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비닐코팅박스 '종이로 분리배출'? 쿠팡의 잘못된 가이드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3.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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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엔 대형마트가 없다. 슈퍼마켓도 없다. 편의점만 하나 있을 뿐이다. 큰 길을 건너 20분 정도 언덕을 내려가면 H대형마트가 하나 있다. 그런데 우리집엔 어린이집 다니는 미취학 어린이가 있다. 장을 보러 아이를 데리고 왔다 갔다 하기에 참 곤란하다. 갈 때는 크게 상관없는데 쌀을 사는 날이나 부피가 있는 물건을 사는 날에는 돌아오는 길이 참 힘들다. 

그래서 온라인쇼핑몰 쿠팡을 자주 이용한다. 광고 문구대로 로켓처럼 빨리 배달해준다. 신선식품도 직접 가서 고른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괜찮다. 처음엔 새벽같이 고생하는 배송기사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불편했는데 몇 번 주문해보니 자기합리화에 빠졌다. ‘내가 주문을 해야 배송기사들도 일거리가 끊기지 않지’하는 식이다.

쿠팡의 신선식품 배달 서비스인 '로켓프레시' 배달상자. 은색 비닐로 코팅된 골판지 상자에 '종이로 분리 배출'이라고 표시했다.
쿠팡의 신선식품 배달 서비스인 '로켓프레시' 배달상자. 은색 비닐로 코팅된 골판지 상자에 '종이로 분리 배출'이라고 표시했다.

 

하지만 한번 주문할 때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산더미처럼 쌓이는 상자는 두고두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계란 한판에 박스 한 개, 바나나 한 송이에 박스 한 개,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을 넣은 박스 한 개, 박스가 산처럼 쌓인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이 베일 듯한 새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꺼내 냉장고에 쟁여 넣는 순간 새 상자들은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로 전락한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자리 차지하는 게 싫어 곧바로 재활용 분리수거 통으로 향한다. 먼저 운송장 스티커를 제거한다. 개인정보가 담긴 부분에 절취선을 넣어 쉽게 떨어지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스티커를 다 떼려면 한참을 씨름해야 한다. 그 다음엔 초록색 테이프를 제거한다. 테이프가 얇아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사선으로 찢어질 때가 많지만 스티커 떼는 것보단 쉽다. 그 다음 상자의 접합 부분을 떼 납작하게 접는다. 정부의 분리 배출 지침에는 납작하게 만든 다음 묶어서 배출하라고 돼 있지만 3~4개를 묶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선다.

납작하게 만든 상자들을 수거함 옆에 날아가지 않도록 잘 쟁여놓고 돌아서려는데 상자 속 은색이 계속 마음을 어지럽힌다. 쿠팡이 신선식품의 선도를 유지하려고 아이스박스 대신 고안해낸 냉기 유지 장치인 듯하다. 재질은 비닐이다. 이 상자는 은색 비닐로 코팅한 골판지 상자였던 것이다. 내가 알기론 비닐 코팅이 된 종이는 '종이류'로 분리배출 할 수 없다. 하지만 쿠팡측에서는 "종이로 분리배출"하라고 상자에 적어 놓았다. 정말로 종이로 분리배출하면 다 해결되는 것일까. 

그래서 쿠팡과 환경부에 질의를 넣었다. 도대체 이 상자는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국민신문고를 통해 환경부가 보낸 회신. 비닐 코팅된 종이는 '종이류'로 분리배출 할 수 없다고 한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환경부가 보낸 회신. 비닐 코팅된 종이는 코팅 부분을 제거해야 분리 배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환경부 "비닐코팅된 종이는 종이류로 분리배출해선 안된다"

환경부는 국민신문고 답변을 통해 “비닐 코팅된 종이는 종이류로 분리 배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종이류로 분리 배출하려면 코팅된 비닐을 다 뜯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게 귀찮으면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버리는 방법을 선택하란다. 우리 동네 재활용품 수거를 담당하는 업체인 S환경에 연락해봤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도 수거가 안 되니 양이 많으면 따로 배출료를 지급하고 버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종이류로 분리배출 하려면 역시 코팅을 다 뜯어내라고 한다.

