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바 휘바? 20년간 핀란드 문화 왜곡한 롯데 자일리톨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0.01.0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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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껌을 제일 많이 씹었던 시기는 자일리톨 껌이 출시되었던 2000년이다. 자일리톨 껌은 광고를 많이 했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꼭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중략) 20116, 나는 핀란드에 도착했다. (중략) 난 슈퍼마켓마다 돌아다니며 자일리톨 껌을 구경하고 샀다.”

 

청소년 소설로 많이 알려진 김혜정 작가의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란 에세이 한 대목이다. 소설가를 핀란드로 오게 할 정도로 강렬했던 이 광고는 지난 2000년대 초 말 그대로 국내 껌 시장을 휩쓴 롯데제과 제품 자일리톨 휘바광고일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롯데 자일리톨휘바는 명실상부 롯데제과의 효자 상품이다. 지난 20005월 첫 시판 이후 현재까지 주요 상품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0~2019년까지 19년 동안 2조 원 넘는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100% 핀란드산 자일리톨 함유자기 전에 씹는 껌이라는 홍보 문구를 활용한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해마다 1000억 원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괄목할만 한 매출 증가 뒤에는 한국 소비자들의 이목을 끈 휘바 휘바광고가 있다.

 

 

몇 편으로 나뉘어 TV 채널로 방영된 해당 광고 시리즈는 핀란드에 관한 세 가지 고정관념을 단단하게 남겼다. 첫째, 핀란드 사람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는다. 둘째, 핀란드 사람은 잘 했어요라는 뜻으로 휘바 휘바 (hyvä hyvä) 두 차례 외친다. 셋째, 핀란드 어떤 지역에는 특이한 초록 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며 춤추는 전통 문화가 있다. 이 고정관념은 모두 사실일까?

 

광고는 낯선 곳에 있는 북유럽 국가 핀란드를 자일리톨 껌의 나라혹은 휘바 휘바의 나라로 알려지게 했다. 2019년 현재도 핀란드를 방문하는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슈퍼마켓에서 자일리톨 껌과 치약을 말그대로 쓸어 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광고의 아주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 담긴 핀란드 모습이 아주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기억에 남는 성공적인 광고로만 웃어넘기기에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 낼 위험이 크다. 해당 광고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상이라며 핀란드인 친구에게 보여주는 실수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특히 20194월 말, 롯데제과에서 제작한 새로운 자일리톨껌휘바광고는 문제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어 이를 팩트체크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롯데제과의 답변과 대응 또한 취재 과정에 반영했다.

 

15년 만에 돌아온 '자일리톨 휘바' 광고

20194월 말, TV와 온라인 채널을 통해 롯데 자일리톨껌휘바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대형 마트 식품코너에서도 CM송을 재생했다. 2004년 한국 껌 시장을 강타한 이후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휘바 휘바는 아마도 한국인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그 핀란드어다. 2003 TV광고에서는 무명 핀란드인이 모델로 나왔지만, 2019년 광고에는 국민 배우 이순재가 등장했다.

새로운 자일리톨껌 광고는 젊은 소비자층을 적극적으로 겨냥한다. 유쾌한 음악과 컴퓨터 그래픽, 여기에 유튜브와 팟캐스트 문화, 게임까지 버무려 코믹한 광고를 만들었다. 롯데제과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광고를 통째로 올려 노출하고, 트렌디한 방식으로 제작 과정도 짧게 편집해 바이럴’(viral)을 노렸다.

광고 업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광고기획사가 제작한 만큼, 새로운 자일리톨껌휘바광고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현재 유튜브 ‘Lotte CF’ 채널에 남아 있는 광고 본편은 조회 수 2백만에 가까워지고 있고, 다른 영상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온라인 채널에 공유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도 많게는 3천 개나 달린다. 이밖에도 ASMR, 노래방 버전, 제작 뒷이야기 등 다양한 영상을 올리는 홍보 전략도 사용했다.

기존 광고의 성공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하더라도, 10여 년 만의 새로운 광고가 이만한 인기를 끌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 광고가 핀란드 문화와 고유부족인 사미족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롯데 자일리톨 광고
2003년 롯데 자일리톨 광고
2019년 롯데 자일리톨 광고
2019년 롯데 자일리톨 광고

 

1. 핀란드 원주민 사미(Sami)족 복장이 완전히 다르다

먼저, 2000년대 초반 광고에 등장한 휘바 휘바노인이 착용한 독특한 옷과 모자에 주목해보자. 이 전통의상은 핀란드인의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사방으로 모서리를 가진 모자 디자인은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 원주민 사미(Sami)족 전통 복장(gákti)을 잘못 변형한 것이다. 이 모자는 동서남북으로 바람이 부는 모양을 형상화한 네 바람 모자’(neljäntuulenlakki: the four winds hat).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라플란드 지역 사미족 남성들이 쓰는 모자로, 중요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주로 입는 격 있는 의복이다.

