 들어가면서 하도 외울 것이 많아 열받은 것이었구나.하기야 이해가 아니 가는 것이 아니다. 국어 교과서 안의
손흥민의 ‘원더풀’ 골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본다. 펠레건 에우제비오건 마라도나건 메시건 호나우두이건 그 누구를 대입해 봐도 꿀릴 것 없는 아름다운 골이었다. 상대방이 이건 반칙을 해서라도 막아야겠다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 폭풍 같은 질주, 거침없는 드리블과 대담한 슛 감각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찬탄을 금치 못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본골 장면을 연거푸 보다 보니 지금껏 축구 보아오면서 한국 축구팀 (청소년 포함) 선수들이 넣었던 멋진 골들을 기억 속에서 호출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건을 꼽아 본다. 1. 1977년
1991년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남북 여자 단일팀은 만리장성 붕괴라는 거대한 성과를 일구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걸 보면서 누구 못지않게 감동하고 또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게 될 남북의 청소년 선수들이었다.마침 운때가 맞은 것이 남과 북은 각각 이 대회 출전권을 획득한 상태였고 남과 북만 합의하고 FIFA가 승인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FIFA가 남북 단일팀 성사를 반신반의했을만큼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종 공
한국 이름에는 항렬이 있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족보를 짐작케 하는 경우가 있다. 김씨나 이씨 같이 흔한 성은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좀 드문 성의 경우 이름 두 자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조선 말기 양주 조씨 가문의 병(秉)자 항렬처럼.그 중 조병갑은 한국 역사의 악역으로 유명하다. 고부군수로 부임해서 온갖 패악질을 다 벌이고 사람들 피를 짜내다가 동학 농민군의 봉기를 유발시켰던 그 사람이다. 그 사촌형으로 조병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병갑보다 한 수 위의 탐관오리였고 벼슬도 조병갑과는 사이즈와 그레이드가 달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압도적일만큼 ‘명징’ (요즘 이 단어 때문에 하도 시끄러워서 굳이 써 봄)하다. 미합중국 대통령들은 각각 그의 시대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거나 그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인연이 깊은 이라면 역시 한국의 해방과 분단, 미 군정,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해리 S. 트루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디 트루먼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트루먼은 4선이라는 미합중국 선거 사상 전무후무한 당선 기록을 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
1968년 봄 베트남에 있는 미군들은 바짝 독이 올라 있었다. 월맹의 구정대공세를 물리치기는 했지만 미국 대사관이 한때 위기에 처하는 등 뜨거운 맛도 봤던데다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콩들의 준동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신경이 곤두선 미군들은 곳곳에서 무리수를 펼쳤고 1968년 3월 16일 최악의 참사를 빚어낸다. 미군 제 23사단 11여단 20연대 소속 1대대는 남베트남 쾅콰이 주 일대에서 작전 중이었다.베트콩 준동 마을로 꼽힌 성미 마을을 두고 연대장은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대대장은 “가옥을 불사르고 우물
제목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그 강렬함은 영화의 주제의식과는 별 관계가 없는 곁가지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 게임 프로그래머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리고 졸지에 아이를 빼앗긴 아버지는 아이를 향한 부정(父情)으로 좌충우돌한 끝에 아이를 되찾아온다는 내용이다.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이랄 수도 있는 내용인데 영화 도중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동학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을 때 검사는 아버지가 아이를 키울만한 소양이 부족하다면서 아
