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택시 몰락과 시의 '원죄'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10.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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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택시는 빠르게 몰락했다. 시기적으로 2012년 이후였다. 자가용으로 택시처럼 승객을 실어 나르는 우버, 리프트 서비스가 등장한 다음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버, 리프트가 태어난 도시이자 본사가 있는 거점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최근 택시 지원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샌프란시스코 택시를 면허 종류에 따라 분류한 뒤 특정 면허가 있는 택시들만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국내선 국제선 터미널을 모두 포함한 전체 구역)에서 영업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거액을 내고 시에서 판매한 택시면허(medallion)를 가진 택시기사들만 공항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참고로 이 글에서 언급하는 '택시면허'는 운전을 잘 하는지 테스트해서 받는 택시운전 자격증이 아니라 이를테면 한국의 개인택시 면허처럼 택시 영업 면허를 의미한다.

택시면허를 들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택시기사. 출처: 샌프란시스코도시교통국(SFMTA)

'비싼 면허'와 '싼 면허'

샌프란시스코엔 두 종류의 택시면허가 있다. 세부적으론 성격이 조금 다른 6가지 면허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종류다. 비싼 면허와 싼 면허. 샌프란시스코에선 시 정책 변화로 서로 다른 종류의 면허들이 생겼다. 샌프란시스코도시교통국(SFMTA)이 작성한 택시면허개혁보고서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택시면허 역사와 면허의 종류를 비롯한 현황이 정리돼 있다.

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비싼 면허는 2010년부터 시에서 정가 25만달러에 택시운전 자격증이 있는 기사들에게 판매한 면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개빈 뉴섬 시장이 시의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는 방법으로 면허 판매 정책을 시행했다. '구매자에게 소유권이 있는, 그래서 개인끼리 매매가 가능한 택시면허'를 팔았다.

2010년 이전엔 택시면허는 몇 백달러 수수료만 받고 발급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짜로 준 면허였다. 1978년 6월 시 조례를 개정해 택시면허를 신청 순서에 따라 나눠주되 매매 양도를 할 수 없도록 한 이후부터 2010년 2월 25만달러 판매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 얘기다. 이 기간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차례가 되면 수수료 몇 백 달러를 내고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매매 양도는 불가능했다. 사망, 질병 등의 이유로 택시영업을 못하게 되면 면허를 상실했다. 누군가 면허를 상실해야 차순위 대기자가 면허를 받는 구조였다.

시가 면허를 돈 받고 팔아야겠다고 판단한 건 면허 받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원이 생기지 않으면 거의 발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게는 15년 가량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78년 6월 조례 개정 전에는 시에서 면허를 7500달러에 돈을 받고 팔았다. 소유권은 구매자에게 있었다. 700개 정도 수준으로 면허를 제한했고 신규 발급은 드물었다. 직접 택시를 몰지도 않는 사람들이 면허를 산 다음에 이를 되팔거나 면허 없는 택시기사에게 면허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았다. 면허 없는 사람들은 남의 면허를 빌려서 영업을 하면서 일종의 사납금처럼 대여료를 면허 소유자에게 지급했다.

택시면허가 귀하다 보니 시에서 판매한 가격은 7500달러였지만 여기에 프리미엄이 붙어 평균 1만6000달러 정도에 거래가 됐다고 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소비자가격지수(CPI) 인플레이션 계산기를 돌려보면, 1978년 6월 현재 1만달러는 2018년 9월 현재 6만1900달러(한화로 약 7000만원) 정도다.

1978년 조례 개정으로 택시면허는 공짜가 됐다. 대신 소유권은 시에 있었다. 개인은 운전이 가능할 때까지만 사용할 수 있는 사용권을 갖게 된 셈이었다. 실제 택시운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면허를 발급하고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택시 품질 향상으로도 이어진다는 취지를 내세운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복잡한 도로 전경. Photo by Brandon Nelson on Unsplash

샌프란시스코 시가 만든 '택시면허 시장(市場)'

샌프란시스코 시는 그렇게 25만달러짜리 택시면허를 팔았다. 그렇게 판 면허는 시를 통해서만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시는 면허 매매를 중개하면서 그 대가로 20% 수수료 수입도 챙겼다. 누군가 25만달러 면허를 다른 사람에게 팔도록 해주면 시는 5만달러 수입을 올렸다. 이전까지 공짜로 나눠주던 면허 프로그램은 폐기했다. 기존의 공짜 면허는 보유자가 살아있는 동안(영업을 하는 동안) 유효하지만 신규 발급은 중단했다.

