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철 타고 오는데 젊은이들 몇몇이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동남아시아 국가대항전이라 할 스즈키컵 결승에 진출한 것을 화제에 올렸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축구 후진국들의 수준 낮은 축구 운운하는 걸 두고 쓴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월드컵 몇 번 나갔다고 축구 ‘선진국’도 아닌데다가 기실 우리 축구 역사는 거의 ‘동남아시아 축구사’에 집어넣어도 될 정도로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엮인’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메르데카배니 킹스컵이니 하는 대회에서나 한국은 기를 펼 수 있었고 한국이 주최한 ‘박스컵’, 즉 박대통령배
1994년 10월 15일자 중앙일보는 사단법인 다물민족학교에 대해 기사를 싣고 있다. “「다물」이란 「되찾는다」「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의 우리말. 과거 우리 선조들이 누비던 만주와 시베리아를 우리 땅으로 되돌려놓자는 의미”라면서 엉뚱하게도 이 학교가 “민족주의 사학을 현대적으로 해석, 노사관계에 적용함으로써 근로자의 인식전환과 신바람나는 일터분위기 조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더 놀라운 것은 “1990년 10월 포철이 기업으로는 첫 입교생을 낸 뒤 주요 대기업으로 확산,지금은 32개 기업이 매년 정기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거기서 ‘본질’을 캐치해 내는 것이 중요한데 현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기 일쑤다. 현상에 빠져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눈뜬 봉사와 다를 바 없다는 극언은 그래서 나올 것이다. 그런데 가끔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고서 그 본질을 만방에 설파하려는 사람들이 잘못된 ‘매개’, 즉 근거로 현상과 본질을 연결하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수역 사건의 현상과 본질은?갑자기 ‘이수역(驛)’이 엄청나게 떴다. 사실은 이수역이 아
1948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다. 역사 교과서에 유달리 굵은 글씨로 쓰일 사건들이 줄을 지어 벌어졌다 우선 남과 북의 정부가 1948년 8월 15일(남), 그리고 9월 9일(북) 수립됐고, 그를 위한 총선거가 남북 공히 실시됐다. “38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면서 김구가 북한행을 택한 것도 1948년의 일이었고, 그 해 4월 3일에는 제주도에서 단독선거 반대를 외치는 좌익들이 봉기했으며 이 봉기와 관련하여 10
언젠가 독립기념관에 갔을 때 큼직한 돌판에 쓰인 구호(?)를 본 적이 있다. “나라는 망해도 의병은 죽지 않는다.” 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존재한다던 나철 선생의 말을 조금 바꾼 것인지 다른 의병장이 내지른 한맺힌 절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구호 앞에서 꽤 오랫 동안 서 있었다. 의병. 의(義)를 위해 떨쳐 일어선 병사들. 아니 병사가 아니었으나 병사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희미한 얼굴들이 눈 앞에 둥둥 떠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 종영됐다. 그 마지막회에 연출된 의병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척 낯익은 모습이었다. 체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간첩, 즉 정보원의 종류를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 등 오간(五間)이다. 향간은 적국의 주민을 활용하거나 적국의 주민으로 만들어 정보를 캐내는 간첩이다. 이른바 고정간첩. 영화 의 바보 김수현과 그 일당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내간은 적국의 관리들을 매수하는 일이다. 삼국 시대 김유신은 조미압이라는 이를 백제 좌평 임자의 하인으로 들여보낸다. 향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임자까지 포섭한다. “‘나라의 흥망은 미리 알 수 없으
영화 이 화제다. 한국 정보기관원이 치밀한 공작을 거쳐 북한 측의 신뢰를 얻고, 북한의 최고위층과도 접촉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떠들썩한 액션과 불꽃 튀는 총격전 없이 ‘구강 액션’만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데 웬만큼 성공한 듯 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대목이 있으니 확언은 할 수 없으나 흑금성 박채서는 한국의 정보원, 깨놓고 말하여 ‘간첩’으로는 유일하게 북한의 최고위층에 접근했던 사람이었다. 북한측도 남한의 고위층에 스파이망을 심어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한이 하는 일을 북한이 왜 못하겠는가.내가 속한
