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신봉자와 함께하는 더불어시민당...틀린 것은 틀렸다고 해야 한다

[이문영의 역사체크]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부도지', '마고력'으로 인해 불거진 유사역사학 논란

  • 기사입력 2020.03.23 12:04
  • 최종수정 2020.07.29 12:13
  • 기자명 이문영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과거 이력 때문에 <환단고기>가 언론의 하이라이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환단고기>가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거론된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정희 대표는 <부도지(符都誌)>를 보고 마고력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도지>라는 책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부도지>는 신라의 박제상이 쓴 <징심록(澄心錄)>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위서이다. 이 책을 보면 4~5세기 경의 인물인 박제상이 7언절구의 한시까지 짓고 있는 등 5~6세기 경의 금석문을 보면 알 수 있는 신라인의 한문 실력을 능가하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도 <징심록>에서 근본을 취했다고 주장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부도지(符都誌) 표지. 신라의 박제상이 쓴 '징심록(澄心錄)'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위서다.
부도지(符都誌) 표지. 신라의 박제상이 쓴 '징심록(澄心錄)'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위서다.

 

<부도지>부도는 천부(天符)의 도시라는 뜻으로 환웅의 아들 임검이 건설했다고 나온다. <부도지>는 마고-궁희-황궁-유인-환인-환웅-임검-부루-읍루로 권력이 이어지며 황궁 이후 7천년을 7명이 다스렸다고 이야기한다이후 은나라 기자가 망명해 와서 핍박하는 바람에 동해안 쪽으로 쫓겨난 이들이 새로 나라를 만드니 그것이 삼국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신라가 외세에 맞서 천부의 도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에 대한 것이다. 즉 이 책은 결국 한민족의 몰락을 차례차례 기록한 책이다책의 지은이를 박제상이라고 해놓으니 그 후의 역사는 기술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난데없이 김시습을 불러내서 <징심록추기>라는 글을 덧붙여놓았다. 이 김시습의 글에서 박씨 가문은 김유신, 왕건, 강감찬, 세종대왕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온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책이지만, <환단고기>나 마찬가지로 <부도지>도 원본이 없다. 북한에 원본인 <징심록>을 두고 오는 바람에 박금(朴錦 1895~1969)이라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 <징심록> 중 한 편인 <부도지>를 복원했다고 주장한다북에서 보던 <환단고기>를 잃어버리고 기억을 되살려 다시 만들었다는 <환단고기> 출현 경위와 흡사하다. 사실상 이런 위서의 전형적인 등장 형태이다. 전세계적으로 늘 동일한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원본을 잃어버렸으나 기억하고 있어서 복원했다는 패턴이다.

<부도지>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부도지>에 따르면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출발한 우리 민족은 (중략) 천부의 본리를 술회하여 전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수메르에 근원을 둔 기독교 사상의 뿌리가 되었으며, 스키타이족에 의해 이루어진 불교와 그리스의 고대 문화도 한국의 천부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략) 피라미드나 지구라트와 같은 높은 탑이나 계단이 마고성에서 소()를 만들던 옛 풍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부도지>는 전세계 문명을 한민족이 다 만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성경을 이리저리 베낀 흔적도 역력하다. 포도를 먹고 타락하여 천국을 잃게 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설정을 보면 쉽게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알 수 있다.

한민족이 다스리던 평화롭던 세상은 중국의 요임금이 나와서 어지럽히게 되고 이것을 우리 쪽에서 쳐서 무찌르고, 또 순임금이 나와서 어지럽히니까 또 쳐서 없앴는데, 우임금이 나와서 또 어지럽혔다. 그러자 이번에도 쳐서 무찔렀으나 도저히 타이를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 땅을 버렸다고 나온다이런 전개도 <환단고기>와 동일하다. 계속 한민족이 이기는데 땅은 중국에게 빼앗기는 패턴이다. 실제 역사와 상상의 역사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위대한 한민족이 자기 땅을 잃고 계속 변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부도지><환단고기>나 한민족에 대항하여 영토를 넓힌 중국인의 끈질김을 찬양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마고력 표지
마고력 표지

 

이정희 대표는 2016년에 <마고력>이라는 책을 내서 선보였는데 이 책은 단국문화원이라는 곳에서 만든 것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사적으로 만든 개인출판물인 것 같다. ‘마고력이라는 역법은 1년을 13개월 한 달을 28일로 한 뒤 설날 하루를 보태서 365일을 만드는 형태로 되어있다. 4년마다 정월에 하루를 더한다.

이정희 대표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시간의 근본 단위가 구()라고 말하면서, 구는 그믐의 그림자가 더 긴 달의 시간 길이라고 말한다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이 대목이 언급되지 않는다. 말을 안 했을 리는 없을 것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라 빼버렸을 것이다.  이런 인터뷰가 중앙일간지에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정희 대표의 주장은 본인도 말하듯이 <부도지>에 나오는 내용에서 가져온 것이다. <부도지>에서는 1년을 사()라고 하고 월을 기()라고 부른다. 구와 묘라는 말도 <부도지>에 나오는데 300구가 1묘이고, 9,633묘가 1각인데, 1각은 50초라서 1초는 192.66묘이고 57,798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알 수 없는 숫자놀음 끝에 마고력이 정밀하기 이를 데 없다고 주장한다<부도지>의 역법에 무려 4년마다 하루를 늘리는 윤년의 개념까지 들어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갈 데 없는 위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있다. 따라서 어느 직종에서건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면에서는 다 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이정희 대표도 2012년부터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라는 곳에서 사무국장 직을 지내며 통일운동을 해오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 당의 대표가 유사역사학을 공개적으로 신봉하여 문제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정희 대표 본인은 더불어시민당의 비례 대표 논의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의혹의 눈길을 받은 이상 더불어시민당은 비례대표 선출에 철저한 검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유사역사학은 다른것이 아니고 틀린것이다.

맨 왼쪽이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대표다. 유사역사학 신봉 논란이 불거졌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맨 왼쪽이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대표다. 유사역사학 신봉 논란이 불거졌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유사역사학에 심취하거나 단호하게 선을 긋지 않는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1981년에는 국사 교과서 공청회가 열려서 역사학자들을 모욕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2016년에는 동북아역사지도가 폐기되는 일도 생겼다. 유사역사학은 여야를 막론하고 발생하는 질병과 같다. 유사역사학이 주장하는 국수주의 사상은 표면적으로는 정파성을 띠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류 사회의 대다수는 상식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역사학을 전면에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 주장을 책으로 내거나 강연을 통해서 전파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질병으로 작동한 결과 이제는 이렇게까지 커지고 만 것이다.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사역사학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나 우리가 가야할 갈 길을 잃게 만들 것이다. 유사역사학이 좀 과장된 국뽕을 준다고 무슨 큰 문제가 있느냐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도 할 수 있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비판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이다. 비판적 사고는 하나의 사안을 단순화해서 내게 유리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 식으로 사고하다가는 큰일을 당할 수 있는 법이다. 진실은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하다고 해서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이문영     최근글보기
작가이자 편집자, 게임기획자 등 다양한 직종을 거쳤으며 90년대부터 유사역사학에 대한 탐구를 '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를 통해서 발표해왔다. <유사역사학 비판>라는 유사역사학 연구서를 내놓고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시민강좌, 계간 역사비평 등을 통해 유사역사학 비판을 계속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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