반발을 줄이기 위해 정책 도입 초기엔 기존 택시면허 보유자 중에서 고령이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혜택도 줬다. 기존 면허를 반납하겠다고 신청하면 구매자를 찾아주면서 '구면허'를 25만달러 '신면허'로 변경해서 팔았다. 물론 20%(5만달러)는 시에서 수수료 수입으로 거뒀다. 2012년 8월 정가 25만달러 신면허 발급을 시작할 땐 기존 택시면허 대기자 상위 200명 명단에 있던 사람들에 한해 반값인 12만5000달러에 살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시는 그렇게 택시면허 판매 시장을 조성했다. 

2010년부터 시가 만든 택시면허 시장을 통해 거래된 면허 숫자는 현재 총 560개다. 여전히 영업 중인 구면허까지 모두 합한 샌프란시스코의 택시면허 숫자는 총 1458개, 그 중에서 개인끼리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면허가 바로 이 560개다. 이렇게 면허를 팔아서 샌프란시스코 시가 벌어 들인 수입은 6300만달러. 우리 돈으로 700억원이 넘는다. 시는 이렇게 벌어 들인 돈을 샌프란시스코 대중교통 서비스 지원에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망하면 되사겠다” 약속하고 판매한 면허

시가 만든 택시면허 시장을 통해 싸게 사도 12만5000달러, 그렇지 않으면 25만달러에 면허를 구입한 택시기사들은 거의 다 빚 없이 거액을 내고 면허를 살 재력이 없었다. 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2009년 면허 판매를 준비하면서 택시기사들이 면허를 살 때 융자를 해 줄 수 있는 금융기관을 찾아 나섰다.

당시는 금융위기 직후여서 돈을 빌리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힘들게 찾은 곳이 샌프란시스코연방신용조합(San Francisco Federal Credit Union, SFFCU)이었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합원인 지역 주민들이 맡긴 돈을 굴리는 비영리 금융기관. 미국에서 통상 Credit Union이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비영리 금융기관은 조합원에게 시중 금융기관보다 싸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시에서 판매하는 택시면허를 사는 택시기사들에게 면허 대금을 융자해주는 조건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는 신용조합(SFFCU)에 몇 가지 약속을 했다. 면허 가격을 25만달러 밑으로 절대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며, 택시면허 시장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리고 또 하나. 만일 택시면허 정책이 실패하거나 중단되거나 하는 상황이 될 경우, 면허를 구매해서 보유한 사람들이 요구하면 실제 구매한 가격에 되사준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면허를 시에서 구매하면 그 돈으로 융자금을 돌려받도록 해준다는 것이었다. SFFCU 조합원이었던 기사들, 새로 조합원으로 가입한 기사들이 융자를 받아 면허를 샀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3월 SFFCU가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SFFCU는 소송을 제기하며 “(융자금 상환 불능으로) 우리 조합에서 압류한 면허가 99개이며, 400명이 넘는 택시기사들이 면허를 되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에서 면허를 되사서 융자금을 돌려받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2800만달러의 손해보상금도 요구했다. 

 

택시면허로 월 수입 9500달러 올리던 시절

택시면허 판매가 가능했던 건 그 시절 택시면허가 그만큼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력적인 투자였던 것이다. SFFCU의 소장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12년 택시면허를 소지하고 하루 10시간 운전하면 275달러 가량을 벌었다. 또 10시간 택시를 운전한 뒤 자신이 쉬는 시간(주로 야간)에 택시면허를 보유하지 않은 다른 기사를 고용해 10시간 자신의 택시를 몰도록 시키면 105~120달러 정도를 대가로 받을 수 있었다. 택시면허를 가진 사람이 일주일에 6일 10시간씩 택시운전을 하고, 다른 기사를 고용해 매주 6차례 자신의 택시를 운행하게 한 뒤 대여료를 받으면 9500달러 정도를 버는 게 드물지 않았다.” 

택시면허가 있으면 한 달에 9500달러, 1년으로 치면 11만4000달러를 벌 수 있었던 것이다. 택시면허는 나중에 샀던 가격 이상으로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25만달러에 면허를 사서 2년만 영업을 하고 면허를 빌려줘도 본전은 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2년 영업해서 번 돈 외에도 25만달러 이상에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던 면허가 남아 있지 않았던가.

