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로 호주가 멈췄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0.03.26 08: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누구도 총을 든 사람도 없고 포성 하나 울리지 않지만 이곳 호주는 현재 전쟁터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사재기로 마트 진열대는 텅 비어있고 북적거리던 쇼핑센터는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습니다. 분명 한달 전만해도 이 상황까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발전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매일 발표되는 총리의 새로운 조치들에 사람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아직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유럽과 미국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선진국 이탈리아가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의료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되는 것을 보고 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주도 이탈리아 못지 않게 고령인구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호주에 살고있는 교민으로서 최근에 겪고있는 이 일련의 사태들이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심지어 고통스럽습니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기록하고 고국에 계시는 분들과 이 상황을 공유하고자 이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1. 날짜별 호주 정부의 발표와 상황들

3월 7일경부터 본격적으로 사재기가 시작이 되었으며, 슈퍼 매대에서 휴지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휴지를 두고 모녀와 한 여성 간에 난투극이 벌어지기까지 합니다.

호주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에서 휴지를 두고 구매자간 몸싸움이 일어났다. 필자 이재호 제공.
호주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에서 휴지를 두고 구매자간 몸싸움이 일어났다. 필자 이재호 제공.

 

3월 12일 (목)부터 15일(일) 사이에 3월 16일 월요일부터 호주가 봉쇄(lock down) 될 거라는 소문이 여기저기 파다하게 퍼지게 됩니다. 각종 소셜 미디어(SNS)와 메신저를 통해 이 소문들은 빠르게 확산이 되고 이때 사재기는 최고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슈퍼마켓에서는 사재기로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구매를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휴지와 손 세정제, 파스타, 쌀, 밀가루에 대해 1인당 판매개수를 제한하여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수요 급증으로 개인당 구매 개수를 제한한다는 마트측 공지문.
수요 급증으로 개인당 구매 개수를 제한한다는 마트측 공지문.

 

격리가 예고되면서 호주 시민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사재기 하기 시작했다. 필자 이재호 제공
격리가 예고되면서 호주 시민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사재기 하기 시작했다. 필자 이재호 제공
호주 한 마트의 우유진열대.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우유가 동이 났다. 필자 이재호 제공
호주 한 마트의 우유진열대. 사재기가 시작되면서 우유가 동이 났다. 필자 이재호 제공

 

-3월 15일 :  해외에서 오는 모든 입국자에 대한 14일 자가격리를 발표합니다. 또한 해외에서 출발한 크루즈 선의 입국도 금지됩니다.

-3월 18일 : 100명 이상의 실내모임과 500명 이상의 야외 모임을 금지시킵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1.5미터 이상 떨어질 것을 명령합니다. 또한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양로원(aged care) 방문에 대한 제한이 실시됩니다. 호주인의 해외여행 금지도 권고됩니다. 하지만 호주의 완전한 봉쇄(lock down)는 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합니다.

-3월 19일 : 호주 시민권자, 영주권자와 그 직계가족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시킵니다. 또한 의약품 사재기에 대한 제제에 들어갑니다.

-3월 20일 :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이 날로 커가는 가운데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를 무시한채 해변을 가득 메웠습니다. 사람들로 가득찬 본다이 비치의 사진들은 시민들과 정부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호주 정부의 조치들은 이 날을 기점으로 초강경으로 바뀌게 됩니다.

-3월 22일 오후 : 날로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에 연방정부 안과 별도로 NSW주와 빅토리아주 그리고 ACT주는 의료기관, 금융기관, 생필품 구입처등을 제외한 비필수 업종의 운영을 전면 금지를 선포합니다.(shut down) 또한 학교의 방학을 앞당겨 화요일부터 방학에 들어간다고 밝힙니다.

-3월 22일 저녁 : 호주 총리가 예전보다 더 강화된 조치들을 발표합니다. (1차 제한조치, stage1 restriction) 레스토랑, 카페, 펍, 클럽, 헬스장(gym), 실내 운동시설, 카지노, 극장, 종교시설 등이 전면 폐쇄되고 식당과 카페는 테이크어웨이만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3월 22일 오후 주지사의 발표와 저녁의 총리 발표가 서로 다르다보니 과연 무엇이 맞는 것인 지에 대한 엄청난 혼란이 왔습니다. 빅토리아주 야당대표조차 무엇이 맞는 것인지 시민들이 혼란스럽다는 트윗을 올릴 정도였습니다. 결국 비필수 업종의 전면 중단은 철회되고 총리가 발표한 내용대로 진행된다고 정리되었습니다.

-3월 25일 : 제가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 호주 총리가 더욱 강화된 2차 제한조치를 발표했습니다. (2차 제한조치, stage2 restriction) 쇼핑센터의 푸드코트 폐쇄 (테이크 어웨이만 가능), 집 경매활동 금지, 실내외 마켓 폐쇄, 미용관련 업종(네일, 왁싱, 태닝, 문신 등) 금지, 미용실/이발소 영업은 처음엔 손님당 30분으로 제한했지만 허용, 결혼식 5명으로 제한(주례, 신랑신부, 증인 2명), 장례식 10명으로 제한, 플레이 센터 금지, 해외여행 금지 등등

-그 외 : 각 주들이 주경(주의 경계)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즉 주(state)간 이동에도 제한이 걸린 상황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약 이주간 이렇게 숨가쁘게 하루가 다르게 제재안이 발표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대규모 무급 휴직(stand down)을 발표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은 재택근무로, 운이 나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겨우 버텨나가던 소규모 사업장들은 갑작스러운 폐쇄 결정에 혼돈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복지센터에 몰리는 사람들

한국의 복지포탈센터라 할 수 있는 '센터링크' 웹사이트가 트래픽 폭증으로 먹통이 되고, 오프라인 센터링크 사무실에는 보조금을 신청하려는 사람들 수백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저도 호주 이민생활하면서 이런 모습은 처음봅니다.

