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규제-산업진흥 사이 갈 곳 없는 게임 '문화담론'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10.26 10: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게임 이슈를 바라보는 레거시 미디어의 이상한 관점

국정감사 기간을 휘몰아치는 사립유치원 뉴스 한 구석에는 디지털게임에 관련된 이슈들도 간간이 등장하곤 한다. 사실 국정감사 등의 이슈에 걸쳐 나오는 게임 뉴스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논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중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규제 논의, 혹은 산업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진흥과 같은 이제는 조금 클리셰에 가까워진 이야기들이다보니 대단히 새로울 것은 없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짚을 것은 짚어야 하는 것이, 일부 의견들의 경우에는 이들이 자칫 이상한 형식으로 섞여버리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 대로 대부분의 이슈들이 중독규제 – 산업진흥이라는 틀 안에서 소화되고 있는 형국은 현재 한국의 게임 저변을 설명하는 데 다소 부족한 틀일 수 있다.

2015년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 광고를 유튜브 등에 상영했으나 과장된 광고로 논란을 빚었다. “게임 BGM소리가 환청처럼 들린 적이 있다”, “사물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 적이 있다”,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가끔 현실과 게임이 구분이 안 된다”의 4가지 상황 중 “하나라도 ‘예’가 있다면 게임 중독이 의심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뉴스들이 현재의 게임 이슈를 다루는 방식들을 살펴 보자. 2018년 10월 16일 중앙일보는 <’게임중독=질병’ 낙인 우려까지… 게임산업 죽을맛> 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발행했다. 기사는 지난해 높은 실적을 기록한 게임사들이 대내외적 이슈에 시달리며 위축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 근거로 ①WHO의 게임 질병코드 분류 ②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③확률형아이템 규제 이슈를 꺼내든다.

비단 한 언론사만에서 발견되는 논리는 아니다. 같은 맥락의 기사는 <’질병코드 등재’ 갑론을박… 게임산업 위기 오나>(2018. 10. 20., 머니S), <게임업계, 3분기 실적 전망 ‘우울’… 신작 없는데 규제만 늘어>(2018. 10. 21., 메트로) 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대형 게임사들의 실적 저하를 짚고 그 원인으로 앞서 이야기한 규제와 환경들을 손꼽는 방식의 전개로 기사를 풀어간다.

그렇다면 이 기사들에 사용된 근거들은 적절한 것일까. 우선 WHO의 게임 질병코드 분류부터 살펴보자.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6월 국제질병분류 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한 버전을 등재했고, 내년 총회에서 확정될 경우 공식화될 예정이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여러 모로 게임계의 큰 이슈인 게임 질병화 문제는 물론 많은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제는 이 기사들이 이야기하는 게임사 매출 감소와는 사실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ICD-11의 WHO 총회안 상정은 2019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ICD-11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통계청에서 주관하는 KCD로의 번안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는 2022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의 이슈에 대한 걱정과 우려와는 별개로, 게임 장애 질병코드화는 지금 당장의 게임사 매출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라는 두 번째 이유 또한 그리 명확한 배경이 되기 어렵다. 엔씨소프트의 신작이자 캐시카우인 모바일게임 ‘리니지 M’의 경우 2018년 2월 기사에 따르면 월간 매출 약 749억원 가운데 국내 매출이 526억원, 대만 지역 매출이 223억원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중국발 이슈는 현재의 매출 감소를 설명할 근거조차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확률형아이템 규제 이슈는 확률공개 등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소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밝혀질 만한 자료는 아직 널리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며 이 또한 반론의 여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된 기사들은 3분기 매출하락 예상이라는 결과의 원인을 다소 불분명한 출처를 통해 기재한다. 실제 기사 내용을 살펴보자.