2018년 현재 시에서 판매한(또는 거래를 주선한) 택시면허를 가진 기사의 연간 수입은 3만8000달러에 그친다. 면허를 사느라 받은 융자를 상환하는데 드는 비용을 뺀 금액이다. 빚 갚고 실제 쓸 수 있는 금액으로 번 돈이 1년에 3만8000달러였다는 얘기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인 아파트 월세가 싸게 구하면 3500달러인 동네가 샌프란시스코라는 걸 감안하면 3만8000달러는 기본적인 생활도 한참 불가능한 금액이다.

출처: Max Pixel

우버 등장 후 택시면허 시장의 붕괴

샌프란시스코 시의 택시면허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택시기사들에게 돈을 빌려준 신용조합 SFFCU가 소송을 제기한 건 택시면허 시장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SFMTA의 택시면허개혁보고서를 보면 2016년 4월 이후 택시면허는 단 한 개도 거래되지 않았다. 팔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택시면허 없이 자가용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우버, 리프트의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택시면허 수요는 2014년 이후 급락했다. 비싼 면허 없이도 사실상 택시와 동일한 영업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면허를 사겠는가. SFFCU가 소송을 제기한 것도 택시면허 시장이 이미 회생불능이어서 시에서 되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거래된 택시면허 현황

연도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거래 횟수

30

147

106

209

168

65

11

출처: 택시면허개혁보고서(SFMTA). 거래 횟수는 한 해 동안 택시면허 매매가 이뤄진 횟수.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택시와 유사한 우버, 리프트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택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2017년 6월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내놓은 운송네트워크회사(TNCs) 현황 보고서는 우버, 리프트 현황을 잘 보여준다. 몇 가지 핵심 사항을 추리면 이렇다.

▲월~목 피크타임(오후 6:30~7:00) 샌프란시스코 우버·리프트 차량은 5700대 이상
▲금요일 피크타임(오후 7:00~8:00) 샌프란시스코 우버·리프트 차량은 6500대 이상
▲이는 각각의 시간대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운행하는 택시 숫자의 15배 이상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업하는 우버ㆍ리프트 운전자는 4만5000명 가량
▲매우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샌프란시스코의 우버, 리프트 이용 횟수는 평일 하루 총 17만건으로 택시 이용의 12배 가량

우버와 리프트 등장 이후 택시의 승객운송 숫자는 빠르게 하락했다. SFMTA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2년반 동안 샌프란시스코 택시의 승객운송은 65% 하락했다. 공유차량 서비스 등장 때문이다. 

2012년 이후 샌프란시스코 택시 승객 운송 숫자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출처: SFMTA

내 면허 도로 사라” 요구에 '딴청피우는 시 정부?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가 내놓은 택시면허개혁보고서와 SFFCU의 소장, 현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각 행위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일단 시 정부는 2012년 중반 우버, 리프트 같은 회사들이 자가용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서비스를 내놓은 이후 '규제 권한이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넘어갔기 때문에 시 정부가 손을 쓰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SFFCU는 '시 정부가 우버, 리프트 같은 회사를 규제하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았고, 결국 2013년 주정부에 규제 권한이 넘어가도록 방임했다'고 말한다. 택시기사들도 '우버 같은 이른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기업에 우호적이었던 시 행정부가 택시업계의 몰락을 방치했다'고 비판해왔다. 현지 지역방송 보도를 보면, 거금을 주고 면허를 산 기사들은 시에서 다시 사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시에선 “면허를 다시 사들이려면 1억6100만달러 예산이 필요한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가능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누가 얼마 만큼의 책임을 지게 될지는 앞으로 소송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시에서 이번에 내놓은 택시업계 지원대책은 택시면허 가치를 높이고,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시에서 판매한 '비싼 면허'를 소지한 택시기사들만 공항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차별해서 택시면허 시장을 활성화해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택시기사들이 그나마 1, 2시간 기다리면 장거리 손님을 태울 가능성이 높은 곳이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 시 정부는 공항에 최대 479대의 택시가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실제로는 250대 정도가 늘 초과하기 때문에 비싼 면허를 가진 택시들에게 혜택을 줘서 다른 택시들을 쫓아내겠다며 면허 차별 정책을 내놨다. 택시면허 시장 몰락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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