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은 정말 '백제의 후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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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은 정말 '백제의 후손'인가?
  • 김현경
  • 승인 2020.02.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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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아키히토 "간무 천황 생모, 백제 무령왕 자손"
'일 천황 백제 기원설' 근거, 『속일본기』 확인해보니...

작년에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 종료 결정 등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상당히 악화된 가운데, 10월에 열린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에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하기로 하여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서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모으기도 하였다. 특히 상황(전 천황)인 아키히토가 과거 식민과 전쟁 피해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고, 새로 즉위한 나루히토의 경우에도 아베 총리와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천황과의 접촉을 통해 아베 정권의 대()한국 정책에 일정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럴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아키히토 상황의 한국과의 인연발언이다.

KBS 화면 캡처.
KBS 화면 캡처.

 

20011218, 아키히토 당시 천황은 생일에 즈음하여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궁내 기자회의 대표 질문 중 하나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 질문과 답변은 다음과 같다.

 

Q. 세계적인 이벤트인 축구 월드컵이 내년 일본과 한국의 공동개최로 열립니다. 개최가 가까워짐에 따라 양국의 시민 차원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는데요, 역사적,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대하여 폐하께서 갖고 계시는 관심, 생각 등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A. 일본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고 일본서기등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과 초빙되어 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습니다. 궁내청(宮內廳) 악부(樂部)의 악사들 중에는 당시에 이주해온 사람의 자손으로 대대로 악사 일에 종사하며 지금도 때때로 아악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 사람들의 열의와 한국 사람들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령왕은 일본과 관계가 깊었고, 이때 이래로 일본에 오경박사가 대대로 초빙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러한 교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 국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국 사람들이 각자 나라가 걸어온 길을 개개의 사건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고, 각 개인으로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이 양국 국민의 협력에 의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이를 통하여 양국 국민들 사이에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기자회견 답변은 한국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는데 대부분의 보도가 한반도와의 혈연적 관련성, ‘백제와의 혈연적 관계를 언급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예 이 발언이 일본의 천황이 백제 기원설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기사도 있었다.  사실 당시 천황의 발언은 자신의 먼 조상의 어머니가 백제왕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을 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일본의 문화와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기여한 바가 크고, 그것이 양국 사이의 깊은 교류의 결과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왕가 자체가 백제인의 후예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던 재야학자들은 간무 뿐만이 아니라며 더 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이러한 의견들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아키히토의 발언을 마치 백제 기원설의 양심선언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해는 최근에도 몇몇 사람들에 의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낙연 총리의 일본 방문과 관련해서도 다시 한국과의 인연발언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 방문이 있기 전인 작년 1010, YTN 라디오에서 방송된 이동형과 호사카 유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아베 총리와 만나는 것 외에 나루히토 천황과도 만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오간 뒤, 나루히토 천황이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베 정권을 견제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며, 이어서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온다.

 

이동형> 그러면 지금 일본에서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한국에 대해서 악화된 여론이 나오던데, 일왕이 한 마디씩 해주면 그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싶어서 질문을 드려봤거든요.

호사카 유지> 그렇습니다. 그때는 이런 나루히토 일왕이 구체적으로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혹시 해준다면 굉장한 영향력이 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도 한국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효과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루히토 일왕도 지금의 상황이 됐지만, 아키히토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요. 조금 기대해볼 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이동형> 아키히토는 우리 왕족들은 백제로부터 왔다, 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호사카 유지> 그렇습니다.

