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MBC 최승호 신임사장의 행보에 날을 세웠다. 지난 11일 장 의원은 최승호 사장이 인사를 단행하여 각지에 ‘유배’됐던 이들을 복귀시키는 한편 구 김장겸 사장 체제 하의 주요 보직자들을 물러나게 한 데 대하여 “가히 점령군답다.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나 보다”라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이 인사는 ‘피의 숙청’이요 ‘공포의 보도 개입’이며 ‘보도국 기자들을 입맛에 맞게 줄 세울 수 있는’ 만행(?)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실 어안이 벙벙하다. 지난 정권 내내 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스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열렸다. 2차대전 후 유럽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었다. 그리고 사상 최초로 아시아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나선 대회이기도 했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네덜란드령 동인도 (인도네시아) 팀도 있었으나 정식 국가의 대표팀으로는 사상 첫 도전이었다. 그 영광스런(?) 도전의 주인공이 바로 한국팀이었다. 월드컵 극동 예선에는 한국 대만 일본이 편성돼 있었다. (오늘날의 중국, 즉 중공은 국제 스포츠무대에 나서지 않을 때였다.) 대만은 예선에 출전하지 않았고 결국 월드컵 티켓은 한일전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편성이 끝났다. 우리는 F조, 상대는 자그마치 독일, 스웨덴, 멕시코다. 어느 한 팀 만만한 팀은 커녕,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돋지 않는 상대들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망했구나 암담한 맘으로 우리와 상대할 팀들의 면면을 들여다보자니 슬며시 까마득한 옛날 기억과 사연들이 뭉개뭉개 피어오르기도 한다. 독일, 스웨덴, 멕시코는 대한민국 축구의 초기 역사에 저마다 특이한 추억의 고리들을 걸어 놓은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연들을 잠시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보자. 첫 출전 런던올림픽에서 만난 멕시코ㆍ스웨덴 축
에 이어서...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몽진했으니 각도의 수령방백은 관내 군병들을 모아 속히 근왕(勤王)하라는 소식은 팔도에 퍼졌다. 팔도의 감사와 병사(兵使, 병마절도사)들은 장정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고 머릿수가 채워지는 대로 남한산성을 향해 행군하기 시작했다. 남한산성 농성을 시작한 지 2주일가량 뒤 드디어 강원도 근왕군이 남한산성 근처 검단산에 올라 횃불을 밝힌다. 남한산성 안에서도 북을 올리며 환호했다. "이제 뭔가 되어 가는가보다." 실제로 그랬다. 충청도 병력은 죽산까지 와 있었고 경상도 군대도
밖에서 벌어진 사건들 ①영화 만큼 화제가 된 영화도 드물 것이다. 개봉 때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며 댓글란을 채웠고 저마다 지닌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영화를 분석하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이 잘 되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한 이들이 수도 없었으니까. 화려한 말잔치가 그에 필적하는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영화를 통해 재연된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의 역사가 또 한 번 양강(兩强)의 틈바구니에 끼어 전쟁의 위협에 수시로 시달리고 있는 한국인들의 입천장을 간지럽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