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어록

⑨ 선동가 괴벨스의 잘못 알려진 발언들

  • 기사입력 2020.01.21 10:30
  • 최종수정 2021.01.27 18:26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어주겠다”

(Gib mir nur einen Satz. Ich werde jeden zum Verbrecher machen)

-파울 요제프 괴벨스

괴벨스를 인용한 트윗 들. 주로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검찰 비판이 많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다른 정치인을 괴벨스에 빗대는 글도 있다.
괴벨스를 인용한 트윗 들. 주로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검찰 비판이 많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다른 정치인을 괴벨스에 빗대는 글도 있다.

용례

나치 독일의 정치가 괴벨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악마적인 선동의 위력을 함축한 문장으로 소셜 미디어신문 칼럼 등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인용됐다. 전체주의적 징후에 대한 경구로 쓰이기도 하고 단순히 어떤 음해나 협잡을 규탄하는 수사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쪽에서 인용 빈도가 늘었다. “표창장 하나를 가져다 주면 누구나 범죄자로 만들어준다”는 식이다. 2008년에는 EBS의 단편 교양 프로그램 <지식채널e> 시리즈 ‘괴벨스의 입’ 편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영상에 출처는 나와 있지 않다.

2008년 8월 4일 방영된 EBS '지식채널e - 괴벨스의 입' 영상. 유튜브 캡처.
2008년 8월 4일 방영된 EBS '지식채널e - 괴벨스의 입' 영상. 유튜브 캡처.

실상

출처 불명이다. 괴벨스는 청년기에 쓴 문학 습작부터 각종 서신과 저술, 연설문, 신문 기고문, 일기 등 방대한 문서 기록을 남겼다. 이 중 어디에서 “한 문장만 주면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지 밝힌 기록은 없다. 영어나 독일어 문장으로 구글 검색을 해도 믿을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모종의 경로로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전파된 ‘가짜 명언’으로 추정된다.

관련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자료로는 2004년에 쓰여진 블로그 글과 2006년에 출간된 책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하 ‘괴벨스’>에 대한 출판사 리뷰가 있다. 시기상 블로그 포스트가 앞서지만 여기에는 출처가 나와 있지 않다. 주목할만한 자료는 후자다. <괴벨스>는 독일의 저널리스트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가 앞서 언급한 괴벨스 본인이 남긴 각종 문서와 관련 소송 기록 등을 총망라해 통시적으로 정리한 전기다. 독일에서 1990년 출간되었고 한국에는 2006년 번역되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표지(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김태희 역, 교양인, 2006)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표지(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김태희 역, 교양인, 2006)

온라인 책 판매 페이지 소개 글에 출판사는 “한 문장만 주면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를 비롯해 다양한 괴벨스 어록을 실어 두었다. 문제는 위 명언을 포함해 다수가 여타의 기록은 물론 해당 도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들이라는 점이다. 1055쪽에 이르는 번역서 <괴벨스> 어디에도 ‘한 문장만 달라’는 말은 없다. 또한 거짓말에 대한 괴벨스의 다른 어록들(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역시 해당 도서에서 발견되지 않음에도 소개 글에 별도의 출처 표기 없이 적혀 있다.

 

붉은 박스의 말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괴벨스 어록'으로 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예스24 소개 홈페이지 화면 캡처.
붉은 박스의 말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괴벨스 어록'으로 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예스24 소개 홈페이지 화면 캡처.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진실이 된다”는 의미를 담은 여러 문장들은 영미권에서도 선동가 괴벨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말처럼 인식되어 왔다. 현재는 발언 시기와 주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실제 괴벨스가 한 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말들은 괴벨스와 나치의 광기 어린 선전술에 대한 감탄, ‘선동=거짓’이라는 부정적 인식 등이 섞이며 나타난 ‘부정적 신화화’의 결과물로 보인다.

1945년 3월 8일 철십자 훈장을 받은 소년병과 악수하는 괴벨스. 당시 이 소년병은 16살이었다고 한다('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881쪽).
1945년 3월 8일 철십자 훈장을 받은 소년병과 악수하는 괴벨스. 당시 이 소년병은 16살이었다고 한다('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881쪽).

나치 독일 제국의 2인자이자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충직한 심복이었던 괴벨스는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의 열렬한 신도였다. 일관되게 히틀러를 찬양하며 ‘독일 민중의 구도자’, ‘신의 도구’라 칭송했다. 2차 대전 말기 베를린 벙커에서 최후까지 히틀러의 곁을 지키며 사후 총리직을 이어 받은 것도 괴벨스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민중에게 나치즘을’이라 요약되는 그의 선전, 선동은 교활한 정치 사기보다는 광적인 전도에 가깝다. 괴벨스는 거짓말로 민중을 속여먹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패전과 죽음의 그림자가 임박한 벙커에서 괴벨스는 의붓아들 할라트 크반트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렇게 썼다.

“거짓말은 언젠가 무너지고, 그 위에서 진실이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순수하고 흠집 하나 없이 모든 것 위에 서게 될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추구가 늘 그랬던 것처럼"

-<괴벨스>, 교양인, 910쪽.

괴벨스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진실의 편이라고 믿었다. 1945년 5월 1일 괴벨스와 그의 부인 마그다는 6명의 아이를 음독살해하고 자신들도 같은 방식으로 숨을 끊었다.

한국에서 소환되곤 하는 괴벨스 인용구는 대체로 출처불명이다. 거짓말쟁이를 공격하고자 동원된 거짓말들인 셈이다. 괴벨스가 선전술과 민주주의에 대해 남긴 실제 어록으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

-1934년 출간된 저서 <베를린을 둘러싼 전투(Kampf um Berlin)>에서

“민주주의가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자신을 섬멸할 무기를 스스로 쥐어준다는 사실은, 언제나 민주주의가 가진 최고의 넌센스다"

-1935년 나치의 정파지 <공격(Der Angriff)>에 실은 글에서

“프로파간다는 사랑과 같다. 일단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 과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괴벨스 일기의 한 구절

 

*참고문헌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김태희 역, 교양인, 2006

(시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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