 

과거 아키히토 천황이 한국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말과 관련하여 아키히토가 우리 왕족들은 백제로부터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변자도 그렇다고 응답하고 있다. 라디오 방송과 그 녹취 기사라는 매체의 성격상 사실과 동떨어진 불완전한 문답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작년 5월에 실린 뉴스톱 기사 <사무라이는 원래 호위무사가 아니었다>의 댓글에는 아키히토천황 우리왕실백제인후손이라는 글이 달렸다. 이에 대하여 한명의 천황의 후궁이 백제 무령왕의 250년 후손이었다는 것일 뿐 일본의 천황가의 집안이 다 백제계가 된다?’, ‘부계는 완전한 일본인인데 왜 그의 후손 아키히토천황을 백제계라고 하는가?’ 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이것만 놓고 보면,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을 일본 왕실 백제 기원설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것이 근거가 빈약하고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임을 인지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 연구자들은 일찍이 2001년 기자회견 직후부터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이 천황 가문 백제 유래설로 바로 연결되지 않음을 지적해온 바 있다, 김현구 당시 고려대 교수는 현재 천황 가문이 백제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적잖이 회자되어 왔지만 확증은 없고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견해들이어서 역사 연구자 입장에서는 학문적인 성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았다.  또한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계라는 것은 학계에서도 사실로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천황들까지 한반도 이주민이라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이 일본의 역사 인식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잘못하면 일선동조론, 즉 한국과 일본의 조상이 같다는 학설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애초에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속일본기의 기록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2005~2006<인터넷 시민의신문(ngotimes.net)><한국사 바로읽기 연중기획>이라는 연재를 진행한 이근우 부경대 교수는 18<일본 천황가는 백제의 후예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하였다. (2007해당 사이트 폐쇄로 인해 원 기사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개인 블로그에서 본문 확인 가능)

 

여기서 문제의 속일본기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속일본기는 일본의 공식 역사서 중 하나로, 일본서기의 속편에 해당한다. 이 중 엔랴쿠 9(790) 정월 임자(15)일조에 따르면, 엔랴쿠 8(789) 12월 을미(28)일에 사망한 황태후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를 오에 산릉(大枝山陵)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여기 등장하는 다카노노 니가사가 바로 간무 천황의 어머니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황태후는 성이 야마토()이며, 이름은 니가사이다. (중략) 황태후의 조상은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純陀太子)로부터 나왔다

 

고 하며,

 

호키 연간(770-780)에 성을 다카노노 아손으로 바꾸었다. 금상(간무 천황)이 즉위하시자 높여서 황대부인이라 하였다. (엔랴쿠) 9, 추존하여 호칭을 바치기를 황태후라 하였다. 그 백제의 먼 조상 도모왕(=주몽)은 하백의 딸이 해의 정기에 감응하여 낳은 자식이다. 황태후는 바로 그 후예이다.’

 

라고 적고 있다. , 다카노노 니가사의 원래 가문 이름은 야마토()였고, 이 집안은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다만 삼국사기와 같은 한국측 기록에서는 무령왕의 아들로 순타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고, 일본서기백제태자 순타(淳陀)’의 사망 소식이 전할 뿐이다. 순타태자와 야마토 가문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어려우나, 니가사의 가문이 백제계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만 야마토 가문은 원래 문필 업무를 담당한 도래인 계통 가문에게 주어진 가바네(직능에 따른 성)인 후히토()를 칭하고 있었으며, 가문의 지위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당시 간무 천황에게 있어 어머니가 백제계에 가문의 급이 낮았던 것은 일종의 콤플렉스로 작용했고, 따라서 그 가문의 혈통을 백제 왕족과 연결시켜 이를 열심히 선전하였다는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간무 천황이 외척 세력으로 우대한 것은 야마토 가문이 아니라, 의자왕의 직계 혈통을 잇는 구다라노 고니키시(百濟王) 가문, 즉 백제왕씨 집안이었다.

정리하자면,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의 후손이라는 기록은 분명 속일본기에 보인다. 하지만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란 다소 어려운 일이며,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왕의 후예라는 점이 강조된 데에는 당시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의 인연발언도 천황 가문의 숨겨진 비밀을 고백하는 양심선언같은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염두에 둔 하나의 메시지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겠다. 과연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말 두 마디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김현경   hyunk02.htp@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고대사 및 중세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분과 계층, 혈통과 세습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대학원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교토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현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어소시에이트 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논문으로 <원 근신(院近臣)과 귀족사회의 신분질서: 실무관료계 근신을 중심으로>(<일본역사연구> 46,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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