도대체 코팅된 종이를 종이류 분리수거함에 넣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골판지 만드는 회사에 알아봤다. A제지회사는 “필름 코팅된 고지는 제품 생산시 불순물로 걸려져 분류 처리되고 폐기물(폐합성수지류. 폐비닐류, 쇳조각, 스티로폼 ) 되어 소각처리됩니다라고 알려줬다. 공정에서 자동으로 걸러진다면 그냥 섞어서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코팅된 비닐을 뜯어봤다. 뜯어지긴 하지만 굉장히 번거롭다.
코팅된 비닐을 뜯어봤다. 뜯어지긴 하지만 굉장히 번거롭다.

 

비닐코팅 박스 늘어나면 박스 안 가져가 '폐지대란' 가능성

가정에서 비닐 코팅된 종이를 일반 종이와 섞어 버리게 되면 재생 종이 생산 단가가 높아진다. 우리가 버린 종이 상자는 선별-압축 과정을 거쳐 제지회사로 보내진다. 제지회사에선 압축된 고지(폐지) 기계에 넣는다. 화학약품을 물에 종이를 넣어 곤죽으로 만들고 펄프와 쓰레기를 분리해낸다. 상자를 버릴 비닐 코팅을 제거하지 않으면 선별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코팅을 뜯어내야 한다. 아니면 제지 공정 해리 과정이 길어지게 된다.

선별 인건비가 추가되거나 제조공정이 길어지면 업체에선 당연히 품질 좋고 가격도 매력적인 수입 고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제지업체가 고지를 사들이지 않으면 수거업체가 가정(아파트)에서 박스를 가져가지 않게 된다. 폐지 대란 일어나는 이유이다.

비닐코팅 상자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쿠팡 상담사의 답변. 그냥 버려도 되지만 가져가지 않으면 코팅을 벗겨낸 뒤 버리거나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는 내용.

 

배송 물량은 폭증했지만...엉터리 지침으로 '재활용 쓰레기' 양산하는 쿠팡

그런데 도대체  쿠팡 종이류로 분리 배출할 없는 은박 상자에종이로 분리배출이라고 표시를 놓은 것일까? 애플리케이션 고객 상담을 통해 물어봤다. 쿠팡 상담사는 내부가 은박으로 코팅된 박스 그대로 종이로 구분하여 분리수거가 가능하다 알려왔다. 이어 지자체마다 해당 품목을 재활용하는 과정이 달라 일부에서는 내부 코팅된 상태로는 수거를 하지 않을 있는 참고 부탁드림이라고 덧붙였다. 아파트 관리실 등에서 코팅 박스를 종이로 구분해 버릴 없다고 하는 경우 박스 안쪽의 은박을 분리수거하거나 분리가 번거로울 경우 일반 쓰레기로 버릴 있다 설명했다.

참으로 앞뒤도 없고 사실과도 다르다. 쿠팡의 아이스팩도 마찬가지이다. 종이, 생분해성 필름과 만을 사용한 친환경 아이스팩이라고 놓고종이라는 분리배출 표시를 붙여 놨다. 하지만 역시 코팅된 종이이기 때문에 종이로 분리 배출할 없다. 도대체 쿠팡은 왜 '종이류'로 분리배출 할 수 없는 비닐 코팅 상자에 '종이로 분리배출'이라는 표시를 인쇄해 놓았을까. 이에 대한 쿠팡의 설명을 듣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이메일, 전화를 통해 연락을 해봤지만 26일 오전 현재 연락이 닿지 않았다. 추후 언제라도 쿠팡이 설명을 해 온다면 기사에 반영할 준비가 돼 있다.

환경부의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중 상자류 분리배출요령. 비닐코팅 부분을 제거해 버리라고 규정돼 있다.
환경부의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중 상자류 분리배출요령. 비닐코팅 부분을 제거해 버리라고 규정돼 있다.

 

2017년 기준 택배 물동량은 23억1900만 상자라고 한다. 재사용 가능한 상자로 바꾸는 게 가장 좋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어렵다면 재활용 분리배출이라도 똑바로 할 수 있게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는 게 급선무다. 쿠팡에 다시 주문을 넣을지 망설이게 되는 오늘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비닐코팅 박스를 종이로 분류해 분리수거가 가능하다는 '쿠팡의 주장은 거짓'이다. 환경부가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에서 밝혔듯이 비닐코팅 부분을 벗겨내야 한다. 쿠팡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벗겨서 분리수거를 하게 할 경우 주문량이 줄어들수가 있어서 그냥 버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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