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⑦ 고대 철학의 오래된 난제 '소크라테스의 역설'

  • 기사입력 2019.12.20 08:50
  • 최종수정 2021.01.27 18:25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악법도 법이다”

(Dura Lex Sed Lex)

-소크라테스

용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그가 독배를 마시기 직전에 남긴 말로 ‘아무리 가혹한 법률이라도 사회가 합의한 이상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법전에 기록된 실정법만을 유일한 법으로 보는 법실증주의에 기초한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각각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헌법재판소의 시정 권고가 있기 전까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 일화가 준법정신 예화로 수록되었다. 두 국가기관의 지적 후 교과서에서 빠졌으나 인권위와 헌재 모두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독배를 들고 ‘악법도 법’을 외치는 소크라테스는 반세기 가까이 한국사회가 가진 소크라테스에 대한 대표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빈도가 줄긴 했으나 근래에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자크-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실상

지금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된다. 실제 소크라테스가 동료들 앞에서 “악법도 법이라네”라고 말한 뒤 독배를 들이켰다는 식의 기록은 없다. 실정법의 위엄을 절대적으로 보는 일부 법학자들과 일본 제국주의 및 군사독재정권의 실권자들이 국민의 무조건적 복종 의무를 강요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권력의 하수인으로 악용해 왔다’는 것이 와전된 경위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다. 기껏해야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통되는 낭설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는 다소 단정적인 결론이다. 소크라테스가 말 그대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흔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대목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크리톤>에서 확인된다. <크리톤>은 수감되어 사형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와 그를 찾아와 탈옥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의 논박이 담긴 작품이다. “아테네의 그릇된 판결이 자네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를 따르지 않고 탈출하는 일이 정의롭지 않겠는가”라고 크리톤은 제안한다. 다양한 논증으로 친구를 설득하던 소크라테스는 대화 후반부에 스스로 의인화한 아테네 법률의 입장이 되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법률과 국가 공동체가 여기서 달아나려는(탈옥하려는) 우리에게 다가와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가정해보세.

‘소크라테스, 당신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이요? 법률과 나라 전체를 파멸시킬 작정이오? 어떤 나라에서 법정 판결들이 무력하게 되고 개인들에 의해 효력을 상실하고 파기된다면, 이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계속 존립할 수 있겠소? (중략) 당신(소크라테스 자신)은 우리(법률과 국가)에 의해 태어나고 양육받고 교육받았으니, 당신 조상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도 우리의 자손이며 노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소? (중략)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 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 내야 한다는 것, 조국이 당신을 전쟁터로 이끌어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이행해야 한다는 것, 정의로운 것이란 그와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단 말이오?’”(플라톤, <크리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67-70쪽, 50b-51c 편집 후 인용)

소크라테스는 인격화된 법률에 이입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법의 판결을 뒤집는 일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국가를 파괴하는 배은망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아테네 시민이라면 응당 아테네의 법을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를 토대로 브릭하우스(T.C.Brickhouse)나 스미스(N.D.Smith)같은 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철저한 준법정신의 수호자’라고 해석한다(이기백, <크리톤>, [작품해설], 이제이북스, 35쪽).

편집된 부분만 읽으면 과연 소크라테스가 국가주의와 준법정신의 화신처럼 보인다. 그러나 <크리톤>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에서 그는 다르다. 누명을 벗고자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재판 자리에서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법적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철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석방을 받느니 철학을 사명으로 부여한 신에 복종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소크라테스의 변론>, 도서출판 숲, 44쪽, 29c-d)’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미 아테네 과두체제의 참주들이 내린 명령에 불복한 전력을 고백하기도 한다(<변론>, 50쪽, 32c-d).

80-90년대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지면을 통해 "'악법도 법'이라고 외친 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일화는 상식처럼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80-90년대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지면을 통해 "'악법도 법'이라고 외친 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일화는 상식처럼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변론>의 시민 불복종 운동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극단적 법실증주의자 소크라테스가 충돌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다(이기백, <크리톤>, [작품해설], 32쪽). 이 역설의 수렁에서 사회도 학계도 갈린다. 베트남전 반대와 흑인민권운동 등을 전선으로 정부와 운동권이 대립하던 1960년대 미국에서 정부 쪽 찰스 에드워드 와이잔스키 연방대법원 판사는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변론>의 소크라테스를 내세우며 각자를 정당화했다(권창은, 강정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출판부, 183-184쪽). 학계의 해석은 이보다 훨씬 세세하고 복잡하게 나뉜다.

다만 방법론과 시각의 차이에도 전체적인 무게는 ‘소크라테스를 극단적 법실증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쪽으로 기운다.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크리톤> 전반부에서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되네. 정의롭지 못한 짓을 당하더라도,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도 안 되네(<크리톤>, 64쪽, 49c)”라고 못 박듯 대전제를 천명해 두었다. 이에 따르면 탈옥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한 정의롭지 못한 보복’이기 때문에 거부된 것이지 악법이라도 수호하고자 거부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의 ‘악법’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배심원단)의 ‘잘못된 판결’에 희생된 것임을 수차례 강조한다. <변론>에서 그는 “나는 구금이나 죽음이 두려워 여러분의 부당한 결정을 지지하느니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50쪽, 33c)”라고 말하며 시민들의 판결과 법 자체를 분리하고 있다. <크리톤>에서도 “(소크라테스 본인은) 법률이 아니라 사람들(배심원단)한테서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했다(77쪽, 54c)”고 명확히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판결을 비판할 뿐 아테네의 법을 악법이라 규정한 적이 없다. 악법을 위해 순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 논쟁은 원본 텍스트에 대한 해석에 기초하기 때문에 정답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좋은 해석과 나쁜 해석이 있을 뿐이다. 현재 검토된 논리상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주장을 지지했다”는 좋은 해석이 아니다. 이 인물의 사상적 일관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별개로,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악법도 법이네’라 말하고 독배를 들었다”는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직접적인 말을 한 적도 없고 독배를 들던 상황도 전혀 다르다. “참된 철학자라면 죽음을 추구해야 한다(<파이돈>, 이제이북스, 68쪽, 64a)”고 주장하던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다음과 같았다고 파이돈의 입을 빌려 플라톤은 전한다.

“이 말과 동시에 그는 그것(독약이 든 잔)을 입에 대고는 아주 침착하고 편안하게 비웠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들 중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마시고 있는, 그리고 다 마신 것을 보자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벗을 잃게 된 저 자신의 불운 때문에 말입니다. (중략)

바로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고대 그리스 의학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 주게, 잊지 말고.” “그렇게 하지.” 크리톤이 말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할 말이 있나 보게.” 이렇게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저 사람(크리톤)이 그를 덮었던 것을 벗겼고, 그의 두 눈은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크리톤이 입을 다물어 드렸고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벗의 최후였습니다. 에케크라테스(상황을 전하는 파이돈의 대화 상대) 우리는 말할 겁니다. 그는 당시 우리가 겪었던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웠노라고.”(플라톤, <파이돈>, 전헌상 역, 이제이북스, 163-164쪽, 117c-118a)

 

참고문헌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2012

플라톤, <크리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2014

플라톤, <파이돈>, 전헌상 역, 이제이북스, 2013

권창은 강정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5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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