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법부, 여론에 굴복하다
상태바
인도 사법부, 여론에 굴복하다
  • 이광수
  • 승인 2019.11.14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의 인도 이야기] '아요디야 분쟁'에 대한 인도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 의미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큰 분쟁이면서 그 후 30년 가까이 인도를 학살과 테러의 나라로 만든 진앙이라 할 수 있는 아요디야Ayodhya 분쟁에 대한 최종 판결이 119일 인도 대법원에서 나왔다. 아요디야 분쟁 사건은 1992129일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asjid라는 무슬림의 모스크를 힌두 극우 조직의 무장 행동대원들이 침입해서 파괴해버린 후 일어난 일련의 정치 사회 법이 여러 층으로 중첩된 사건이다. 힌두 집단은 이 사원의 원래 터는 라마Rama 신 탄생지에 라마를 숭배하는 힌두교 사원이었는데 무갈Mughal제국의 창시자 바바르Babur1526년에 이 사원을 허물고 그곳에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는 주장을 해왔고, 무슬림 집단은 이미 400년이 넘은 옛날 일이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근대 법과 국가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의 아요디야(Ayodhya) 최종 판결 관련 보도. 'CNN-News18' 유튜브 화면 갈무리
대법원의 아요디야(Ayodhya) 최종 판결 관련 보도. 'CNN-News18'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아요디야 분쟁 문제는 영국 식민 시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소위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영국 식민 세력은 커나가는 민족의식을 제어하기 위해 힌두와 이슬람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일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전에도 있기는 했으나 매우 심각하지는 않은 두 종교 공동체 간의 갈등이 점차 심해졌고, 힌두 최고의 성지이면서 이슬람 최고의 제국 시조가 세운 사원이 자리 잡은 이곳이 갈등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두 집단 간에 종교적 갈등이 생기자 1859년에 영국 행정부는 이곳에 펜스를 설치해 사원 터의 내부는 무슬림이 종교 행위를 하게 하고, 건축물 외부는 힌두가 자신들의 종교 행위를 하게 조치하였다. 이후 독립이 되어 가던 과정에서 두 종교 공동체 간의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고 결국 나라가 두 종교를 기준으로 힌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단되었고, 간디는 이슬람과 화해를 주장하다 힌두 광신주의자에 의해 피살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서 힌두 광신도들이 과거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파괴된 힌두 사원들을 모두 복원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이곳 아요디야는 좀 더 구체적으로 분쟁의 진앙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49년에 힌두 광신자 몇 사람이 라마 신의 상()을 모스크 내부에 몰래 들여다 놓고 라마 신이 기적적으로 떠올랐다고 거짓으로 선동하면서 군중을 모스크를 허물고 그 위에 라마 사원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후 간디와 네루가 이끌어 온 인도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Congress)40년 가까이 일당 지배 체제를 구축해 왔고, 그러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불거지지 않은 채 잠복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싶은 야당이 노선을 힌두 근본주의로 수정하면서 1984년 당시에는 한낱 작은 야당이었던 인도국민당Bharatya Janata Party(BJP)이 이 문제를 본격적 정치 이슈로 삼았다. 인도국민당의 방계 세력인 세계힌두회의Vishwa Hindu Parishad(VHP)1984년에 모스크 파괴 후 힌두 사원 건립을 구체적으로 추진해나가기 시작했고, 인도국민당은 전국적 수준의 정치 투쟁으로 격상시켰다. 1991년에는 인도국민당이 이 아요디야가 위치한 인도에서 최대의 주인 웃따르 쁘라데시Uttar Pradesh 주 의회에서 이겨 주 정부 여당으로 부상하면서 당시 연방 정부의 여당인 인도국민회의당을 압박했다. 연방 정부 여당인 인도국민회의당은 거대한 힌두 근본주의자들의 폭력 행위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주 정부 여당인 인도국민당은 방관 내지 사실상 선동을 하였다. 드디어 1992126일 전국에서 모인 힌두 극우 단체 행동대원들은 폭력을 사용하여 모스크를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무슬림 2,000여 명을 죽였다. 그리고 그 여파를 몰아 40년 만에 인도국민당이 연방 정부를 차지하였다. 그 후 2002년 현 연방 정부 수상이던 모디Narendra Modi가 주 정부 수상이던 구자라뜨Gujarat 주에서 한 달 넘게 무슬림 학살이 자행되면서 적게는 2,000 명 많게는 5,000 명이 힌두 광신도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여성은 강간당하고 재산은 파괴당했다. 그러자 2008년에 파키스탄에 근거를 둔 이슬람 테러집단이 인도 최고의 경제 중심지인 뭄바이Mumbai에 해상으로 침투해 들어와 호텔을 점거한 채 사흘 간 테러를 벌여 힌두 (내지 인도인) 수 백 명이 희생당하기도 했다. 그 후 2009년에 힌두주의를 앞세운 인도국민당의 모디가 연방 정부의 수상이 되었고, 그는 5년 만인 2019년 봄에 있었던 총선에서 역사상 유래 없는 압승을 거두어 수상에 재선되었다. 모디의 당시 공약 가운데 하나가 아요디야 모스크 터에 힌두 라마 사원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인도공화국이 성립한 후 1950년부터 힌두 정당 및 단체와 이슬람 종단이 번갈아 가면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10930일 알라하바드Allahabad 고등법원은 부지를 소송의 세 당사자인 힌두 사원 측, 힌두 종단 측, 그리고 이슬람 소송 제기 측에게 균등 분할을 하도록 판결하였고 이에 힌두 측이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여 이번 9일의 최종 판결이 나오게 되었다. 