3.1절을 며칠 앞두고 흥미로운 기사를 만났다. 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자회견을 통해 ‘학교 내 친일잔재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친일 ‘잔재’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교가’(校歌) 대목이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가 113곳으로 확인됐다. 초등학교 18곳(공립 13곳, 사립 5곳), 공립 중학교 10곳, 고등학교 85곳(국공립 14곳, 사립 71곳) 등이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는 학교도 있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게 서울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상한 괴담이 돌았다. ‘유관순 괴담’이었다. 그 얼굴을 반을 가리면 남자 반을 가리면 여자로 보인다는 괴담에서부터 꼬리가 몇 달린 여우였다는 둥, 사진의 반을 가리고 보다가 별안간 초상화 속 인물이 눈을 크게 뜨면 죽는다는 둥의 학교괴담. 그런데 그녀를 남자로 보이게(?) 만드는 사진에는 사실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 그 사진은 감옥에서 찍은 것이었다. 여자라고 해서 사정 돌보지 않은 일본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행해 퉁퉁 부어오른 얼굴의 사진이었다. 그러니 반을 가리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보일 만큼 그 인상이
정초에 어느 매체에서 “화투 이래도 치시렵니까?” 하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화투는 “‘트럼프를 자기식대로 바꾼 일본인의 창조적(?) 얼’이 담긴 것으로 일본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게임 도구”이며 “왜색이 짙고 일왕을 상징하는 11월의 패(속칭 '똥광')를 얻으면 좋아하는 화투판은 그 자체로 일제의 잔재일 수밖에” 없기에 화투를 마냥 마음 편히 손에 쥘 수 없다고 비분강개하는 글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지만 화투에서 벗어난 ‘자주적 공동체 놀이문화’를 만들자는 대목에서는 한 번 크게 웃
조선 세종 18년, 세종이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봉수대를 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경은 친히 가서 두루 관찰하고 그 가부를 생각한 후에 기지를 정하여 축조하도록 하라.” 압록강 중류의 4군을 개척한 후 노심초사하던 시절인지라 세종의 당부는 지엄하면서도 절절했다. 세종의 말은 이어진다. “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의 사람의 상정이며, 더욱이 우리 동인 (東人- 조선 사람)의 고질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 고 하지만, 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 즉 세종은 ‘처
1898년 무술년은 이른바 ‘결정적인’ 한 해였다. 외국인들도 한국인들을 다시 보았다 할 만큼 만민공동회의 열기는 뜨거웠고, 개화와 입헌(立憲)을 향한 민의 역시 장엄하게 끓어올랐다. 황제가 이를 수용하고 정치의 중심을 잡으면서 유능한 관료를 등용해 개혁 정책을 펴 나갔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오늘날 경복궁에는 고종 황제의 고손자쯤 되는 ‘황제 폐하’가 거하고 계실 수도 있고, 황태자 전하의 결혼 뉴스가 신문을 장식하고 공주님의 연애 소식에 키득거리고 있었을지 뉘 알겠는가.그러나 그러기엔 고종은 너무나 자신의
1418년 무술년 8월, 고려와 조선을 잇는 역사의 풍운아 태종 이방원이 세자에게 왕좌를 물려준다. 번번이 말썽을 부리던 장남 양녕대군을 세자 자리에서 몰아내고 셋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지 두 달 밖에 안됐을 때였다. 신하들은 또 시작이다 싶었을 것이다. 툭하면 양위한다고 해 놓고 이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했던 태종이었다. 자신의 처남들이 자신이 양위한다고 할 때 ‘기쁜 빛을 보였다’면서 몰살시켰던 사람 아니던가. 신하들은 목청껏 부르짖었다. “아니되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그러나 이번에는 태종의 분위기가 달랐다. “호랑
양력으로는 한 해가 바뀌지만 음력 새해는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다. 육십간지로 보면 무술(戊戌)년이 저물고 기해(己亥)년이 저만치서 동틀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1959년 음력 설 이후 태어난 돼지띠, 기해(己亥)생들은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회갑을 두 번 맞을 수도 있을까? 2018년 9월 27일 인천일보는 인천시 허종식 정무경제부시장은 1899년생 이화례 할머니를 방문하여 장수 지팡이를 선물하며 그 장수(長壽)를 축원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화례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서 외부활동도 하는 등 정정하시다 했으니 기해년을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