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 텅 비었다, 바이러스 때문에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20.03.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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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감염 여파로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차이나타운도 고통받고 있다는 현지언론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건 2, 3주 전의 일이다. 급기야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 의장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주기 위해 차이나타운을 방문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금문교는 가지 않더라도 차이나타운은 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차이나타운은 인기 있는 곳이다. 1849년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온 미국 중국계 이민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장소, 차이나타운. 3월 8일 일요일, 코로나 사태 이후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산호세(San Jose, 국립국어원 표기로는 새너제이) 집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클레이 스트리트 250번지, 골든게이트웨이주차장(Golden Gateway Garage)에 차를 세운 건 낮 12시 25분. 차이나타운까지 걸어서 5-10분 정도 거리인 이 주차장은 주말 하루종일 주차비가 8달러인데, 차이나타운에서 밥을 먹거나 물건을 사면 3달러만 받는다. 주말 오전에 가도 주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빈 공간을 찾느라 헤매기 일쑤다. 하지만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2층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는 아예 막아놓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근처 주차장. 주말이면 빈 공간을 찾기 어려웠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 2020. 3. 8. 황장석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근처 주차장. 주말이면 빈 공간을 찾기 어려웠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 2020. 3. 8. 황장석
손님이 없어 2층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예 막아버렸다. 2020. 3. 8. 황장석
손님이 없어 2층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예 막아버렸다. 2020. 3. 8. 황장석

주차장을 나와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 지나치는 주차장 건물들에도 빈 공간이 수두룩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올 때마다 늘 신경 쓰이는 게 주차공간을 찾는 일인데, 이런 경우가 있다니! 

주차장 뿐 아니라 길도 한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함께 간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이건 뭐 도로를 막고 영화 촬영하는 것 같네. 촬영팀은 안 보이지만."

조금 걷다 보니 차이나타운의 상징 같은 공원이 보인다. Portsmouth Square, 한자로 화원각(花園角, 화위안자오).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카드놀이도 하고, 바둑도 두는 이곳은 일종의 '차이나타운 탑골공원' 같은 곳이다. 엊그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60대 이상의 주민들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권고해서 그런 건지 얼핏 세어 보니 70명 정도나 될까. 200, 300명 정도 모여 놀음을 하다가 이따금 언성을 높여 말싸움을 하던 노인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길을 걷다 보니 멀리서 '파파박' 하는 굉음이 들렸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폭죽소리. 한산한 동네에서 70, 80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사자춤 공연이 한창이었다. 길게 매달려 있던 폭죽이 모두 터지고 굉음이 사라진 뒤 주최 측 관계자로 보이는 중국계 남성에게 무슨 공연인지 물었다. 

"음력 새해를 기념해서 매년 하는 공연인데, 원래 이때쯤 한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했더니 한숨을 쉰다. 

"그러게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죠. 예년의 반도 안 돼요. 우리 공연팀도 바이러스 감염 우려 때문에 딱 절반만 참여했답니다. 참 걱정이네요."

차이나타운 한 골목에서 중국계 공연단이 음력 새해를 기념하는 사자춤 공연을 하고 있다. 2020. 3. 8. 황장석
차이나타운 한 골목에서 중국계 공연단이 음력 새해를 기념하는 사자춤 공연을 하고 있다. 2020. 3. 8. 황장석

문득 지난해 2월 하순 어느 토요일에 갔던 차이나타운 골목에 가보고 싶어졌다. 당시 골목은 음력 새해를 맞아 놀러나온 사람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체이스은행, 중국어로 운수 좋은 은행이라는 뜻의 대통은행(大通銀行) 앞. 지난해 신년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찾아왔던 인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딱히 명절이 아니라도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다.

왼쪽은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차이나타운. 오른쪽은 2020년 3월 8일 차이나타운.
왼쪽은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차이나타운. 오른쪽은 2020년 3월 8일 차이나타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차이나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점 중 한 곳, Great Eastern Restaurant. 딤섬을 파는 이곳은 2012년 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점심을 사가지고 간 곳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유명인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차이나타운 식당이라 평일에도 점심 저녁 때 가면 이름을 적어놓고 20, 30분 기다리기 일쑤인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인기식당인 Great Eastern Restaurant 정문. 2020. 3. 8. 황장석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인기식당인 Great Eastern Restaurant 정문. 2020. 3. 8. 황장석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보인 건 휑하게 비어 있는 테이블들이었다. 웨이터는 빈 테이블 중의 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올 때면 종종 들르는 식당이지만 줄 서지 않고 바로 안내를 받은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웨이터에게 넌즈시 물었다.

"올 때마다 기다렸는데 오늘은 바로 앉아서 좋긴 한데 손님이 별로 없군요. 무슨 일이죠?"

"코로나 바이러스, 코비드 19(그는 정확히 'COVID 19'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 동네가 다 이렇답니다. 요새는 기다리는 일은 없어요. 오시기만 하면 이렇게 늘 자리가 있습니다."

딤섬 몇 종류와 매콤달콤한 수프를 시킨 뒤 빈 자리를 세어봤다. 전체 테이블 22개 중 딱 11개가 차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일요일 오후 1시 30분. 사실상 파리를 날리고 있는 셈이었다.

 

Great Eastern Restaurant 1층 내부. 테이블 절반이 비어 있다. 2020. 3. 8. 황장석
Great Eastern Restaurant 1층 내부. 테이블 절반이 비어 있다. 2020. 3. 8. 황장석

 

이 식당은 1층에선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고, 아래층은 딤섬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파는 곳.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한쪽 구석에만 불이 켜져 있다. 손님이 없어 장사를 하지 않는 것. 불 켜진 곳에 있는 테이블에선 직원 한 명이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주문한 음식을 먹는데 옆에서 독특한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 앉은 커플이 손세정제를 다정하게 나눠 바르고 있었다. 저 친구들은 원래 식당에서 손 씻는 대신 세정제 바르는 친구들이었을까.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 근처 페리빌딩에 들렀다. 뉴욕의 첼시마켓보다 규모는 작지만 맛있는 음식점과 식품점, 카페 등이 모여 있어 주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주말엔 밀려드는 사람들로 어딜 가나 줄을 서야 하는 장소. 아니나 다를까 한가롭게 산책하기 좋을 정도로 방문한 사람들 숫자가 적었다. 일요일 점심 직후인데 여성용 화장실 앞엔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건물을 빠져나오려는데 통로 한 가운데 설치된 뭔가가 보였다. 밑 부분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액이 분사되는 손세정제 장치였다. 이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내 눈에 띈 것일까. 손상된 기억력을 탓하며 씁쓸한 기분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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