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이재용에게 면죄부 주고 병풍될 가능성

[뉴스의 행간]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시키는 삼성

  • 기사입력 2020.01.10 10:55
  • 최종수정 2020.01.10 11:33
  • 기자명 김준일 기자

삼성그룹이 9일 준법경영 강화 방안으로 추진하는 준법감시위원회의 참여위원을 발표하고 공식 출범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준법감시위는 다음달 초 정식 출범할 예정입니다. 준법감시위원장으로는 재직시절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김지형 전 대법관, 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가 맡았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시키는 삼성'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삼성의 '셀프 면죄부' 역사

삼성그룹은 총수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쇄신안을 내놓은 역사가 있습니다. 2006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이후 삼성은 8천억 사회 헌납과 구조조정본부 축소,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구조본은 전략기획실로 부활했고 삼지모,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은 얼마 안가 해체됐습니다. 20084월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건희와 이학수 퇴진과 더불어 전략기획실 해체,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사임, 차명계좌 헌납 등의 조치가 있었지만 이후 이건희 회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하면서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대체됐습니다. 20172월 국정농단 사건 이후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대관업무를 폐지했지만 사업지원TF라는 이름의 조직이 부활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 증거인멸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01,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이 한참인 와중에 준법감시위원회를 신설했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부가 지난해 10월 공판에서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다음 공판까지 마련하라고 주문한데 따른 것입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7일 열립니다. 재판부의 요청으로 만든 것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을 기우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삼성은 불법행위가 문제될 때마다 쇄신안을 거듭 발표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삼성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동안의 범죄 행각을 인정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준법감시위원회 100개 만드는 것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범죄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준법 감시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2. 공교로운 19

준법감시위 공식 출범을 알린 19일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삼성이 왜 이날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교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선 19일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생일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와병중이어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7년째입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 생일에 준법감시위 출범을 선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 다음날인 것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사가 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시절부터 도맡았으며 과거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 기소한 적도 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이번 인사로 윤석열 사단의 조국 관련 수사가 일정정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소위 삼바수사까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공교로운 점은 어제 삼성전자 주가가 상장 45년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는 겁니다. 58600원을 기록했는데 액면분할 이전 주가로 주당 293만원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의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삼성전자 실적도 개선되고 있기 때문인데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소식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3. 삼성의 병풍 가능성

준법감시위원 면모를 보면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인사입니다. 김지형 전 대법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자 전 경실련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전 한겨레 편집국장,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입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인용 사회공헌업무총괄 고문이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이들은 과거에 삼성의 불법승계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인사들입니다.

감시위는 각 계열사에 이미 꾸려진 이사회와 준법지원인 등을 통해 자료를 보고받아 활동합니다. 최고 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직접 신고를 받을 계획입니다. 법 위반이 확인되면 시정·제재 요구를 각 계열사 이사회에 하고, 감시위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때는 홈페이지에 이 내용을 공개한다는 계획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제공받는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외부 기구가 민감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김 위원장은 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독자적인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위법 내용을 삼성측과 수사기관이 밝히지 않을 경우 이들의 활동에 제한적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시위가 제재·권고안을 내놓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입니다. 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사고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만 답했습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로서는 병풍이 될 가능성이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김준일   ope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1년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주로 사회, 정치, 미디어 분야의 글을 썼다. 현재 뉴스톱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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