호주의 복지센터인 센터링크(Centrelink)에는 실업보조금을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필자 이재호 제공
호주의 복지센터인 센터링크(Centrelink)에는 실업보조금을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필자 이재호 제공

 

3. 환율의 폭락과 물가인상

불과 얼마전까지 1호주달러당 800원하던 환율이 710원까지 급락하였습니다. 현재는 722원으로 약간 회복했습니다. 원화대비 호주달러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는 호주달러가 한국원화보다도 위험통화라는 의미고 호주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환율과 물류비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급등했습니다. 한국슈퍼들은 오늘부터 일제히 가격을 20~30% 인상했습니다. 모든 슈퍼마켓과 식료품점 물건들 가격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4. 한인 레스토랑들의 눈물겨운 자구책

계속되는 매출하락에 자구책을 강구하던 멜버른의 한인업체들이 동맹하여 독자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매장 매출이 급감하자 한인 식당들이 연합해서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재호씨 제공
매장 매출이 급감하자 한인 식당들이 연합해서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재호씨 제공

 

우버이츠와 같은 배달서비스는 높은 수수료 때문에 팔아도 수익이 남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추가배달료 없이 배달하여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윈윈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입니다. 한인 레스토랑 10여개 이상이 모여 하나의 플랫폼으로 광고 및 운영을 하고 있으며 계속 참여하는 레스토랑의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얼마 후에 레스토랑 폐쇄결정이 내려져서 이 어려운 시기에 조금 덜 방황(?)하면서 한인 식당들이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레스토랑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5. 집값과 렌트비 하락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저는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아 정말 눈 앞이 캄캄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최근 2주간 집을 보러다니면서 렌트비가 계속 하락하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중국인들의 입국이 금지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들은 있어도 들어오는 경우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택공급이 수요보다 초과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누구도 이사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집을 보러 다닐 때 렌트비를 하향조정했으니 (평균 주당 30-40불) 관심있으면 연락달라는 이메일과 문자를 부동산에게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시내 아파트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쉐어하우스들로 운영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인데, 현재 쉐어 하우스들은 계속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만 해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입니다. 쉐어하우스를 정리하는 집들이 정말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한 쉐어하우스 운영자는 부동산에서 렌트비를 당분간 절반만 받겠다라던가 두 달간은 렌트비를 받지 않을 테니 계약을 유지하자고 하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렌트비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가 속출하게 되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갚지 못하는 집주인들도 덩달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매물들이 시장으로 나오고 경매까지 금지되면서 자연히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실제 오늘 뉴스에서도 경제위기로 인한 주택 수요감소로 이미 주택매매가 감소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텅빈 멜번의 한인 식당거리 Kimchi Street. 필자 이재호 제공
텅빈 멜번의 한인 식당거리 Kimchi Street. 필자 이재호 제공

 

6. 발묶인 워홀러들

호주 노동시장에서 가장 하위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 노동자)들이 이번 조치들에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많은 이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은 정부의 보조금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한국으로 귀환인데, 많은 나라들이 외국인 입국 금지 혹은 공항폐쇄를 하고 있다보니 한국행 비행기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비행기를 예약해도 취소되는 일이 허다하고 취소가 되어도 환불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설사 티켓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공항에서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없으면 아예 탑승을 시키지 않아 공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경우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들 중 상당수가 쉐어비도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멜번 한인 단톡방에서는 매일같이 걱정과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들, 환불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들, 공항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워홀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한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전세기를 동원하여 자국민들을 안전하게 본국으로 소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워홀러들이 귀국할 수 있도록 비행기편을 마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호주 워홀러들이 귀국할 수 있도록 비행기편을 마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소를 하고있는 저는 매일 매일 청소중단 통보를 받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유입원이 될 수 있는 저희의 방문이 두렵기도 하고 손님들도 경제적 타격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줄어들고 있는 일보다 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정부의 발표를 보면 완전한 락다운(전면 통행금지)까지 염두해두고 시민들의 충격을 고려해서 며칠 간격으로 제제를 강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아마 한두 주 내로 필수 사업체(병원, 식료품점, 주유소 등)를 제외한 모든 사업체의 활동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말 더 무서운 것은 이 제제가 1달이 될지 1년이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호주 총리는 이 상태가 6개월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확진자 205명, 사망자 0명인 뉴질랜드는 이미 4단계 락다운을 발표하였고 필수업종을 제외한 모든 사업체의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북반구 나라들은 6월 이후 따뜻해지면 바이러스가 사그러 들것으로 예측하지만, 남반구에 위치한호주와 뉴질랜드는 6월부터 겨울이 시작되어 더 어려워 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좌우 위아래 어디를 보아도 좋을 만한 소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위기에 강한 한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전쟁도 IMF도 극복한 바로 그 한국사람입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 위기를 잘 이겨낼 것입니다. 다들 어려우시겠지만 한국에서 잘 극복하시기를 이 먼 곳 호주에서 기원합니다

종종 호주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멜번 오지랖

*필자 이재호는 호주에서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어전문 유튜브 채널 '멜번 오지랖'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