 

처음 사미족이 라플란드에 살기 시작했을 때, 바람이 거세게 부는 척박한 환경에서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설화가 모자와 함께 전해 내려온다.

 

처음 라플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때, 바람이 네 방향에서 한꺼번에 불어와 더 많은 사람이 정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 현자가 나타나 텐트 안에서 노래를 불렀고, 사방에서 불던 바람이 모여들었다. 불을 쬐면서 노래에 취한 바람들이 잠들자, 현자는 모닥불을 더 피워 바람들을 작게 만들었다. 그리곤 모자 속에 붙잡아 넣었다. 이튿날 잠에서 깬 바람들이 깜짝 놀라 동서남북으로 도망치려고 애썼지만 나올 수 없었다. 현자는 바람들을 꺼내주는 대가로 한 번에 한쪽에서만 불어오라는 제안을 걸었다. 바람들은 약속을 지키기로 하고 모자에서 빠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자는 바람들이 몸부림치던 모양 그대로 네 방향으로 모서리를 갖게 되었다.”

 

광고에 나온 복장은 사미 공동체의 조언을 받지 않은 결과, 잘못된 요소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권 구성원은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본래 붉은색, 파란색 조합이나 흰색, 검정색 조합 등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을 멋대로 바꾸고 서유럽풍 복식의 레이스 장식을 덧붙였다. 유목 생활을 해온 사미족 생활 방식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미족 남성은 이 복장을 입을 때, 순록 가죽으로 만든 벨트와 칼집을 두른다.

사미족 전통 의복은 붉은색과 파란색, 흰색, 검은색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왼쪽 사진 출처는 사미족 전통의복제작회사 Sámi Duodji. 오른쪽 사진 출처는 핀란드 이나리 Inari 사미 공예가, Peteri Laiti.
사미족 전통 의복은 붉은색과 파란색, 흰색, 검은색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왼쪽 사진 출처는 사미족 전통의복제작회사 Sámi Duodji. 오른쪽 사진 출처는 핀란드 이나리 Inari 사미 공예가, Peteri Laiti.
이순재씨가 출연한 2019 롯데 자일리톨 광고.
이순재씨가 출연한 2019 롯데 자일리톨 광고.

 

또한 롯데제과 측은 모자 디자인을 가져오면서 제대로 된 색을 쓰지 않았다. 광고에 맞춰 초롯빛으로 전체 모습을 바꿔버렸다. 언뜻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의 전통의상 한복을 새까맣거나 샛노랗게 만든다면 어떨까? 실제 사미족 공동체는 미디어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다룰 때 몇가지 조건을 거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의복의 디자인이나 색깔을 바꿔선 안된다는 것이다. 눈에 띄진 않지만, 모자와 옷깃에 넣는 세밀한 무늬 또한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야 한다. 또 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사미족' 출신 모델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할 경우 사미족의 문화적 자산을 존중해 달라는 뜻에서 사미 의회(Sami Parliament)가 만든 촬영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1. 촬영물이 '사미족'에 관한 것이라면 화면 속에 담긴 대상도 사미족일 것
  2. 해당 촬영물이 사미족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특정 인물을 촬영했다면, 해당 인물은 반드시 사미족일 것
  3. 해당 촬영 대상이 사미족 전통의상(gákti)이라면, 그 의상은 반드시 사미족의 전통의상(gákti)일 것
  4.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gákti 을 입고 있다면, 사미족 관습법(common law)에 따르는 형태일 것

 

참고로 사미 공동체에서는 사미족 전통의상의 디자인과, , 패턴 등을 각종 자료와 책으로 정리해두고 있다. 롯데제과 자일리톨 껌 광고는 이 같은 조건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롯데제과 측 홍보담당자 정성원 책임은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2019년 광고를 제작했다고 답변했다.

사미족 촬영 가이드라인 캡처.
사미족 촬영 가이드라인 캡처.

