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때는 수용 안했던 감염병 예방법, 새 공약인 양 들이민 한국당

[박한슬의 보건의료체크] 2020년 총선 보건정책 공약 - ② 자유한국당

  • 기사입력 2020.02.20 08:58
  • 최종수정 2020.02.20 09:00
  • 기자명 박한슬

21대 국회의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며, 각 당에서도 선거 공약을 하나씩 공개하는 중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1호 공약으로 무료 와이파이를 내놨고, 자유한국당은 1호 공약으로 공수처 폐지를 내세웠으나 민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희망경제 공약을 내놨습니다. 정의당에서는 1호 공약으로 청년기초자산제도를 통해 만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각 3,000만원을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습니다. 각 당의 이념과 지향에 따라 다양한 공약이 나온 셈인데, 보건 정책에 관한 공약은 어떨까요? 뉴스톱에서 차례로 짚어보겠습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최근 중국 우한지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사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건 안전 공약을 내놨습니다(현재는 보수통합으로 당명이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지만 보건 안전 공약과 관련해 수정한 내용은 없습니다). 저번 기사에서 다룬 민주당의 공약과는 달리 한국당의 보건 안전 공약은 여러 가지 공약사항의 연합체입니다. 발표된 9개의 공약은 크게 나누면 감염병예방법개정과 관련된 사항, ‘출입국관리법과 검역법개정과 관련된 사항, ‘백신과 치료제 개발 지원에 관련된 사항, ‘개인위생에 관련된 사항의 총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지원공약을 제외한 3가지 공약을 짚어보겠습니다.

2015 메르스 백서. 자유한국당의 감염병 예방법 등 보건 공약은 이 백서에서 나왔다.
2015 메르스 백서. 자유한국당의 감염병 예방법 등 보건 공약은 이 백서에서 나왔다.

 

1. 감염병 예방법 개정과 질병관리본부 독립

한국당이 공개한 공약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약칭 감염병 예방법으로 불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공약에서는 세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선별진료소에 대한 예산 지원과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감염인과 접촉이 있었던 사람을 의료기관이나 시설에서 격리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죠. 더 나아가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분리하여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무척이나 타당한 조치들이고, 감염병 예방에 있어서 필요한 사안들이지만 문제는 해당 공약의 출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5, 한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매우 유사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감염 사태를 겪었습니다. 한국과 인적 교류가 활발하던 곳도 아니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작다고만 여기던 호흡기 질환이 급속하게 전파된 것입니다. 초동 대응의 실패, 방역 시스템의 부재 등의 여러 이유로 인해 한국은 중동지역 외에 가장 많은 메르스 감염자를 보유했었고 이때의 실패는 다음 해인 2016년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15 메르스 백서: 메르스로부터 교훈을 얻다!>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이 백서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기다시피 한 게 이번에 한국당에서 발표한 공약 내용입니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위기 상황을 반추하여 대응법과 개선 방향을 내놓은 것이니 내용에서는 흠잡을 부분이 없지만, 문제는 이 백서가 발간될 즈음의 상황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마무리되고 백서가 발간된 것은 2016년 중순입니다. 집권 3년 차로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이 개선안들을 거의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개선안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던 시기에는 손을 놓고 있다가, 4년이 지난 2020년에 와서 이를 다시 본인들의 공약인 양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내용이긴 하지만 실제로 개혁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2. 출입국관리법과 검역법 개정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해외 유입 감염병 관리에 있어 핵심이 되는 법률은 검역법입니다. 공항 등에서 열 감지 카메라나 체온계 등을 사용하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걸러내는 조치가 모두 검역법에 근거하고 있거든요. 문제는 해당 법률이 지나치게 낡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를 이용한 운송이 주된 운송수단이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법률이라 다양한 운송수단이 개발되고 새로운 검역수단이 등장한 지금에 와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검역의 대상이 되는 질환을 새로운 감염병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2015년에 메르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 검역법상으로는 메르스 환자를 검역하는 것이 제대로 된 법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검역법 제2조에서는 검역감염병아래 목록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 콜레라를 시작으로 질병을 하나씩 일일이 추가해오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추가된 것이 . 신종인플루엔자였고, 2016년에 법률이 개정되면서 .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이 추가됐습니다. 수동으로 법률개정을 통해 질병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검역을 담당하는 검역관과 이들을 총괄하는 검역소장에 대한 자격 제한이 낮아 전문성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한 거죠.

한국당에서 공약으로 발표에는 개괄적인 방향성만 나와 있어서 정확히 어떤 방식의 개정을 목적으로 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020129일에 발의한 검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으로 그 개정 방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개정안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공중보건 위기관리 대상이 되는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입국하거나 이를 경유하여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하여 출국 또는 입국의 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제24조에 관련 규정이 있지만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메르스 다음 자리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추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바른 방향이지만 검역 체계를 체계적으로 바꾸겠다는 포부에 비해서는 아쉬운 수준입니다.

2020 자유한국당 '보건 안전 공약'
2020 자유한국당 '보건 안전 공약'

 

3. 마스크 세액공제와 개인위생 교육 강화

앞서 제시된 공약이 거시적인 국가 차원에서의 정책이었다면, 개인 차원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정책 두 가지가 마스크/손세정제에 대한 50만 원 한도의 세액공제와 개인위생 교육 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염병 유행 위험으로 인해 추가적인 위생용품 구매라는 짐을 짊어지는 국민들에게 세액공제 형태로 비용 보조를 해주는 것은 무척 바람직하지만, 재난 발생 시에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세액공제는 사전에 이런 제도를 예측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닥친 감염병 위기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정례화된 제도로 만드는 게 위생용품을 이용한 질병 예방이라는 정책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유아기부터 위생교육을 강화해 습관화하는 조치는 꼭 필요한 정책입니다. 지금도 학교 등에서 올바른 손 씻기 방법이나 재채기 예절을 학습시키고 있지만, 내실 있는 보건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긴 힘든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노령층에 대한 위생교육입니다. 노령층은 위생에 대한 관념이 낮은 것에 더해, 면역력이 성인보다 떨어져 바이러스 등의 감염성 질환에 훨씬 취약합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진행한 관찰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20대의 75.9%가 화장실 이용 후 손을 씻는데 비해 50대 이상은 고작 64.9%만 손을 씻었습니다. 학령기 교육도 좋지만 고령층에게 적절한 보건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박한슬 팩트체커  a1135s@naver.com    최근글보기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저자. 현재 대학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약학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을 일상어로 번역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고교독서평설> 등의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브런치에서 <쉽게읽는 보건의료 정책> 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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