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最高) '힌두민족주의' 상징을 선거 코앞에 세우다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8.11.0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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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인도 팩트체크] 사르다르 빠뗄 동상 건립의 정치적 의미

높이 182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 제막식이 10월 29일 인도 연방 정부 수상 모디(Narendra Modi)의 고향 인도 서부 구자라뜨(Gujarat)주 나르마다(Narmada) 강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인 사르다르 사로와르 댐(Sardar Sarovar Dam)이 보이는 어느 작은 섬에서 거행됐다. 모디가 주수상으로 재직하던 마지막 연차인 2013에 착공한 이 동상 건립에는 5년 가까운 시간이 거렸고, 비용은 한화로 약 5000억 원이 들었다. 그런데 이 동상은 인도의 아버지라 부르는 간디도 아니고, 인도 초대 수상 네루도 아니고 힌두교 최고의 신 쉬바도 아니다. 그는 사르다르(Sardar 귀족의 존칭)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간디의 오랜 동지이자 벗이며 인도 정부 초대 내무상과 초대부총리를 역임한 발라브바이 빠뗄(Vallabhbhai Patel)이다. 왜 빠뗄일까?

 

빠뗄은 무력으로 무슬림 토후국을 흡수한 힌두민족주의자

빠뗄은 초대 내각에서 인도 연방 정부를 구성하는 소위 국민국가 건설의 책임자였다.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았을 때, 584개의 토후국(princely state)이 있었는데, 이 토후국은 실질적으로는 영국 정부에 예속되어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한 일종의 괴뢰국이었다. 그들은 영국이 그들이 인도로 속하든지 파키스탄으로 속하든지 알아서 결정하라고 실질적인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 그냥 인도 연방에 속하지 않고 인도 영토 안에 섬과 같은 형태로 독립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대에는 어떻게 해서든 선택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인위적 대이동이 벌어졌지만, 주로 서부와 데칸 지역에 산재해 있던 많은 토후국 가운데 무슬림이 왕인 나라들은 파키스탄으로도 갈 수 없고 인도 연방에 속하는 것을 거부 하였다. 이때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강제로 인도 연방 정부에 포함시켜 국가 건설을 완성시킨 이가 사르다르 빠뗄이다.

간디는 반(反)서구문명에 기반을 둔 농촌 중심의 힌두-무슬림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촌락 봉건 사회주의자 - 이런 명명이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고, 반면에 네루는 친서구의 사회주의자이면서 반공산주의 의회민주주의자로서 국가를 위해 무슬림과 함께 가야 하지만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이에 반해 빠뗄은 파키스탄을 ‘병든 다리’라고 비유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전형적인 힌두 중심의 민족주의자다. 그래서 그가 무슬림 토후국을 쓸어버리는 책무를 맡은 것이다.

 

세계 최대 182m 높이의 빠뗄(Vallabhbhai Patel) 동상이 나한드라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인도 구자라뜨 주 나르마다 강에 건설됐다.

'간디 암살' 극우 힌두민족주의 단체 민족의용단에 면죄부

분단이 벌어진 후 파키스탄 땅에서 피난 내려온 ‘우리’ 힌두 난민은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포애가 강한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동포를 쫓아낸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을 점차 키웠고, 그러면서 그들은 극우 반(反)무슬림주의자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난민 캠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힌두와 무슬림 사이에 폭력 충돌과 난동이 벌어졌는데, 그 뒤에는 항상 극우 힌두 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난동을 부인하면서 자작극을 비롯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난동을 사주하고 실행에 옮겼다. 낮에는 힌두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자이고 밤에는 무슬림에 대한 테러 집단이었다. 민족의용단은 이후 지금까지 인도 최대 규모의 극우 조직으로 활동해왔는데, 현 수상 모디가 이 단체 출신이다. 그러던 중 단원 가운데 한 사람이 마하뜨마 간디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간디 암살 직후 1948년 2월, 조직의 대표들이 대거 체포되고, 조직의 활동이 금지되었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치명타였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악화되지만은 않았다. 비록 민족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간디를 암살한 것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국민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무슬림에 대한 저항자로서,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지지를 받았다. 힌두 난민과의 사이에서 더욱 굳어진 힌두라는 동류 의식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넓은 동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동류 분위기에서 비록 민족의용단은 극우 계열이고, 빠뗄은 우파 인도국민회의 소속 정치인이지만, 같은 민족주의 분위기 속에서 네루 수상에게 계속해서 활동 금지를 해제하도록 종용하고 조언하여 2년 만에 이루어냈다. 물론 활동 금지를 시킨 장본인도 빠뗄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간디를 암살한 상황에서 내무상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빠뗄은 민족의용단이 인도의 헌법과 국기를 인정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등을 명시한 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그것을 확인한 후에 활동 금지를 해제하였다. 어떻게든 민족의용단에 대한 동지 관계에서의 조치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로선 빠뗄은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그러니 모디가 가장 존경하는 이가 간디나 네루 아니고 빠뗄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통합의 동상(Statue of unity)이 세워진 곳은 세계 최대 사르다르 사로와르 댐 인근이다. 거대한 두 인공물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권리는 희생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모디, 총선 6개월 앞두고 세계 최대 댐 앞에 최고(最高) 동상 건립

