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갈라파고스에 '새로운 진화'를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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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갈라파고스에 '새로운 진화'를 부르다
  • 박재용
  • 승인 2019.12.12 07: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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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의 진화 이야기] 갈라파고스의 두 계절, 그리고 바다 이구아나

갈라파고스는 남미로부터 1,000km 떨어진 적도에 걸쳐진 섬들의 모임입니다. 하와이처럼 맨틀에서부터 올라오는 마그마의 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섬들입니다. 적도부근이니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두 개의 계절로 나뉩니다. 남극부근에서 올라오는 훔볼트해류가 거센 6월에서 11월은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섬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입니다. 12월에서 5월 사이에는 훔볼트 해류가 약해진 틈을 타서 따뜻한 파나마해류가 내려오면서 바다는 따뜻해지고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가 되지요.

바다 이구아나
바다 이구아나

 

그곳의 바다 이구아나를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다의 해초를 먹고 사는 파충류입니다. 처음 남미에서 표류해온 이구아나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를 상상해봅니다. 마침 건기였다면 초식동물인 이구아나들이 먹을 수 있는 건 선인장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땐 선인장들도 자기를 갉아먹는 다른 동물이 없었을 터이니 가시가 그리 많진 않았겠지요. 아예 없었을 수도 있구요. 이구아나는 선인장을 먹으며 건기를 버팁니다. 홀로 표류해온 터라 자식을 낳기도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만 사실 파충류들은 처녀생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수컷이 필요 없다는 거지요. 마침 섬에 닿은 이구아나가 암컷이라면 처녀생식을 통해 자손을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운 좋게 표류해온 수컷이 있으면 다시 짝짓기를 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섬에 이구아나들이 늘면서 선인장들은 다시 가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먹기가 상그라와지죠. 더구나 천적이 없는 섬에서 이구아나의 개체수는 나날이 늘어만 갑니다. 먹는 입은 많고 먹을 건 부족한데 가시까지 나는 상황. 우기에는 그나마 이것저것 먹을 것이 많은데 건기가 되면 춘궁기마냥 고되기만 합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구아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더 높은 산으로 가고, 하나는 해변가로 가지요. 갈라파고스 섬의 고산지역에는 건기에도 가랑비가 내립니다. 차가운 훔볼트 해류를 따라 차가와진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가면서 옅은 구름을 만들고, 이 구름이 가랑비를 뿌리는 거지요. 그래서 아래는 건조한 사막기후지만 산 중턱 위쪽은 녹음이 짙습니다. 한 부류의 이구아나는 이 높은 곳의 식물을 먹으러 올라가지요. 그러나 높은 산악지역은 기온이 낮고, 변온동물인 이구아나가 살기에 퍽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추위가 싫은 다른 부류는 해변으로 갑니다. 바닷물이 물러난 썰물 때 해안가에 드러난 해초들을 먹기 위해서죠. 해초는 짭니다. 해초를 먹고 나면 몸 안에 소금 성분들이 항상성을 해칩니다. 어쩌겠어요. 일단 먹어야 사니, 먹고 봅니다.

두 부류는 각기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하며 자연스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바다이구아나는 차츰 썰물이 아니더라도 얕은 바다로 들어가 해초를 먹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몸은 유선형으로 꼬리는 마치 수달이나 해달처럼 바뀌지요. 코의 소금샘으로 넘치는 몸 속 소금을 뿜어내기에 이르면 거의 해양파충류에 한층 다가간 느낌입니다. 얼굴도 해초를 뜯어먹기 좋도록 바뀌지요.

차가운 훔볼트 해류는 갈라파고스의 섬에 사막기후를 만들었지만 바다에는 커다란 선물을 안깁니다. 산소가 풍부하게 녹아있고 바다 깊은 곳의 영양분들이 표면까지 전달이 되지요. 갈라파고스의 바다는 열대우림처럼 빽빽하게 나는 해초들로 우거집니다. 온갖 해양생물들이 해초와 식물성 플랑크톤을 따라 모여들지요. 그 한 구석에서 해초를 뜯어먹는 바다 이구아나도 풍부한 먹이에 행복합니다.

