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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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명언 팩트체크]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 박강수 팩트체커
  • 승인 2020.02.11 09: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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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영화광은 영화를 두 번 보고, 글을 쓰고, 직접 만든다”는 말의 진실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⑩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Pour tomber amoureux du film, Il y a trois étapes. Le premier est de regarder le même film deux fois, et la deuxieme est écrire le film sur le film, et la dernière est de faire un film.)

-프랑수아 트뤼포

JTBC '방구석1열' 화면 캡처.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을 인용하는 변영주 감독.
JTBC '방구석1열' 변영주 감독.

용례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의 말로 알려져 있다. ‘영화광의 3법칙’, ‘시네필(Cinephile)3단계등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영화 팬들의 순정을 자극해온 명언이다. JTBC의 예능교양프로그램 <방구석 1> 20181228일 방영 분에서 변영주 감독이 인용했고 과거 2008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도 언급한 바 있다. 각종 영화 평론 글과 기사에서도 곧잘 발견된다(링크1, 2, 3, 4, 5, 6, 7, 8). 실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영화사에 기록될 영화광이었으며,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의 평론가이면서 누벨바그(Noubelle Vague)’를 주도한 영화 감독이기도 했다. 스스로 시네필의 3법칙을 실천한 인물인 셈이다.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캡처. 류승완 감독 역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원칙'을 언급했다.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류승완 감독.

실상

‘시네필 3법칙’에 정확히 들어 맞는 원문은 찾을 수 없다. 영어나 불어로 번역해 검색해도 출처라고 할만한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한국어 자료 중 가장 오래된 출처는 영화 감독 겸 평론가 정성일의 글이다. 영화가 종교라면 정성일 평론가는 ‘시네필 3법칙’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자주 설파해온 전도사다. 그의 모든 글과 강연 자료를 모아 놓은 ‘정성일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1993년 2월 7일 MBC 라디오 <정은임의 FM영화음악> ‘영화를 두 배 재미있게 보는 법’ 방송에서 정 평론가는 이런 말을 한다.

“첫 번째 조항은, 영화 재미있게 보기는 ‘한 영화를 두 번 볼 때’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프랑수아 트뤼포라는 감독 얘깁니다. 트뤼포 감독은 영화광의 3단계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한 영화 두 번 보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 쓰기,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 찍기, 이것이 최고의 단계라고 얘기합니다.”

이어서 1995년 <한겨레21> 43호에 기고한 영화칼럼에 정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트뤼포는 언제나 말버릇처럼 영화광에는 세단계가 있다고 얘기했다. 초보는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며, 그 다음은 비평가가 되는 것이고, 진짜 영화광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아래는 2006년 출간된 프랑수아 트뤼포 평전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앙투안 드 베크, 세르주 투비아나, 을유문화사)>에 실린 정 평론가의 추천사 일부다.

“그(프랑수아 트뤼포)는 그 유명한 테제,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결국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한 다음, 그 말을 실천한 사람이다.”

 

정성일 평론가의 입을 빌려 ‘시네필 3법칙’은 영화 팬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다만 위 글과 말에는 출처가 나와 있지 않다. 정 평론가는 2010년 자신의 저서에서 그 출처를 밝힌다. 정 평론가의 첫 평론집 <필사의 탐독(바다출판사, 2010)> ‘프롤로그’에 따르면 “트뤼포가 시네필의 세 가지 단계를 공식적으로 책에 밝힌 것은 1975년 그가 쓴 글을 모은 <내 인생의 영화들Les films de ma vie>에서였다”고 한다.

'필사의 탐독(정성일, 바다출판사)' 표지와 해당 내용. '시네필 3법칙'의 출처가 나와 있다.
'필사의 탐독(정성일, 바다출판사)' 표지와 해당 내용. '시네필 3법칙'의 출처가 나와 있다.
정성일 평론가가 출처로 지목한 'The Films in My Life(Francois Truffaut, Diversion Books)'
정성일 평론가가 출처로 지목한 'The Films in My Life(Francois Truffaut, Diversion Books)'

정 평론가가 거론한 <내 인생의 영화들>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의 영어 판본 <The Films in My Life>에서 확인한 결과 원문으로 추정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I am often asked at what point in my love affair with films I began to want to be a director or a critic. Truthfully, I don’t know. All I know is that I wanted to get closer and closer to films.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가운데 어떤 부분이 나를 영화 감독이나 비평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영화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는 것뿐이다.

The first step involved seeing lots of movies; secondly, I began to note the name of the director as I left the theater. In the third stage I saw the same films over and over and began making choices as to what I would have done, if I had been the director.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설 때 감독의 이름을 적어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The Films in My Life' 속 '시네필 3법칙'의 출처로 추정되는 대목.
'The Films in My Life' 속 '시네필 3법칙'의 출처로 추정되는 대목.

정성일 평론가의 인용문과는 내용이 다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 감독이나 비평가가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영화에 빠져드는 과정을 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그 3단계는 ①영화를 많이 보고 ②감독의 이름을 기록하고 ③같은 영화를 다시 보면서 머릿속에서 스스로 감독이 되어 보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해당 구절을 더 폭넓게 따 와서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트뤼포처럼 영화를 사랑하다 보면 평론가나 감독이 되기 마련’이라는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영화를 두 번 보고, 글을 쓰고, 직접 만든다”는 내용의 ‘시네필 3법칙’을 프랑수아 트뤼포가 직접 말한 적은 없다. 이 ‘3법칙’은 트뤼포의 책 내용 일부가 그의 삶에 대한 해석과 섞이면서 각색된 말이다. 각색의 주인공인 정성일 평론가는 평생 영화에 순정을 바쳐온 시네필로 1995년 영화잡지 <키노>를 창간한 평론가이자 2010년 영화 <카페 느와르>로 입봉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시네필 3법칙’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시네필 3법칙’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법칙보다 정성일의 법칙으로 헌정되는 쪽이 마땅해 보인다. (시리즈 계속)

*참고문헌

<필사의 탐독>, 정성일, 바다출판사, 2010

<The Films in My Life>, Francois Truffaut, Leonard Mayhew 역, Diversion Book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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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2020-02-11 14:48:55
마틴 스콜세이지가 했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는 말도 팩트체크 가능한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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