그러면 왜 나르마다 댐이 보이는 곳에 동상을 세웠을까? 동상은 모디의 정치적 고향 구자라뜨 주의 나르마다 군(郡. district)에 위치한 강안에 있는 작은 섬에 세워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인 사르다르 사로와르 댐이 동상의 등 뒤에 보이는 곳이다. 사르다르 사로와르 댐은 1979년 ‘나르마다 계곡 개발 프로젝트’(Narmada Valley Development Project, NVDP)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국가 공사로 2017년 모디 수상에 의해 완공식이 거행되었다. 3개 주에 걸쳐 대규모 댐 30개, 중규모 댐 135개, 소규모 댐 3,000개를 건설하는 사업인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댐이 빠뗄 동상 뒤로 펼쳐진 사르다르 사로와르 댐이다. 그 댐 하나를 짓기 위해 수 만 가구가 소개되어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하였는데, 환경 파괴는 차치하고 제대로 된 보상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더 나은 번영을 주기 위한 전진이라고 하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물론 그 번영과 발전을 이끌고 나가는 이는 준공식을 거행한 모디가 되는 것이다. 모디는 국가를 위해 모든 국민이 개인의 권리는 희생하고, 포기하여야 한다는 그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논리 안에서 인도라는 강하고 번영한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 동상의 이름이 통합의 동상(Statue of Unity)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통합이라면 말 할 것도 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라는 의미다. 이번에는 댐도 아닌 일개 동상을 짓기 위해 또 다시 주민들을 쫓아냈는데, 이건 댐 건설과 달리 개발이라는 명분조차 없는 일이다. 주민들은 관광을 위해 쫓겨나는 것이라고 분개하지만, 엄밀히 볼 때 관광은 부차적인 것이다. 사실은 정치 선전용이니 모디의 권력을 위해 주민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문제는 왜 지금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 동상은 모디가 구자라뜨 주 수상으로 재직하던 2013년 10월 31일 즉 총선 시작 6개월 전에 공사를 시작했다가 몇 개월 후 집권하자마자 연방 정부 업무로 격상시켰다. 이번 준공식 또한 총선 6개월 전이다. 빠뗄의 생일이 10월 31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동상 착공식과 준공식을 10월 31일에 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자세히 보면 이 택일은 매우 정치적 행위이다. 인도 총선은 5년 만에 치러지는데 4월부터 두 달 동안 이루어진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총선 끝난 후 그 해나 다음 해에 착공하고 준공하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디는 착공과 준공을 모두 총선이 있기 6개월 전에 했다. 그것은 역사적 인물의 동상은 그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것으로 그 건설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뗄이 총선을 앞두고 연거푸 소환되는 것이다. 모두 선거 승리를 위한 전술 차원이다.

나한드라 모디가 빠뗄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간디도, 네루도 아닌 빠뗄이 동상으로 선택된 이유는 그가 간디를 암살한 극우 힌두민족주의 단체 민족의용단 활동금지를 해제한 '구세주'이자 힌두중심의 인도 통합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모디는 집권하자마자, 힌두 신정국가를 향해 많은 일을 해왔다. 소 도축 문제를 정치적 아젠다로 끌어올렸고, 갠지스강 수질 개선과 정화 문제도 힌두교와 정치의 문제로 연계시켰으며, 불가촉천민에 핍박과 기독교인 재개종 문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한 마라타 동맹의 왕 쉬바지(Shivaji)를 역사의 본질과 관계없이 힌두의 왕으로 치켜세우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인더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이라고 선전하는 등 역사를 통해 다시 파키스탄과 적대적 관계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 ‘우리’ 위대한 힌두 민족이 아시아 동쪽 끝 한반도에까지 공주를 보내 지배를 하였다는 역사도 만들어가고 있다. 모디 입장에서야 참으로 좋은 기회지만, 뭐가 좋은 일인지, 대통령까지 나서 자기 부인을 그곳으로 보내 자기 나라 식민지화 작업에 축하를 한다니 도무지 이해를 하래야 할 수가 없다. 모디의 이러한 힌두 종교 근본주의 정치는 필히 소수민과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지금 그 고도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 빠뗄 동상 제막이다. 인도에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앞으로 6개월 간 무슨 일을 벌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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