 

2. 핀란드 북부 사미족이 동남부 민요를 불렀다

 

2000년대 초창기 롯데 자일리톨껌 광고는 핀란드인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는다라는 문구와 함께 휘바 휘바라는 단어로 한국 소비자 이목을 끌었다. 2019년에 새롭게 제작한 광고에서도 당시 사용한 휘바 휘바음원을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한 듯, 이른바 후크송을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이 곡의 제목은 핀란드어로 이에반 폴카 (Ievan Pollka), 영어로 번역하자면 에바의 폴카라는 노래다. 광고 속 이순재 씨는 잘못 변형한 사미족 복장을 입고, 이 노래에 맞춰 춤춘다. 여기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이에반 폴카는 핀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빼앗긴 땅에서 온 민요다.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옛 핀란드 까렐리아(Karelia) 지역에서 17세기부터 전해오던 곡에 1930년대 에이노 께뚜넨(Eino Kettunen)이라는 작사가가 핀란드어 가사를 붙였다. 이후 인기 대중가수 가수이자 배우였던 요르마 이꺄발꼬(Jorma Ikävalko)1950년에 앨범에 싣기도 했다.

 

이 곡은 1995년 로이뚜마(Loituma)라는 아카펠라 그룹이 다시 불러 알려진 뒤, 우연한 기회로 일본 내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에 파돌리기 송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다 최근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등장했다. 핀란드에서 온 전통 민요로 알려져 있던 이 곡은 마침내 자일리톨 껌 광고에 등장한다.

 

주의할 점은 핀란드 동남부 민요에 맞춰 춤추는 광고 속 주인공이, 핀란드 북부 원주민 사미족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재미를 주기 위해 차용한 요소겠지만, 실제 사미족이 광고를 본다면 모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사미족은 이 의복을 주로 축제나 예식 때 갖춰 입되, 광고 속 노인처럼 경박한 춤을 추진 않는다. 공동체를 대표해 국제적인 회의에 참석할 때 입을 정도로 진중한 의미가 담긴 복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광고는 옷의 색깔마저 마음대로 바꾼 탓에, 사미족 출신 핀란드인에겐 부정적인 왜곡 요소를 많이 담게 되었다. 실제 필자가 사미족 출신 핀란드인 여럿에게 이 광고를 보여주고 의견을 묻자 차별 및 모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롯데제과 측은 "해당 광고는 특정 민족을 조롱하거나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듣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되며, 향후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 최대한 많은 정보와 의견을 고려하여 광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답했다. 롯데제과는 주한핀란드대사관으로부터 자문을 구한 뒤 롯데제과 웹사이트 '자일리톨껌' 코너에 게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12월말에 다시 롯데제과측에 경과를 문의했지만 "아직 대사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3. '휘바'는 한 번만 말한다

광고가 유행시키긴 했지만, 핀란드어 휘바 휘바는 일상에서 반복해 쓰지 않는다. ‘잘했어요라는 뜻보다는 좋아요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고, 무엇보다 단어는 한 번만 길게 말하면 된다. 위에서 이미 소개했지만출처를 알 수 없는 춤을 추면서 휘바 휘바라고 외치는 핀란드인은 보기 어렵고, 사미족 전통 복장을 하고 다른 지역 민요에 맞춰 춤을 추는 일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참고로 노르웨이 사미족의 짧은 영상을 통해 전통복장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북유럽 3개국 순방에 나섰다. 첫번째 나라인 핀란드에서 국빈만찬에 참석했는데 핀란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은 한국의 자일리톨 TV광고를 언급하며 잘못 인식되고 있는 핀란드 문화를 직접 팩트체크하기도 했다. 핀란드 대통령은 "솔직히 말하면 광고에서 나오는 인물은 핀란드인과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정관념 하나가 남았다. 핀란드 사람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는다고? 글쎄, 그 동안 주변 핀란드인 친구 누구에게 물어봐도 자기 전에 껌을 씹는다고 이야기 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핀란드 학교에서 점심 식사 직후에 먹는 자일리톨 사탕은 흔히 볼 수 있다.

광고가 늘 현실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전통과 문화를 조롱거리로 만들지 않는 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핀란드 어느 도시를 둘러보든, 광고 속 어르신의 모습과 핀란드인의 이미지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북부 라플란드에서 순록을 기르며 사는 사미족 사람들의 모습도 광고와는 전혀 다르다. 자일리톨 제품을 구매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곳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나 공연, 또 기회가 된다면 헬싱키 시내에서 멀지 않은 민속촌 쎄우라싸아리(Seurasaari)에 방문해보길 권장한다.

*필자 최원석은 전 YTN 기자다. 현재 핀란드 라플란드대에서 미디어교육 석사과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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