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100년] '천황'을 신처럼 떠받들며 아첨

  • 기자명 자유언론실천재단
  • 기사승인 2020.03.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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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재단은 20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 100년에 맞춰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 보도 100선>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내용을 뉴스톱에 칼럼으로 기고합니다

 

11. ‘천황을 신처럼 떠받들며 온갖 아첨

1938년 새해 첫날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천황부처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리고 천황이 대원수로서 장병들 걱정 때문에 무더위를 피하는 일조차 삼가고 언제나 군복을 입고 지낸다는 자못 감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새해 첫날의 이런 지면은 동아가 강제 폐간된 1940년까지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그뿐 아니라 동아는 일본의 건국기념일인 기원절,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 명치절 등 일본의 명절 때마다 요란스럽게 축하 기사와 사설을 싣고, “황은(皇恩)의 광대심후함에 감격하면서 천황과 그 조상들을 노골적으로 신격화했다.

금일은 천장의 가절이다. 천황 폐하께옵서 38회의 어탄신일을 맞이하옵시는 날이니 황공하옵께도 군정의 어친재(御親裁)에 신금(宸襟:임금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옵시고 전선의 장병의 노고를 휼()하옵시는 성은에 공구감읍하는 바이다.”(1939. 4. 29. 사설 봉축천장가절)

신무 천황의 어창업을 추봉(追奉)하며 국체의 존엄, 이상, 일본문화, 내선일체의 정신 발양에 노력하고 현하 당면하고 있는 동아 신질서 건설에 매진할 국민의 각오를 공고히 하고자 ”((1939. 2. 11. 기원절 봉축 특집사설)

 

 

이때가 언제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일전쟁을 민족독립의 절호의 기회로 보고 광복군을 편성, 중국의 항일군과 연대하여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때 아닌가. 그런데 2천만 민중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던 동아일보는 내선일체를 다짐하고 제국신민으로서 총후 후원을 아끼지 말자고 소리 높이 외쳤다. 동아는 당시의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제의 강요 때문이었다고 구차한 변명을 할지 모르지만, 민족언론이라면 의당 보여줬어야 할 저항다운 저항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변명은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12. 일제의 지원병제도와 황국신민화 교육 적극 지지

193843, 동아일보는 양 제도 실시 축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양 제도육군 지원병 제도조선교육령을 지칭하는 것인데, 동아는 이 사설에서 두 제도가 조선 민중에 내려진 축복인 듯이 미화했다.

지원병 제도의 실시는 조선 민중에게는 병역의무를 부담시키는 제1보이다. 종래에는 조선민중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을 주저하여 왔다. 그러하였으나 지나사변을 계기로 조선 민중의 총후 활동은 열성을 다한 바 있어 남 총독의 영단은 역대 총독이 상상도 하지 않던 병역의무를 조선민중에게 부담시키는 제1보를 답출케 된 것이다. 또한 교육령 개정은 남 총독의 5대 정강 중의 국체명징, 교학쇄신의 구체화로서 조선 교육사상 획기적인 것이다. 이에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단련을 3대 안목으로 하여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이미지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지원병제도는 일제가 조선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기 위해 병역의무의 예비적 조치로 만든 제도였으며, 교육령 개정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대일본제국의 신민임을 명확히 깨닫고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루는 데 적극 참여케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그것이 무슨 특혜라도 되는 양 두 제도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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