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는 블룸버그를 어떻게 보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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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는 블룸버그를 어떻게 보도할까?
  • 박상현
  • 승인 2019.12.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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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블룸버그 선거 캠페인 영상 'Rebuild America: Join Mike Bloomberg’s 2020 Presidential Campaign' 유튜브 캡처.
마이클 블룸버그 선거 캠페인 영상 'Rebuild America: Join Mike Bloomberg’s 2020 Presidential Campaign' 유튜브 캡처.

블룸버그의 정치적 야망 

세계적인 갑부 마이클 블룸버그가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다. 
 
미국의 부자들 중에서도 블룸버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에 속한다. 젊은시절 월스트리트에서 일을 시작한 후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블룸버그 L.P.를 만들어서 큰 돈을 번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는 행보를 보여왔다. 민주당원이었다가 2001년 탈당해서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 시장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되었고, 2005년에도 공화당 소속으로 재선되었지만, 사회적인 이슈에서는 진보적이었던 그는 민주당 우세의 뉴욕시에서 시장으로 일하던 2007년 공화당을 탈당해서 무소속(independent)으로 시장직을 마쳤다.
 
그러던 그가 대통령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2016년 대선 때다. 그의 참모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그의 대선 야심은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에서 갑부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1992년 대선에 나왔다가 보수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로스 페로를 연상시켰고,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플로리다에서 앨 고어의 표를 가져갔다는 비난을 받은 랠프 네이더를 연상시켰다.
 
블룸버그는 2016년 대선을 포기했고, 그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아무도 그것이 블룸버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는 일종의 사명의식을 가진 듯 2020년 선거에는 출마해서 트럼프를 꺾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민주당에 재입당했다.
 
 
돈 보다 더 큰 짐, 미디어
블룸버그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어 트럼프와 맞붙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아직은) 없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뒤늦게 선거판에 뛰어든 블룸버그가 따라잡아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미국에서 대선에 관심을 가진 예비후보들은 3, 4년 전 부터 아이오와를 비롯한 초기 경선 주에 거주하다시피 하면서 입지를 다진다. 아이오와 주의 유권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피트 부테제지가 일찍 부터 그렇게 지지기반을 쌓아왔다.
 
물론 블룸버그는 이를 돈으로 만회하려고 한다. 방법은 미디어다. 미국의 선거운동의 양축은 조직된 운동원들을 통한 필드 전략과 매체에 광고를 사서 쏘아대는 미디어 전략이다. 두 경우 모두 후보자가 충분히 매력적이고 유권자들에게 어필을 할 경우 자발적인 운동원을 모으기 쉽고, 선거모금에 유리하기 때문에 결국 후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블룸버그 처럼 자발적인 선거운동원들을 모으기 힘든 경우 매체 광고를 통해 호소할 수 있다. 굳이 기부금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룸버그는 아예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 그의 회사는 단말기를 통한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블룸버그 뉴스를 내보내는 미디어 기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를 통해 선거에 유리한 보도를 할까? 
 
 
블룸버그 뉴스의 선언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총수가 대선에 뛰어든 적이 있다. 당시 기업의 직원과 가족들을 총동원해서 표를 모은다는 얘기가 많았고, 그에게 보수표를 뺏길 것을 두려워한 보수여당은 부정선거운동을 적발하는 등 다양한 압박을 가했다. 재벌 뿐 아니라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조직을 마치 자신의 사조직 처럼 활용해서 병사들의 표를 긁어모으는 일도 흔했다.
 
같은 일이 미국이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고, 기업주의 권한이 막강한 미국에서 블룸버그 같은 재벌이 자신의 기업을 선거에 동원하기로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겠느냐는 게 가장 처음 드는 의문이고, 그렇게 할 경우 다른 기업도 아닌 객관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뉴스 매체의 가치가 추락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뒤를 따른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출마한다는 소문이 자자했을 때 블룸버그 뉴스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기업도 아니고, 아예 사주의 이름이 기업의 이름인 상황에서 사주의 출마는 기업에 큰 문제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결과 편집장인 존 미켈스웨이트가 매체의 기자들에게 문서를 하나 돌렸다. “그래서 블룸버그가 출마한답니다(So Mike is running)”이라는 말로 가볍게 시작하는 문서다. 
 
이 문서는 언뜻 캐주얼해보이지만 내용을 조금만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주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서로 부딪히는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 상황에서 매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를 솔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고민한 문서다. 첫문장이 그 태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 매체에 관한 기사를 쓰지 않(고 우리의 경쟁 매체에 관해서도 거의 쓰지 않)음으로써 독립된 언론으로서의 명성을 쌓은 뉴스룸으로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보도하는 것이 쉬울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매체들은 거창한 구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모토만 보면 세상에는 하나같이 공명정대하고, 객관적이고, 균형을 갖추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고,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들로 가득하겠지만 현실이 과연 그럴까? 동의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다. 블룸버그 편집장은 그렇게 선언하고 룰을 세우는 것이 자신들의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꼼꼼한 룰을 만들어서 따르지 않을 겁니다. 저널리즘에서는 우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우리가 옳다고 말을 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사주로 부터) 독립적이라면 그것을 기사로 방송으로 보여줘야 하지, 그렇게 할 거라고 자세한 원칙을 발표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미켈스웨이트 편집장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일일이 예측할 수 없고, 결국 그때 그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몇 가지 원칙들
  • 마이클 블룸버그가 평소에 가장 영향을 미치던 라인은 ‘블룸버그 오피니언’이며, 그 라인을 통해 사설에 블룸버그의 생각이 전달되고 했기 때문에 선거기간 중에는 (필자의 이름이 없는) 사설은 잠시 중단한다. 
  • 선거와 관련된 보도는 계속해서 하되,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어느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등은 이야기하지만 마이클 블룸버그 후보의 개인, 가족, 재단에 관해서는 쓰지 않고, 그의 경쟁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쓰지 않는다.
  • 하지만 다른 신뢰할 만한 매체가 후보들에 대해서 쓴 기사는 전문, 혹은 요약으로 소개한다.
  • (아직 블룸버그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아니므로 아직 경쟁자가 아닌) 트럼프에 대한 기사는 계속 쓰겠지만, 블룸버그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될 경우 어떻게 할지는 그 때 가서 결정한다.
  • 우리는 블룸버그가 시장일 때 독립성을 증명했기 때문에 그 때와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다.
 
언론사의 사주가 대선에 출마하는 상황은 전례가 없다시피하지만, 미켈스웨이트 편집장이 이야기하듯 블룸버그가 시장일 때를 지나온 매체이기 때문에 블룸버그 뉴스의 편집진은 다른 매체들 보다는 훨씬 준비가 잘 되어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장은 글의 서두와 말미에서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거나 거창한 선언을 하는 일을 피한다.
 
“분명 많은 분들이 일이 복잡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고민은 그만하고) 일로 돌아갑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하는 걸로 토론하면서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널리즘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기사로 보여주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언론이 공명정대함을 선언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서양의 속담처럼 공명정대함을 지켜내는 일은 매일의 작업, 기사 속 한 줄의 문장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블룸버그 뉴스 편집장의 글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박상현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미디어 혁신가다.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의 콘텐츠랩장을 지냈다. 페이스북에 워싱턴 업데이트를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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