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접접촉 없어도 모두 공개...'확진자 방문지 무차별 공개' 공포 부추긴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3.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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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관련 재난안전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 확진자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알려주는 이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포위망이 좁혀들어오는 느낌이다. 문자 메시지엔 지자체 홈페이지 링크가 걸려있어 누르면 확진자의 동선 정보가 나타난다. 최근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고 동선이 겹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은 일주일 전쯤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시에 이 확진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나돌아다녔을까 하면서 약간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확진자의 동선 정보와 함께 마스크 착용 여부가 항상 따라다닌다. 어디를 갈 때는 썼지만 다른 장소에선 쓰지 않았다. 비록 내가 가진 않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 어떻게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머무른 시간이 짧고 확진자와 응대한 영업장 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면 밀접 접촉자가 없다고 판정하는 모양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소독을 완료했다고 알려준다.

서초구청 홈페이지 코로나19 정보 공개
서초구청 홈페이지 코로나19 정보 공개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난안전문자는 사람의 생명 신체 및 재산에 대한 피해가 예상되면 (정부 또는 지자체, 공공기관이)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하여 기간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에게 요청하는 문자 메시지이다. 재난 정보란 자연재난(호우, 태풍 등), 사회재난(화재, 붕괴 등) 및 민방공상황발생 등의 정보를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사회재난(감염병)에 속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통신사에게 송출을 요청할 수 있다. 최근 지자체들은 관내 확진자 발생 또는 다른 지자체 확진자가 관내에서 움직인 동선 정보 등을 발송하고 있다. 감염병 발생 동향을 알려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위험 지역을 피하도록 하는 게 주 목적이다. 최근 지자체들은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확진자 발생 소식을 간략히 알리고 자체 홈페이지 링크를 걸어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알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지자체용 대응지침 최신판(3월6일자)에 따르면 동선 공개 대상은 확진자로 한정된다. 공개 범위는 역학적 필요성 등 감염병 예방 관리에 필요한 정보라고 돼있다. 시점은 증상 발생 1일 전부터 격리일까지, 장소는 이동 수단을 포함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만큼 확진환자로 인한 접촉자가 발생한 장소로 정해져있다. 접촉자 범위는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확진자의 증상 및 마스크 착용 여부, 체류 기간, 노출 상황 및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도록 돼있다.

코로나19 지자체용 대응지침 3월6일자.
코로나19 지자체용 대응지침 3월6일자.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는 확진자 발생 병원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의 감염 공포를 부추겼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병원 의사인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 수를 공개하면서 정부는 최초 확진자 발생 18일 만에 확진자 발생 병원을 공개했다. 이후 감염병 관련 정보 공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최초 확진자 발생부터 정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된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확진자수가 수천명에 이르며 국민들의 공포심과 비례해 확진자 정보가 담긴 재난안전 문자에 대한 피로도도 증가했다.

방역당국은 확진자 발생시 격리조치와 주거지 및 주요 동선 소독을 마친 뒤에 공개하고 있다. 동선 공개로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은 방역 당국이 미처 점검하지 못한 접촉자가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증상이 나타나는지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보내는 재난안전문자 또는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선 정보에는 역학조사 결과 밀접접촉자가 없다고 확인된 곳까지 공개되고 있다. 확진자가 다녀갔더라도 밀접접촉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부 소독을 마친 곳은 사실상 접촉을 통한 감염 전파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구글 앱스토어에 '확진자 동선'으로 검색한 결과.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공개하는 앱들이 여러개 출시됐다.
구글 앱스토어에 '확진자 동선'으로 검색한 결과.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공개하는 앱들이 여러개 출시됐다.

 

하지만 특정 영업장이 공개된 확진자 동선에 포함되면 일반인들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갖게 되고 방문을 꺼리게 된다. 사태 초기 공개된 확진자 동선 정보를 토대로 확진자의 동선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알람을 울리는 앱도 출시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 소독을 마친 곳이라 전혀 감염 전파의 위험이 없음에도 기피 대상으로 낙인을 찍게 된다.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소문난 곳은 장사를 접어야 할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현재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개되는 확진자 동선 정보가 과연 "시간적 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만큼 확진환자로 인한 접촉자가 발생한 장소"라는 지침의 내용을 따르고 있는지 의문이다. 건물 입주자와 방문자가 많아 밀접접촉자를 가려내는데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이번 신도림동 콜센터 감염 사례 정도가 동선공개가 꼭 필요해보인다.

이와 관련해 11일 오전 서울시가 보낸 안전 안내문자를 살펴보자. 서울시는 [3.3~3.8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방문하였던 분 중 열, 기침 등 호흡기증상 있으시면 마스크 착용 후 보건소 선별진료소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다.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신도림동 콜센터 집단감염 관련 서울시 안전안내문자
신도림동 콜센터 집단감염 관련 서울시 안전안내문자

 

역학조사 결과 밀접접촉자 발생이 없고 이미 소독까지 마쳐 감염 전파 위험이 없는 곳을 인권 및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사태 초기 개별환자의 동선을 공개하다가 2월23일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확진자 동선 정보 공개를 '지자체별 환자 등 동향정보'로 대체해 제공하고 있다. 이후 확진자의 동선 정보 공개는 지자체의 일이 됐다.

이후 지자체의 동선 공개를 살펴보면 감염 전파 예방이라는 원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우리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더 강해보인다. 다수의 언론은 속보 경쟁에만 급급해 동선 공개의 의미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퍼나르기 식 보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감염 위험을 낮추고 불안과 공포를 줄일 수 있는 맞춤형 동선 공개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정부 및 지자체가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이동 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확진 환자 개인별로 방문 시간과 장소를 일일이 공개하기보다는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별로 방문 장소만을 공개해 확진 환자의 내밀한 사생활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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