대한민국 사람치고 어려서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 짐의 여관에 투숙한 한 늙은 ‘선장’. 그리고 그를 찾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들. 그 선장은 왕년의 해적이었고 엄청난 해적들의 보물이 숨겨진 보물섬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찾아온 이들은 보물을 탐내는 옛 해적 동료들이었다. 어느 날 선장은 갑자기 쓰러져 죽고 숙박비를 받아낼 계산으로 짐을 뒤지던 짐과 어머니는 보물 지도를 찾아낸다. 짐은 마을 유지 트릴로니와 의사 리브지 등과 합세하여 보물섬으로 떠나게
여든 다섯 살 오래 살았다. 그는 어쩌면 내게 영원한 ‘치안본부장’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함 치안본부장은 강민창이라는 이름과 뻣뻣한 레고처럼 강고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임기는 짧았다. 1986년 1월 10일 전두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고 1987년 1월 21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 직위를 내려 놓았다. 그 1년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의 거대한 굴절과 용틀임이 준비되고 끓어오르던 시기와 기묘하게 일치한다. 그가 왕무궁화 네 개를 달고 치안본부장에 올랐던 1986년은 아
1950년 10월 1일 국군은 38선을 돌파한다. UN군도 뒤를 이었다. 북진통일의 우렁찬 함성이 울려퍼졌고 가을 단풍이 채 지지 않았을 10월 26일 국군 6사단은 압록강변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게 북진은 쾌속이었지만 뒤이은 후퇴는 그에 못지않게 빨랐다. 북진에 눈이 어두워 앞뒤 가리지 않고 압록강 두만강을 향해 달려가던 국군과 UN군의 뒤를 중공군은 모질게 후려쳤고 국군과 UN군은 괴멸적 타격을 입고 후퇴한다.함경도 지역의 경우 더 형편이 좋지 않았다. 흥남은 일종의 덩케르크 (2차대전 당시 나찌에 패한 영국군의 마지막 탈출지)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던져지면 웬만한 사람들은 제꺽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 유명한 E.H. 카의 명제다.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대화’(dialogue)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대화란 대등한 입장에서 주고받는 것이다. 즉 일방적인 교육이나 설득이 아니다. “역사로부터 배우라”는 근엄한 충고가 난무하고, 현재의 필요에 의해 즐겨 과거가 호출되는 현상은 카의 뜻과는 다소 어긋나 있다.“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
며칠 전 에서 천안함을 다루었다. “어뢰일 가능성은 십원 반푼어치도 없다”는 솔깃한 인터뷰를 내세운 방송이어서 간만에 ‘닥본사’ (닥치고 본방 사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청 소감은 대실망이었다. 8년 전 천안함 사고 직후 흘러나왔던 의혹들을 끌어모은 방송에 불과했고 폭발설을 부인하는 주장들에는 근거가 없었다. 천안함을 건져 올린 이들의 인양 실력의 전문성이야 부정할 것이 없겠으나 비접촉 수중 폭발로 인한 버블 제트가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합조단의 결론 앞에서 “다른 폭발했던 배들과 천안함은 모양이 다르
이승복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부르짖었다가 무참하게 죽은 이승복 어린이를 ‘반공 영웅’으로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동상을 세워 가며 그 장렬한(?) 최후를 학생들에게 주입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작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데에 뜻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서 그분과 나는 첨예하게 갈라졌다. 나는 1968년 말 울진 삼척지구에 인민군 유격대가 대거 침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12월 5일 한 화전민 가족이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몰살당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지만 그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첫 경기를 시종일관 지켜봤다. 기대를 하는 자체가 욕심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곧 망상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안타까웠다. 어렵게 만든 단일팀이 웬만큼의 선전을 해 주면 좋았겠지만 급수가 다른 상대를 어찌 투지와 열의로만 감당할까. 정신력이라는 건 실력이 비슷할 때나 플러스 알파지 기량이 턱없이 차이가 날 때의 정신력은 오히려 마이너스다.그 와중에 빛난 건 역시 골리 신소정이었다. 신소정은 스위스전에서 52개 슈팅 중 44개를 막아냈다. 쉽게 잡은 것도 있었으나 골과 다름없는 상황도 많았다. 자칫하면
