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의사 처방 오류' 잡는다

  • 기자명 강양구 기자
  • 기사승인 2019.12.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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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들었던 당혹스러운 일화 하나.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 지병을 앓던 아버지를 모시고 한 의사에게 오전 첫 번째 진료를 받았던 A씨는 처방전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 아버지의 처방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약이 부였기 때문이다. 그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서 다시 진료실을 찾아가 담당 간호사에게 문의를 했다.

담당 간호사가 사정을 살피더니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처방 오류였다.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던 의사가 컴퓨터 화면에 뜬 다른 환자(아마도 전날 마지막 환자)의 진료 기록을 보고서 그대로 약을 처방한 것이다. A씨는 정정된 처방전을 가지고 나오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지?’

하지만 A씨의 생각과는 달리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의사,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언제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매년 150만 건의 약물 처방 오류가 발생한다. 이 가운데 2% 정도(약 3000건)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14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7월 29일부터 2017년 9월까지 의료 기관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가운데 약물 처방 오류는 857건이었다. 이런 처방 오류 가운데 대부분(94.2%, 808건)은 A씨의 아버지가 진료를 받은 대학 병원 같은 상급 종합 병원과 종합 병원이었다(상급 종합 병원 512건 59.7%, 종합 병원 296건 34.5%).

특히 A씨의 아버지가 겪었던 의사가 처방할 때 오류가 375건 43.8%로 가장 많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처방 오류 가운데 용량 오류가 159건으로 절반 가까이(42.4%) 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아찔한 상황이다. 간호사의 투약 과정에서의 실수 293건 34.2%, 약사의 조제 오류 172건 20.1%가 뒤를 이었다.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 김종엽 센터장. ⓒ건양대병원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 김종엽 센터장. ⓒ건양대병원

건양대학교병원(의료원장 최원준)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인피니그루(대표이사 유경식)와 함께 축적된 병원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의사가 특정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을 할 경우에 경고를 해서 처방 오류를 막는 서비스다. <뉴스톱>은 이 서비스를 개발 중인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 김종엽 센터장을 만났다.

 

“의료 현장 약물 처방 오류 많다”

- 의사의 약물 처방 오류가 이렇게 흔히 일어나는 일인 줄 몰랐다.

“모든 의사가 약물 처방 오류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안길 수 있는 처방 오류를 하곤 한다. 나도 이비인후과 진료를 할 때, 종종 약물 처방 오류를 확인하고 급하게 정정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를 개발을 결심했던 중요한 이유다.”

- 현재는 그런 오류가 어떻게 정정되나?

“주먹구구식이다. 의사의 처방 오류는 보통 담당 간호사나 원내, 원외의 약사가 발견한다. 때로는 보호자가 평소 처방과 다른 것을 보고서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처방 오류가 정정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칫하면 환자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운영하는 ‘의약품 안전 사용 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가 있긴 하다. 환자의 처방 정보를 공유해서 의사, 약사가 처방, 조제할 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DUR을 통해서 2015년 1~3분기 9개월 동안 총 8억2000만 건의 처방 가운데 5.2%(424만 건)에서 처방 오류를 바로잡았다. 전체 처방 건수가 많다보니 5.2%만 되어도 424만 건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다. 더구나 현재는 약명 기준으로만 처방 오류를 판단하는 방식이어서, 실제로 발견하지 못하는 처방 오류 건수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또 DUR의 경우에는 반복 알람으로 인한 의사의 피로도도 누적되었다. 의료 현장에서 진료하는 의사 상당수가 DUR을 통해서 대수롭지 않은 알람이 자주 울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경고가 뜨는 데도 무시해버린다. 이 과정에서도 자칫하면 환자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처방 오류가 생길 수 있다. 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 개발 중”

- 어떻게 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를 개발하나?

“그 동안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에서 축적한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AI가 원활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가공했다(전처리). 이렇게 가공한 엄청난 양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서, 성별, 연령, 질환, 상태 등을 염두에 두고 특정 환자에게 어떻게 약물이 처방되는지 AI를 학습시켰다.

이렇게 학습한 AI는 의사가 특정 환자에게 평소 패턴과는 다른 잘못된 처방을 할 경우에 곧바로 경고한다. 이렇게 경고를 받은 의사는 자신의 처방 오류를 점검하고 나서 곧바로 교정할 수 있다. 의사와 AI가 협업(collaboration)할 수 있는 의료 현장의 새로운 AI 도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외국에서 비슷한 서비스 개발 사례가 있나?

“이스라엘과 미국에 기반을 둔 메드어웨어(Medaware)에서 의료 빅 데이터를 학습한 AI를 개발했다. 이 AI는 의사가 표준 치료 패턴에서 크게 벗어난 처방전을 잠재적 오류로 판단해서 경고한다. 2018년 미국 내 4개 병원에 도입이 되어 성공했다. 높은 오류 탐지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경고 발생률도 10% 미만이었다.”

- 개발 중인 AI 기반의 약물 처방 오류 탐지 서비스는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한 탐지율(61% 이상)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서비스에서 특히 중요한 대목은 잘못된 경고의 발생률을 10% 미만으로 줄이는 것이다. 잘못된 경고가 누적되면,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피로도가 누적되어서 서비스를 도입해도 이용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목표 모두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 언제쯤 의료 현장에 해당 서비스가 도입될 수 있을까?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지원으로 올해(2019년) 5월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내년(2020년) 말까지 서비스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는 시범 서비스가 가능할 전망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구축해서 건양대병언을 비롯한 국내외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전할 계획이다."

건양대병원 헬스케어 데이터사이언스센터 ⓒ건양대병원
건양대병원 헬스케어 데이터사이언스센터 ⓒ건양대병원

 

“건양대병원, 녹내장 진단 AI 기술 이전도 완료”

- 원래는 연구와 임상에서 좋은 실적을 보유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왜 AI 기반의 의료 서비스 개발에 나서게 되었나?

“부끄럽지만,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이비인후과 의사로서의 성취도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에는 다른 훌륭한 의사도 많다. 그런데 일찌감치 의료 빅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의료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온 의사는 드물다. 마침 건양대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 터라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의료 빅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다양한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이미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에서는 안과 전문의와 협업해서 안저(안구 속의 뒷부분) 이미지 등의 빅 데이터를 활용해서 녹내장을 진단하는 AI 기반의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기술 이전까지 마친 바 있다. 앞으로도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의 성과를 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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