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환자 수용' 박원순과 이재명은 왜 다른 선택을 내렸나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20.02.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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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가 2/27일에 발표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현황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감염증 확진자 수는 1595명으로 그중 대구지역 코로나 확진자 숫자만 1017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확진자가 다수 몰리자 지역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고, 각계에서도 대구지역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환자들을 수용할 병상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권영진 대구 시장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환자 수용을 요청했지만, 둘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중증환자를 위주로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이재명 지사는 코로나 감염자가 아닌 일반 환자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온 걸까요? 두 정치인의 정치적 지향점과 행정집행 방식의 차이 외에도 두 사람의 반응이 다르게 나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2015년 메르스(MERS) 유행을 겪으며 고쳐진 외양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은 2017년 초에 개정된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른 음압격리병실 및 격리병실 설치의무화 조치입니다. 감염성 질환, 특히나 호흡기계 질환의 경우 환자가 전파하는 세균/바이러스로 인해 같은 병원에 입원한 다른 환자를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들은 격리병실에 입원시키는 것이 바람직한데, 주변보다 압력을 낮게 설정하여 내부의 공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한 가장 높은 등급의 격리병실이 음압 격리병실입니다.

 

KBS 메르스 환자 치료받는 ‘음압 병상’은 어떤 곳? 화면 캡처
KBS 메르스 환자 치료받는 ‘음압 병상’은 어떤 곳? 화면 캡처

 

그렇지만 전국에 있는 음압 격리병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가지정으로 필수적으로 확보한 음압병상이 198이고, 그 외의 민간 병원에 설치된 음압 격리병실은 879개입니다. 그중 대구지역에 있는 음압병상은 54개뿐이니 확진자 수가 음압 병상 수를 20배 가까이 초과한 상태인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에서는 기존 의료기관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음압 격리병실을 사용하는 이유는 병원에 입원한 다른 환자에 대한 감염 우려 때문이므로, 아예 병원 하나를 통째로 비우고 확진자들만 입원을 시키는 것입니다.

 

2/27일 기준 대구지역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대구의료원(시립), 대구 동산병원(민간),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공립), 대구병원(민간)의 네 곳으로 해당 병원에 입원 중이던 일반 환자를 모두 다른 병원으로 전원 조치 후 확진자들만 수용하고 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 따르면 추가적으로 국군대구병원(국립), 대구보훈병원(국립) 등의 의료기관 역시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들 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면 원래 입원해있던 환자들을 전원시키는 것이 필요하므로 서울과 경기 등의 다른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문제는 지자체별로 음압 격리병상 확보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경기도의 경우 국가지정 음압병실이 존재하는 곳은 명지병원(민간), 국군수도병원(국립), 분당서울대병원(국립)의 세 곳이 전부로, 이들 병원에 있는 음압 병상의 수는 28개 병상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민간 병원의 음압 병상을 포함 시키더라도 143개 병상이 전부죠. 반면에 서울은 국가지정 음압 병상의 수만 43, 민간의료기관의 음압 병상을 포함하면 383개 병상이 확보됩니다. 대구지역에서와 비슷하게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 수용할 여력도 차이가 나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 시의 역량을 포함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표면적으로만 보면 박원순 시장은 대구지역 코로나 확진자를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고, 이재명 지사는 확진자 대신 일반 환자를 보내 달라고 발언해 환자를 꺼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지자체의 역량에 맞는 제일 나은 선택을 내린 것뿐입니다. 음압격리병실이 적은 경기도는 일반 환자를 수용함으로써 대구지역의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나온 환자들을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음압격리병실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은 감염병 전담병원의 일반 병실에 수용하기 힘든 중증환자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대구지역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생각하면, 거물급 정치인의 이번 선택이 아쉽기는 하지만 음압격리병실의 서울 편중 현상에 영향을 받은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고, 유지·관리비도 일반 병실보다 많이 들지만, 음압격리병실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적인 시설입니다. 음압 병상 확충 이후 처음 맞는 감염병 위기라 일정 정도의 혼란은 어쩔 수 없지만, 지자체장의 정무적 판단 외에 적절한 이송 프로토콜이 정립되어야만 이런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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