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과 '뫼'가 그립다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10.3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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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년부터 1888년까지 280여 년간 30만 명이 등재된 경상도 단성현(현재 경남 산청지역)의 호적대장에는 ‘馬堂金’라는 인명이 나온다. 마당금이 누굴까? 마당금으로 읽지 않고 ‘마당쇠’라 읽는다. 마당쇠? 아, 그 마당쇠야? ‘마당쇠’라고 하니 금세 익숙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馬堂金’는 조선시대 노비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馬堂金’을 ‘마당금’이라 읽지 않고 ‘마당쇠’라 읽는 것은 이두식 표기이기 때문이다. 앞의 두 글자 ‘馬’와 ‘堂’은 글자의 소리로 읽고, ‘金’은 뜻으로 읽어 ‘쇠’가 된다. 이두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인 고대에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할 때 고안된 표기법이다.

한자라는 문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표기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보게 된다. 한자는 한 문자에 소리와 뜻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시각화된 문자를 빌려오면서 동시에 소리와 뜻까지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한자를 이제 소리로만 알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명사를 표기하는 데 한자의 뜻은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한 소리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우리말 문자화의 1단계였다. 명사 중에서도 사람 이름[유리(儒理), 말추(末鄒), 거칠(居柒), 이사(異斯)], 벼슬 이름[이대간(伊代干), 이사금(以師今), 마립간(麻立干)], 땅 이름[사열이(沙熱伊), 매홀(買忽)], 나라 이름[가야(伽耶), 서라벌(徐羅伐)] 등의 고유명사 표기에 한자의 소리를 빌린 것이다.

한자의 소리가 아닌 뜻을 빌리기도 했다. 사람 이름[원효(元曉), 혁거세(赫居世)], 벼슬 이름[상가(相加)], 땅 이름[추화(推火)], 나라 이름[조선(朝鮮)] 등의 고유명사 표기에 이 방식이 적용된다. 신라인들은 또 한자의 뜻으로 우리말을 적은 다음에 한자의 음을 빌려 나머지 음절을 보충하는 표기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누리’라는 말을 세리(世里)로 표기하고 있는데, 세(世)는 누리의 뜻을 새긴 표기이고 여기에 리(里)가 덧붙어 음을 보충한 것이다.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이렇듯 선조들은 한자로 우리말을 적을 때 소리로도 적고 뜻으로도 적었다. 다음은 신라시대에 지어진 향가 처용가다.

“東京明期月良夜入伊遊行如可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二肸隱吾下於叱古二肸隱誰支下焉古本矣吾下是如馬於隱奪叱良乙何如爲理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처용가는 한자로 적혀있지만 한문을 잘 아는 전문가들도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뜻으로도 적고 소리로도 적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양주동 박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풀이했다. ‘東京’은 ‘동경’이라 읽지 않고 뜻으로 ‘셔블(서울)’이라 읽는다. ‘明期月良’의 ‘明’은 ‘밝다’는 뜻으로 풀었고, ‘期(기)’는 덧붙인 것이므로 ‘발기’라 읽으며, ‘月良(월량)’은 ‘다래’라 읽는다. 이처럼 처용가는 소리로도 읽고 뜻으로도 읽어야 비로소 해석이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쉽게 풀면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랴?”이다.

한글 창제 이전의 이두 표기방식.

‘馬堂金’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한자를 이용해 인명을 적을 때, 이두로 적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국어학사상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니까 17~19세기까지도 한자를 ‘뜻으로도 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한국어에서 한자를 ‘뜻으로 읽는 방식’이 자취를 감추었다.

‘明月’은 ‘명월’이라 읽고 ‘밝은 달’이라 읽지 않는다. ‘龍川’은 ‘용천’이라 읽고 더 이상 ‘미리내’라고 읽지 않는다. 1980년대 ‘생일’이란 노래로 사랑받았던 ‘가람과 뫼’의 가람은 강(江), 뫼는 산(山)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 일상어에서 가람과 뫼는 사라지고 오로지 강과 산만 남았다. ‘江山’을 ‘강산’이라고만 읽기 때문이다.

고대에 우리와 처지가 비슷해서 한자를 사용했던 일본은 10세기 전후로 성립된 자신들의 가나문자가 있음에도 지금도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어 문장은 여전히 일한문 혼용이고, 한자 어휘와 가나문자가 섞여 있다.

人が親切である. 사람이 친절하다.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읽는다. “히토(人)가 신세츠(親切)데아루.” 두 번째 한자 어휘 ‘親切(친절)’을 ‘신세츠’라고 읽는 것은 한국인들이 ‘親切’을 ‘친절’이라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독이다. 그러나 맨 앞에 나온 한자 ‘人(인)’은 ‘히토(ひと: 사람)’라 읽는다. 이것은 ‘金’을 뜻인 ‘쇠’로 읽는 것과 같다. 훈독이다.

이처럼 일본어에서는 지금도 한자를 뜻으로도 읽고 소리로도 읽는다. ‘人’을 ‘히토’라 읽는 것은 훈독이지만,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말할 때는 ‘캉코쿠히토’나 ‘니혼히토’라 읽지 않고 ‘캉코쿠징’, ‘니혼징’이라고 읽는다. 이때는 ‘징’이라고 음독을 한다. 이렇게 음독과 훈독을 하므로 일본어에서 한자는 여러 가지 독음으로 읽힌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에게는 물론 일본인들에게도 어렵다.

신문의 한자는 물론이고 드물게 쓰는 한자가 적힌 길거리 간판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인들의 명함에는 한자로 적힌 이름 위에 가나로 독음을 표시한다. 왜냐하면 명함을 받는 상대가 한자로 적힌 자신의 이름을 읽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로마자로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 일본인 가운데에도 자신들이 쓰고 있는 한자의 독음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음독과 훈독의 공존은 매우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人’을 뜻으로 ‘히토(사람)’라고 읽는 것처럼 ‘山’도 ‘富士山(후지산)’의 경우처럼 음독만 하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やま(야마)’라고도 읽으므로 일본어에는 옛말이 많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登山’을 ‘등산’이라 읽지만, 일본인들은 음독으로 ‘토잔(とざん)’, 훈독으로 ‘야마노보리(やまんぼり)’라고 읽는다. 훈독 ‘야마노보리’를 직역하면 ‘뫼타기’ 또는 ‘뫼오르기’ 정도가 될 터인데, ‘山’을 ‘산’이라고만 읽는 바람에 ‘뫼’를 잃어버린 한국인들에게 몹시 부러운 대목이다. 까다로운 한자 읽기가 준 선물일까?

추측이지만 20세기 초까지는 한국인들 역시 뜻으로 읽는 훈독을 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 최남선의 시  '海에게서 少年에게'를 배울 때, ‘해에게서 소년에게’라고 배웠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라고 하면 ‘태양’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제목에 적힌 글자는 ‘太陽(태양)’이 아니고 ‘해(海)’다. ‘바다’다. 그러니까 이것은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아니고 ‘바다에게서 소년에게’라고 읽지 않았을까?

최남선의 시 '海에게서 少年에게'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라고 시작하는 3·1독립선언서 역시 같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이라고 읽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제(오늘) 우리 조선’이라고 읽지 않았을까? 그래야 한국어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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