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후위기'와 '탈핵'은 같은 범주가 아니다

[박재용 오피니언] '탈핵'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

  • 기사입력 2020.01.23 09:10
  • 최종수정 2020.01.24 14:11
  • 기자명 박재용

작년에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9월에 혜화동에서 집회 및 시위를 했습니다. 당면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상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정부에 기후 위기 상황임을 선포하고, 시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환경 단체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시민단체, 과학자 단체 등 사회 각계의 다양한 단체 및 개인이 모였습니다. 그 날 이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행동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공감 아래 계속 모임을 지속하고 기후위기학교 등 다양한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 일차적 결과로 올해 314일 시청광장에서 첫 집회를 가집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 9.21 집회 포스터
기후위기 비상행동 9.21 집회 포스터

 

그런데 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 + 탈핵’으로 행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우려하는 쪽에서도 탈핵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기후위기와 동등한 층위로 탈핵을 놓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입니다.

일단 한국수력원자력과 같은 원전 찬성이 아닌 경우 탈핵 자체에는 대부분 공감을 합니다. 다만 탈핵 속도 문제에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지요. 그러나 이 논쟁의 저변에 깔린 문제는 탈핵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탈성장에 동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ESC를 포함해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하는 많은 단체나 개인들은 기후 문제가 정말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주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1도 상승하였고, 과학자들은 여기서 0.5도 이상 더 올라가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이 닥쳐올 거라고 수 년 전부터 경고했으며, 그 경고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기후위기의 핵심적 요인은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산화탄소입니다. 따라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아주 과감한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정책이 요구된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어디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냐는 것입니다. 지구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고, 일인당 에너지소비량 또한 계속 늘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가 현재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속도는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만큼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니 너무 느립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는 아닌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바로 원자력발전이지요. 물론 당분간이라는 전제 아래입니다.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원자력발전은 줄여야겠지만 급격한 원자력 발전 중단은 오히려 기후 위기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원자력발전의 퇴출 속도를 늦출 순 없다는 주장입니다. 원자력 발전 자체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원자력 발전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에서의 사고 위험입니다. 지난 80년 정도의 원자력 발전 역사에서 아주 심각한 대규모 인명 손실로 이어진 사고가 세 건입니다. 미국의 드리마일 발전소, 러시아의 체르노빌 발전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발전소 사건이었지요. 사건 자체는 세 건밖에 되질 않지만 하나하나의 사건이 일반 발전소 수 십 개가 각기 일으킨 사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으니 일반 화력 발전소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수 백 개의 사건사고가 일어난 것보다도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도 아주 오래 가지요. 20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체르노빌 발전소 사건으로 아직도 그 부근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니까요.

또 하나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입니다. 전 세계 원자력 발전소가 약 500개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 발전소의 폐연료를 저장할 고준위 핵폐기물 시설은 현재 전 세계에 단 하나가 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은 후보지 선정조차 아직 되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고준위 핵 폐기물은 발전소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 조차도 이제 여력이 없어 며칠 전에 임시 저장소 면적을 넓히자고 원안위에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 제대로 된 보관 장소를 찾지 못해 수 십년간 임시로 저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죠.

또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드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원자력 발전이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에너지 사용 효율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일부의 지적입니다.

원자력 자체가 문제가 많고 퇴출되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퇴출 속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이유입니다.

 

이 논쟁의 기저에는 탈성장이 있습니다. 지금의 기후 위기의 본질은 사실 인간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증가했고, 전 세계 인구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합친 에너지 사용량의 증가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죠. 따라서 더 이상 성장 위주의 정책이 아닌 에너지 소비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탈핵의 속도 조절에 대해 환경 단체에서 반대하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탈핵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현재의 지속적 성장이라는 정책 기조 아래 그에 필요한 에너지를 원자력으로 임시로라도벌충하자는 이야기인데, 이런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 주장에 아주 커다란 전제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먼저 현재 기후위기를 자각하고 비상행동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체 시민을 설득하여 탈성장을 전제로 한 기후 위기 비상행동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탈성장은 고통을 전제로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산업분야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필시 이는 실직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자신이 실직되기를 원하지 않지요. 하지만 탈성장을 주장하려면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핵심적인 산업군인 제철산업, 시멘트 산업, 석유화학 산업, 플라스틱 산업, 알루미늄 제련 산업, 제지 산업 등에서 생산량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동일한 양을 생산하더라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필요 인력이 줄어드는데 생산량 자체가 감소한다면 이들 모든 산업 영역에서 실직자가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과연 우리 전체가 이에 동의하면서 탈성장을 기본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요?

두 번째로 탈성장은 한 나라가 결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탈성장을 한다고 했을 때 다른 나라가 보조를 맞추면서 같이 탈성장을 할 거라고는 믿지 못하지요. 우리가 탈성장을 선언할 때 다른 나라의 다른 기업들은 그 틈을 타고 자신들의 시장 장악력을 키우려고 하겠지요. 만약 우리가 생산량과 수출량을 줄일 때 그 차이를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이 메워버리면 우리나라의 손해도 물론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탈성장 자체가 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그래서 탈성장담론 자체의 긍정성과 그 대전제에 동의하지만 구체적 프로세스가 제시되지 못한 상황에선 공허한 원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과거의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차일피일 미룬 때문이지요. 아주 가혹하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합니다. 1990년대 IMF사태를 기억하시나요? 아주 가혹한 시간이었지요.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줄어든 유일한 20세기의 한 해였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혹한 시간을 한 해가 아니라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넌 탈핵을 하지 말자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탈핵의 속도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저는 일단 현재보다 원자력 발전소를 더 늘리는 일에 대해 찬성하지 않고 노후 원자력발전소의 시한을 연장하는데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해외에 원자력발전소 플랜트를 수출하는데도 반대입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문제와 달리 이런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각기 다른 해답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 위기에 탈핵을 덧붙이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답하는 거지요.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 동감하는 모든 이들이 이를 위해 정부에 현재가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포하고 비상한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기후위기 X 탈핵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선 십분 이해하지만 그 명칭에 동의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2020년1월 24일 오후 2시 1차 수정: 필자의 요청으로 두번째 문단 ESC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