현직 검사에 대한 전직 고위 간부의 성추행 사건 폭로로 벌집이 된 법무부에서 지난 2일 흥미로운 발표 하나가 흘러나왔다.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위촉한다는 것이었다. 권인숙. 그 이름 석 자에 만감이 교차한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으고 눈시울을 터뜨린 영화 보다 한 해 앞, 1986년 한국을 달구었던 한 사건과 함께.1986년 5월 3일 이른바 인천 사태가 벌어졌다. 제1야당 신한민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인천 및 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리던 날,
1991년 2월 12일 탁구와 청소년축구의 남북단일팀 합의 선언이 나왔다. 그 동안 쟁점이 돼 왔던 남북 교차 훈련 일정 문제는 북한쪽 주장대로 일본 전지훈련으로 대체하기로 했고 공동단장을 고집하던 북한이 한 수 접어 탁구팀 단장은 북한이, 청소년축구팀 단장은 남한이 맡기로 하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단일팀의 선수단기는 하얀 바탕의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은 것으로, 단가는 아리랑으로 확정됐다. 수십 년 동안 뜸은 들였으나 한 번도 뚜껑을 열지 못했던 밥솥이 열렸다. 당장 두 달 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
분단은 한반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영위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 드리워진 그림자였다. 스포츠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장 두드러졌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시산혈해를 이룬 전쟁이 휴전으로 대충 마무리된 뒤 스포츠는 남과 북의 대리전의 현장이었고, 남북대결이라도 벌어질라치면 출전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지면 죽는다”는 듯 눈에 불을 켜야 했다. 평화의 제전이건 세계인의 축제이건 뭐건 관계 없었다. 북한이 뭘 하려면 무조건 막아야 했고 남조선이 까불면 덮어놓고 밟아야 했다. 남한 해방직후 NOC 먼저
영화 의 드라마 부분은 6월 10일 6월항쟁이 막을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후는 실사다. 전국적으로 펼쳐진 6월항쟁을 거쳐 6월 9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의 장례식의 100만 인파에 이르는 장엄한 역사의 퍼레이드는 어느 드라마보다도 극적이고 어떤 시나리오보다도 감동적이다. 회사 후배가 영화를 보고 와서 물었다. “진짜로 저랬어요?” 대답은 간단했다. “영화보다 더했어.” 1987년 6월 대한민국이 내뿜었던 빛과 열기의 세계로 잠깐 돌아가보자.모든 역량은 민정당 전당대회일 6월 10일에 집중2부
영화 을 본 아들은 궁금한 점이 많았다.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한국 역사를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2부 글은 1987년 상황에 대한 아들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때 사회 분위기는 어땠어요?"1987년보다 한 해 앞선 1986년은 매우 우울한 한 해였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졌다. 전편에서 언급한 성고문 사건은 그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86 아시안 게임을 성공리에 치른 뒤에는 더 기세가 등등했다. 급기야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학교에서 어마어마
영화 을 두고 ‘아재’와 ‘아짐’들 사이에서 기대와 설렘이 그득하다. “몇 번이고 보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며 친구들과 영화 볼 약속을 잡는 축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며, 스크린 너머로 그 시절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나는 전자다. 아니 후자 쪽에 속했다가 오히려 전자가 됐다. 이유는 회사 후배와의 점심 자리에서 나왔다. 며 며 연말연시 영화 기대작들을 얘기하는 와중에 도 들먹여졌는데 후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탁 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