실제로 게임업계는 넷마블·넥슨·엔씨소프트 등 빅3의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40~60%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중국시장 진출 불가 ▲게임 질병 인정여부 ▲모바일셧다운제 가능성 등 다양한 불안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 요소 기사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이는 ‘불안요소’들이다. 불안요소는 선행지수이지 매출의 후행지수가 아니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예상이 3분기라는 지나간 매출의 대폭 감소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뉘앙스의 기사들이 국감 근처에 적지 않게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사뭇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산업진흥-중독규제 담론은 무성, 문화담론은 부재

디지털게임이 양적으로 거대한 성장을 이뤄내면서 이제는 대중문화콘텐츠의 주요 분야로 자리잡는 가운데, 흥미롭게도 이 콘텐츠를 다루는 프레임은 무척이나 단조로운 측면을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중독 규제’ 프레임과 ‘산업 진흥’ 프레임만이 대부분의 언론에서 주목하는 프레임들이다. 앞서 예시로 든 기사들은 그 중에서도 주로 게임산업의 측면에서 이슈를 다루는 기사들이고, 다소 부정확한 근거들로 산업적 측면에서의 규제완화와 진흥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이다. 제한된 지면 하에서 중독-규제 담론의 허실까지 다루기는 좁은 면이 있어 다른 기회에 다루는 것이 좋겠지만, 하나의 현상을 질병으로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무리한 질병화는 자칫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ㆍ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 과거에 동성애를 질병의 범주로 분류했다가 해제한 것과 같은 우를 또다시 범하는 일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2013년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개최한 '게임은 문화다' 컨퍼런스 포스터. 출처: 슬로우뉴스

두 프레임 모두 불완전한 이해를 도모한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두 프레임 외에 지금의 게이밍 현상을 이해하는 또다른 한 측면에 대한 고찰의 부족함이다. 바로 문화적 측면이다. 어느새 많은 이들이 게임을 일상적으로 접하기 시작했고, 게임에 의해 영향받으며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거나 게임에 적지 않은 시간과 재화를 투자하는 지금의 현실은 보다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서 게임을 살펴보는 틀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산업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질병 등재의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현상을 보다 일상적인 측면에서 직접 경험하고 영향받는 개별 소비자이자 콘텐츠향유자의 입장에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것은 게임에 대한 문화담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화적 관점은 묘하게도 별로 호명되는 일이 없다. 이따금씩 게임을 문화로 읽자는 구호는 사실상 문화적 접근이라기보다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산업적 관점이 꺼내드는 다분히 수동적인 구호에 머무른다. 예를 들자면, ‘게임은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합니다! 이건 문화입니다!’ 라는 논리를 통해 중독담론의 공격을 방어하는 정도의 용도로만 쓰인다는 것이다.

산업진흥 – 중독규제의 담론 대립 가운데서 입는 가장 큰 피해는 바로 이러한 문화적 관점의 소멸이다. 사실 산업-중독 대립은 상호간의 교묘한 연계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실제 대다수의 게임사들이 제작하고 또 높은 수익을 내는 게임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엔 다분히 중독스러운 플레이 양상을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 결제까지 이르게 하는 형식을 취하고자 한다. 중독담론 또한 실제 진단 현장에서 ‘일상 생활에서 다른 활동에 현저한 저해를 미치는’ 등의 판단기준을 통해 생산체계 안에서의 노동, 혹은 학습의 과정을 침해한다는 개념 하에 선다는 점에서 산업적 고려와 무관하지 않은 담론이다. 두 담론만이 치고받는 듯한 지금의 게임 담론 환경은 결과적으로 게임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접근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으며 실질적인 당사자일 게임 플레이어, 대중문화 수용자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로막는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중심 담론은 아직까지도 거대권력의 영향 아래 자유롭지 못하다. 특정한 이슈를 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프레이밍 싸움에는 비단 정치권력 뿐 아니라 산업자본의 영향력, 특정 집단의 이익을 향하는 의도가 끊임없이 개입한다.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끝없이 확률형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산업담론과 의학계의 중독담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토록 이어져도 레거시 미디어에 문화적 관점에서의 수용자 입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데에는 어쩌면 문화담론을 일으켰을 때 이득을 보는 입장이 그리 많지 않거나 별다른 힘을 갖지 못했다는 이야기의 반증일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