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조원 자산운용사 대표가 '기후 위기'에 주목한 이유

  • 기자명 김지석
  • 기사승인 2020.01.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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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에 시작된 호주 산불이 지금까지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호주에 내린 폭우로 산불이 잠시 소강상태가 됐으나 1월 29일 현재 산불이 재발화되어 수도 캔버라를 위협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산불의 피해 면적은 이제 10만 km2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국토면적 넓이의 숲이 불탔다. 태백산맥, 차령산맥, 소백산맥, 한라산, 남산 등등이 다 타도 피해면적에 미치지 않는다. 현재 추정 여기서 살던 야생동물은 10억마리 정도가 죽어나갔다. 불이 워낙 광범위하게 일어난데다 바짝 마른 호주의 초원과 산으로 번지는 불길은 아주 빠르다. 초원에서는 시속 22km, 숲에서는 시속 11km 정도의 속도로 번진다.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인 코알라는 원래 하루에 20시간 정도를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에 유칼립투스 잎사귀를 뜯어먹으며 산다. 잘 이동하지 않고 잘 이동 하지도 못한다. 이렇게 큰 불이 나면 코알라는 나무 위나 근처서 죽는다. 튼튼한 다리를 가진 캥거루는 순간적으로 시속 70km의 속도로 뛸 수 있고 시속 40km 정도의 속도로 약 2km 정도를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뛰고 나면 지친다. 동물들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불은 광범위하게 타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수만 마리의 코알라와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캥거루가 불에 타 죽었다. 전문가들은 3월까지 화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많은 동물들이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다.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 허탈할 정도다. 많은 수의 호주 보수당(Liberal Party) 소속 정치인들은 산불 나서 심각한데 기후변화 얘기 좀 그만하라며 오히려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더 덥고 더 건조한 환경이 조성 되어 불이 더 심해 질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누누이 얘기했지만 보수당 정치인들은 과학적 근거, 전문가의 분석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얼마전에도 대형 석탄화력발전소 개발을 허용했다.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석탄광산 개발은 제발 그만두라고 했지만 보수당 정치인들은 이런 아이들의 목소리도 철저히 외면했다.

2019년 5월 호주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자리를 지킨 스콧 모리슨 총리의 대처는 한술 더 뜬다. 산불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크리켓 시즌이 시작되면 소방관들이 경기를 보면서 힘이 날 거라며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더니 사태가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12월에는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버렸다. 비난이 늘어나며 휴가를 일찍 끝내고 돌아왔지만 국가위기상황에서 휴가를 떠나버렸던 총리를 대하는 호주국민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피해지역 주민과 소방관들은 악수를 거부했고 면전에서 야유를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며 호주의 아버지 역할을 하겠다며 지지를 이끌어 낸 모리슨 총리는 위기 상황에서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10억마리의 동물을 떼죽음으로 몰아가고 많은 재산 피해와 함께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그건 바로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포도당을 만들고 이걸로 잎사귀도 만들고 나무줄기도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폐기물로 산소를 만들어서 우리가 숨을 쉬고 사는데 도움을 준다. 불은 광합성의 반대다. 불이 붙는 다는 건 산소와 나뭇잎, 목질이 결합하며 열이 나고 이산화탄소가 다시 배출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호주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1월 중순 기준 약 4억톤으로 전세계 배출량의 약1퍼센트에 달한다. 이산화탄소는 가장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온실가스가 더 늘어났으니 앞으로 이상 기후는 더 심해지게 되고 더 심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이다. 기후가 변해서 바뀐 환경이 온실가스 배출을 더 늘어나게 하는 되먹임 (positive feedback) 현상이 현실화 된 것이다.

올해 초 독일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6.5% 감축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독일이 2019년에 감축한 온실가스의 양은 CO2 5천만톤 수준이다. 독일의 6.5% 감축은 전례 없는 수준의 감축으로 기념비적인 성과다. 그런데 호주 산불로 배출된 양은 독일이 감축에 성공한 양의 8배에 달한다. 그런데 호주 산불이 독일이 감축한 걸 다 상쇄하고 여기에 더해 독일이 감축에 성공한 양의 7배를 추가로 배출했다. 호주 산불은 앞으로 2개월 정도 더 지속되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것이다. 모범적인 국가들이 그나마 조금씩 이루어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이렇게 허무하게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호주산불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다.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고 어떤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게했다. 직접 피해를 입게 되면서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고 기후변화가 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 아직 전세계가 위기에 눈을 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가 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연구논문이 아닌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건 문제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다.

1월 15일에 미국 월가에서 대형 뉴스가 터져 나왔다. 7조달러 (약8109조원)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가 투자자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앞으로 환경 지속성을 핵심으로 놓고 투자 자본을 이동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래리 핑크를 인터뷰한 CNBC 앵커는 오늘 블랙록 CEO의 서한인 앞으로 수십년 간 회자될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호주 산불이 래리 핑크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 700조원의 11배가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자산회사 CEO가 일년에 한번 발행하는 연례 서한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작지 않다. 블랙록은 27일 에너지 저장장치 투자를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 자본이 실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블랙록 CEO의 인터뷰 발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의 우리 고객 (투자자)들이 제기하는 톱 이슈다.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중략) 기후변화는 내가 40년 동안 겪어 왔던 여러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이며 기업과 투자자, 정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중대한 자본 재배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기후 위기로 촉발된 중대한 자본 재배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문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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