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길거리 소독, 효과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3.0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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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소독약 열풍이 불었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높아지고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자 총선 후보들이 약통을 메고 거리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은 지역 군부대와 협조해 화학부대를 동원해 거리 소독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거리소독은 실질적으로 큰 방역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K-10 제독차량. 출처: : 서울시 보도자료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K-10 제독차량. 출처: : 서울시 보도자료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4일 긴급 서울시 안전관리위원회를 개최하고 수도방위사령부의 협력을 요청했다. 이에 수도방위사령부는 제독차량12대와 병력 411명을 긴급 투입했다. 서울시는 “각 지자체의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소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장병들은 은평구 일대에서 제독차 방역을 실시했다. 감염이 확산된 대구 경북은 물론 강원,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군 제독차가 동원돼 거리 소독에 나섰다. 시민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왜 아깝게 도로에 소독약을 쏟아 버리냐’는 의견과 ‘군부대까지 나서서 동네를 소독해주니 안심이 된다’는 입장이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선거철을 맞은 정치인들도 방역활동을 하러 거리로 나섰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25일부터 종로구 거리 방역에 나섰다. 약통을 둘러메고 분무기로 거리에 소독약을 뿌리며 유권자를 만나고 있다. 공중화장실에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거리에 약을 뿌리는 장면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소독약을 뿌리기도 한다. 나경원 의원은 마스크를 코 밑에 걸친 채 길거리에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이 보도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길거리에 소독약을 뿌리면서 방역활동을 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거리소독은 실질적으로 큰 방역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감염증이 주로 비말 또는 접촉으로 전염되고 트인 공간보다는 좁고 밀폐된 곳에서 감염 위험이 더 크다는 점에서 거리 소독은 방역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은 2015년 메르스사태 당시에도 있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 감염 위험이 높은 곳에 우선 분배해야 효과적으로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이동훈 내과 전문의는 “도로보다는 사람이 밀집하는 곳의 손이 닿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독하는 것이 감염 예방 차원에서 더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지침에도 소독제를 헝겊에 적셔 오염된 표면을 문질러 닦으라고 명시돼있다. 분사 방식, 특히 압축 공기를 사용한 약품 분사는 표면에 붙어있던 바이러스가 에어로졸화 돼서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금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2월 26일 종로에서 방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황교안 예비후보 선거캠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2월 26일 종로에서 방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황교안 예비후보 선거캠프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이 2월 22일 동작구에서 방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강남4구, 일류동작, 나경원' 페이스북 페이지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이 2월 22일 동작구에서 방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강남4구, 일류동작, 나경원' 페이스북 페이지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상가 인근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출처: 심상정 페이스북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상가 인근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출처: 심상정 페이스북

 

전문가들은 도로에 소독약을 뿌리는 방식은 실제 감염 예방 효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특히 손이 많이 닿는 부분을 소독해야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대한의사협회 조승국 공보이사(전문의)는 “도로 소독은 길바닥에 손을 비빈 뒤에 코에 갖다대는 사람이 있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자체장, 정치인들이 보여주기에 치중해 인력과 약품을 낭비하지 말고 소독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소독약을 도로에 뿌리는 것은 크게 방역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51:30 부터) 김 교수는 "분사형 방역이 실효성을 갖췄는지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뿌리는 방식보다 소독제를 적셔서 문지르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들이 사용하는 연막소독 방식도 전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경유에 소독제를 섞어 고열로 태워서 연기를 내뿜는 이 방식은 방역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주민들이 경유를 태운 연기를 들이마셔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하얗게 피어나는 연기가 주는 시각효과 때문에 일부 지자체들은 아직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이 안심하기 때문에 실질적 효과와는 상관없이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일부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연막소독이 이어지자 질병관리본부는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자체와 정치권, 군의 충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보여주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는 효율적인 방역활동을 펼치기 바란다. 혹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항변할 수는 있겠으나 국민을 안심시키는 실효성있는 방역활동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20년 3월 9일 오후 1시 30분 1차 수정: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길거리 방역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와 사진과 기사를 추가했습니다.

*2020년 3월 13일 오후 8시50분 2차 수정: 중복된 단락을 수정하고 질병관리본부 방역 지침을 반영해 기사를 보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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