스텔러 바다소
스텔러 바다소

바나 이구아나의 미래를 우리는 바다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다소라니 조금 생소하지요? 듀공이나 매너티 그리고 지금은 멸종된 스텔라바다소가 속한 과family를 바다소과라고 합니다. 고래, 물개 등과 같이 바다에 사는 포유류지요. 고래나 물개가 육식동물인데 반해 바다소과 동물들은 초식입니다. 고생대 후반부터 육지에 살던 척추동물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일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고생대의 메소사우루스, 중생대의 어룡이나 장경룡, 모사사우루스 신생대의 고래나 기각상과 동물들이 그들이지요. 이들 대부분은 육식동물입니다. 그러나 바다소만이 초식이지요.

육식동물들이 바다로 가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개나 어류를 주로 먹잇감으로 하다보면 자연스레 물과 친해지고 물과 친해지면서 수영을 하기 쉬운 형태로 진화하다보면 역으로 육지에서의 삶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만 충분하다면 온전히 바다에 사는 모양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좀 다르지요. 일단 수초를 먹는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 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먹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육식동물은 하루에 많아봤자 서너 시간 먹이사냥을 하면 끝이지만 초식 동물은 사실 깨어 있는 내내 먹이를 찾아다니지요. 그러니 물속에서 계속 먹이를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물속에선 체온이 빨리 내려가고, 중간 중간 숨 쉬러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니까요. 결국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나 해초를 먹이로 삼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육지에서 바다로 다시 돌아간 척추동물 대부분이 육식인 겁니다.

어찌되었건 바다소들은 완전한 해양생물이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나 육지 한 번 올라가지 않고 죽을 때까지 바다에서만 사는 거지요. 번식을 위해 육지로 올라오는 물개나 펭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지금 바다 이구아나는 아직 먹이 섭취를 위해서만 바다에 들어갑니다. 번식과 휴식은 육지에서 취하지요. 저 바다 이구아나의 먼 후손은 듀공이나 매너티처럼 오로지 바다에서만 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요.

그 바다이구아나가 요사이 괴롭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이곳저곳 난리가 나는데 갈라파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훔볼트해류가 이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면서 엘니뇨도 잦고, 해수 온도가 올라가니 해초들이 예전만 못합니다. 다 지구온난화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가 해수면의 온도를 조금 올렸고, 이에 따라 한류인 훔볼트해류가 세력이 약해진 거지요. 한류가 풍부한 무기염류를 가지고 오질 않으니 영양분이 부족해서 해초가 예전만큼 잘 자라지 못합니다. 바다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바다 이구아나의 일부는 다시 육지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바다 이구아나가 사는 섬은 해안은 지대가 낮지만 중심부는 꽤나 높습니다. 이 높은 고산지대는 오히려 강수량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숲이 우거지고 이구아나가 먹을 것이 풍부하지요. 대신 지대가 높다보니 기온이 낮아서 파충류인 이구아나가 살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바다 이구아나의 오랜 조상 중 일부는 이 높은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추위에 버티면서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살기로 한 것이지요. 원래 같은 종족이었지만 중간의 건조한 지역이 이들을 지역적으로 격리시켰고, 이들은 환경에 맞춰 진화하면서 각기 서로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바다 이구아나가 먹이가 부족해 육지로 향하면서 이들 간에 교류가 새로 생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잡종 이구아나들이 눈에 띠고 있다고 합니다. 바다 이구아나와 육지 이구아나가 짝짓기를 해서 태어난 새끼들이 두 종족의 모습을 절반씩 닮는 거지요.

지구 온난화가 만든 새로운 진화가 갈라파고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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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2019-12-15 13:43:5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두번째 사진에 "스텔러 바다소"라고 설명이 붙은 것은 착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텔러 바다소는 인간에 의해 한 차례 목격된 이후로 멸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을 뿐더러, 저렇게 사진이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검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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