최종 판결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각하고, 사원 터는 힌두 측에게 모두 양도하고, 이슬람 측에게는 대체 부지를 제공하여 그곳에 모스크를 지으라고 판결하였다. 대법원은 이제 분쟁의 씨앗을 다 제거하고, 평화 공존을 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에 이슬람 소송 당사자는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정치권력에 대법원 스스로 굴복한 판결일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로서는 소송 당사자가 제3의 부지를 받아 그곳에 이슬람 모스크를 짓는다는 장담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인도는 헌법에 의해 분명히 세속 국가를 천명한다. 거기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부 권력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사법부 독립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보면 그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이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 신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국민 여론으로부터 독립한 것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1992년 이후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는데 앞장 서 선동하던 당시 야당 지도자들과 여러 단체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인해 당시의 파괴와 살상 행위가 정당화 되지는 않았으나, 법원이 엄연한 세속국가에서 종교 공동체 간에 벌어진 민사 문제를 신앙의 잣대로 삼아 사원을 건축하도록 판결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법 외적인 논리다. 450년 전 정복 과정에서 세운 역사적 사건을 문제 삼으면 인도 땅에 서 있는 모든 무슬림 사원이나 건축물은 모조리 파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무시한 채 현재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판결을 한다면, 인도 전역에 서 있는 이슬람 건축물은 경우에 따라서 엄청난 파괴를 당할 수도 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지만, 일부 극우 힌두주의의 한 재야 역사연구가는 타지마할Taj Mahal도 원래 힌두 사원이었던 자리에 그 사원을 파괴하고 지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현재로선 재고의 여지가 전혀 없지만,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번 판결에 의하면 언젠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부터 연방 정부의 수상으로 힌두 민족주의를 강화해온 모디 수상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이번 판결이 누구에게도 승리나 패배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이날 발표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는 시크교 순례길 개통과 이 아요디야 판결을 묶어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은 일이라고 환영한 것은 자신이 속한 힌두 민족주의가 승리했음을 표명한 것이라고 본다. 반면, 이슬람 측은 현재로서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 불만을 털어놓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언제 새로운 차원의 테러가 터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판결에 대해 야당인 인도국민회의당도 불만을 털어놓지 못한다. 그것은 현재 인도의 정치 상황에서 압도적인 표를 가지고 있는 힌두 민족주의에 대해 야당이 반발할 경우 그 정치 생명이 완전히 끝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비록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그 표의 혜택을 크게 받지만, 그렇다고 그 현상을 비판한다고 해서 야당이 수혜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조속히 종식되어 정치의 프레임이 바뀌기만을 기대하겠지만, 여당 측에서 가만히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일단락이 되었음에도 이렇게 정치권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도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자)Communist Party of India(ML)이 낸 성명서가 눈에 띤다. 그들은 이번 판결로 인해 1992126일에 자행된 바브리 모스크 파괴 행위가 정당화 된 것은 아닌데, 재판부는 모스크 파괴 행위를 위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부지 전체를 힌두사원 건설 부지로 판결하였으니, 그것은 법적으로 일관성이 상실된 것이라고 논평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법원이 비록 비판은 받을지언정 법적으로보다는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지속되는 두 종교 공동체 간의 유혈 분쟁이 이제는 종식되기를 강력하게 바라는 희망에서 나온 주문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렇게 이성적으로 흘러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번 판결로 인해 법이 민심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드러났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광수     최근글보기
부산외국어대 교수(인도사 전공)다. 델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락국 허왕후 渡來 說話의 재검토-부산-경남 지역 佛敎 寺刹 說話를 중심으로- 〉 등 논문 다수와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등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뉴스톱 댓글달기는 회원으로 가입한 분만 가능합니다)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