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건강 인센티브제' 공약, 부자가 혜택 볼 가능성 크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20.02.1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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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의 보건의료체크] 2020년 총선 보건정책 공약 - ①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며, 각 당에서도 선거 공약을 하나씩 공개하는 중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1호 공약으로 무료 와이파이를 내놨고, 자유한국당은 1호 공약으로 공수처 폐지를 내세웠으나 민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희망경제 공약을 내놨습니다. 정의당에서는 1호 공약으로 청년기초자산제도를 통해 만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각 3,000만원을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습니다. 각 당의 이념과 지향에 따라 다양한 공약이 나온 셈인데, 보건 정책에 관한 공약은 어떨까요? 뉴스톱에서 차례로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보건 정책을 발표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민주당에서는 건강 인센티브제를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요,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건강 인센티브제에 참여한 국민들을 건강상태에 따라 건강안전군, 건강주의군, 건강위험군으로 나눈 후 각자의 건강증진 목표를 달성하면 건강 포인트를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자기관리 의지를 북돋아 줄 인센티브가 없으니 이를 국가에서 제공하자는 겁니다. 의도와 정책목표는 바르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건강 인센티브 제도 운영 절차
건강 인센티브 제도 운영 절차

 

치료에서 예방으로, 예방의학의 대두

중국 고서 <갈관자(鹖冠子)>에는 편작(扁鵲)이라는 전설적인 명의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편작의 세 형제는 모두 의사인데, 막내인 편작만이 이름이 알려져 이를 의아하게 여긴 위나라 문왕이 편작에게 묻습니다. 세 형제 중에 누가 의술이 가장 뛰어나냐고요. 편작은 첫째 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대답하는데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형은 아프기도 전에 환자를 고치고, 둘째 형은 증세가 경미할 때 환자를 고치고, 본인은 환자가 위중할 때가 되어서야 고치니 본인만 유명해졌단 것입니다.

고사에서는 편작의 겸손과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저런 문답을 인용하였지만, 현재의 의료환경에서는 질병의 진행 정도가 환자의 치료에 드는 의료비용과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예방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야 치료법은 물론이고 개발된 약 자체도 적어 질병이 위중한 수준이 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의학의 발전 덕분에 질병의 초기 혹은 질병의 발생 이전부터 관리를 시작하여 이를 예방하는 방법들이 많이 나오게 됐거든요. 이런 관점의 접근을 예방의학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고혈압이나 당뇨병은 혈압이 높은 상태나 혈당이 높은 상태 자체로는 인체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혈관질환과 뇌졸중, 신장병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전에 미리 혈압약을 먹고 혈당약을 먹어서 관리하는 것이죠. 이처럼 예방적인 목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은 물론 식습관 개선과 운동 등을 포함한 생활습관 전체를 개선하면 질병의 발생은 물론 질병 진행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질병 치료를 넘어 질병 예방에 관심을 쏟는 것은 무척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죠. 다만 여기에는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보험사가 우수 고객을 골라서 받는 방법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개인이 각자 의료보험을 선택해서 가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보장 범위도 제각각이고,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보험료도 달라지니 전체 인구의 30%가량은 아무런 의료보험에도 들지 않고 살다가 건강이 나빠지면 파산에 이르는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죠. 보험회사라고 해서 이런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의무가입이 아니다 보니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만 가입신청을 하는데, 이런 분들은 대게 건강이 나쁩니다. 아픈 사람만 모으다 보면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어 수익이 많이 감소하죠. 이를 벌충하려 보험료를 올리면 상대적으로 건강한 가입자는 더 줄어드니 악순환이 반복되게 됩니다.

고민하던 보험사들은 가입자를 선별적으로 받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어느 보험사 광고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보장 범위에 맞춰 같은 금액을 받던 방식에서, 건강상태가 나쁜 환자는 보험료를 높게 받거나 아예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겁니다. 이런 방식을 위험군 선택(Risk selection)이라고 부르는데, 가입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보험회사에 대응해서 본인의 의료정보를 고의로 감추거나, 증세가 경미하다고 속여서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죠. 보험사와 개인 가입자 간의 물고 물리는 추격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름대로 치열한 추격전 끝에 보험회사가 내놓은 가장 최근의 전략은 보험료 일부를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보험료를 돌려준다니 보험회사가 항복한 것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가입자를 선별한 것일 뿐입니다. 이들은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헬스클럽 이용권 형태로 돌려줬거든요. 건강이 나쁜 사람은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고, 정기적으로 헬스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원래도 건강하고 앞으로도 건강할 가능성이 큽니다. 본인에게 효용이 없는 형태로 보험료를 할인해주면 건강이 나쁜 사람은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이를 노린 거죠.

 

대도시의 시간은 평등하지 않다

위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의료이용의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는데, 국내의 의료이용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지역별로 나누어 봤을 때, 대도시 지역에서의 의료불평등이 오히려 소도시 지역에서의 의료불평등보다 큰 현상이 동시에 관찰되기도 합니다. 소도시에서는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을 수 있지만, 대도시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이 훨씬 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식사 시간도 부족해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보단 과외로 여윳돈을 버는 대학생이 결석계를 내기 위해 병원을 더 많이 방문하며, 병가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중소기업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원보다는 공식적으로 병가를 사용할 수 있는 대기업에서 주 52시간 근무의 제약을 받는 회사원이 병원을 더 많이 방문할 수 있는 거죠. 모두가 24시간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대도시의 시간은 평등하지 않고, 건강관리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국가의 건강보조가 시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만 국가의 건강보조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하는 것은 건강관리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정책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금 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면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그쪽을 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게다가 이와 아주 유사한 노인건강마일리지제도가 이미 몇 차례의 시범사업을 거쳤지만,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해당 제도의 비용 효율성은 9개 건강관리 사업 중 끝에서 2번째 수준으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방향성은 좋지만 조금 더 잘 다듬어진 형태의 정책이 공약으로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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