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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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 박재용
  • 승인 2020.04.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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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의 과학이야기] 인류에게 섹스의 의미 그리고 '강압적 섹스'에 대한 규범

30억년도 더 전에 지구에 처음 등장한 생물은 단세포 생물이었다 현재의 모든 생물이 그렇듯 이들도 번식과 섹스를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번식과 섹스는 하나가 아니었다. 번식은 말 그대로 자신과 닮은 개체를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을 소홀히 한 종은 자연스레 멸종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섹스를 소홀히 한 종도 다른 종보다 빨리 멸종하여 남아있지 않다. 그럼 그들의 섹스는 무엇이었을까? 간단히 말해 서로의 유전자를 섞어 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일이었다. 종의 유전적 다양성은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서 종의 존속에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였고 이를 소홀히 한 종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다. 이들의 섹스를 전문 용어로 유전자재조합genome recombination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포 분열을 통해 번식했고 접합이란 방법을 통해 섹스를 했다. 이들에게서 둘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하등생물에게는 번거로운 일이었던 섹스

섹스와 번식이 통일된 것은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세포 생물에게선 세포를 쪼개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번식이란 방법을 쓸 수 없었고, 유전자 재조합 또한 세포끼리의 접합을 통해 이룰 수 없어 그를 위한 기관을 따로 만들어야 했으니 이것이 생식기관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섹스를 통한 번식은 그 기회 비용 및 에너지가 생각보다 높아서 더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번식을 하는 예가 꾸준히 나타났다. 말미잘과 산호 등은 출아법이란 방법을 쓰고, 식물들은 가지나 뿌리, 잎으로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영양생식이란 방법을 선호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꺾꽂이가 식물들의 영양생식을 응용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섹스 없이 난자가 그냥 새로운 개체가 되는 처녀생식(단성생식)을 하기도 한다. 동물 중 처녀생식을 하지 않는 건 포유류와 조류 정도뿐이다.

하지만 포유류에게서도 섹스는 개체에게 썩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다. 섹스를 하는 동안 거의 무방비 상태라 천적에게 먹히는 일도 잦고, 수컷은 암컷의 맘에 들기 위해 춤을 추거나 장식깃을 다는 등 비용과 노력이 들었다. 더구나 암컷은 이렇게 낳은 개체를 일정한 기간까지 돌보는 일도 도맡아 해야 하니 개체로선 별 구미에 닿는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본능과 호르몬으로 개체를 어떻게 되었건 섹스로 유도하고 그를 통해 번식을 이루게 한 종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현재도 모든 동물은 어떻게든 섹스를 하고 번식을 한다. 그러나 본능보다는 학습이 더 중요해진 포유류 그 중에서도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에선 섹스는 개체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힘만 든 일이었다. 따라서 섹스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한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에 비해 더 많은 섹스와 그로 인한 번식을 통해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오르가즘에 대해선 이러한 보상 이외의 다른 가설도 물론 있다). 오르가즘을 통한 보상은 이들에게 남아있는 본능과 호르몬과 합쳐져 이들이 섹스를 외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종의 개체를 늘리고 유전적 다양성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물의 '강압적 섹스'는 지위를 확인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렇게 섹스가 오르가즘을 동반하게 되면서 포유동물 특히 유인원에게 섹스는 이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 사는 보노보에게서 이는 여실히 나타난다. 침팬지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모습은 침팬지와 거의 판박이인 보노보는 침팬지가 가진 같은 종에 대한 공격성 대신 우호적 태도가 발달한 영장류다. 이들은 낯선 보노보를 만날 때 이빨을 드러내고 싸우기보다는 섹스하기를 더 좋아한다. 이 때 이들의 섹스는 거의 악수와 같은 것이어서 그저 흉내 내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섹스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는 건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보노보와 같이 서로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낯선 느낌을 지우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이지만 반대로 강압적이고 위계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있다. 침팬지의 경우 강간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 때 강간으로 번식에 성공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 결국 이들의 강간은 자신이 그보다 더 높은 지위라는 걸 확인하는 행위이다. 비슷하게 남극 빙산 주변에선 물개가 자신의 먹이인 펭귄을 강간하는 사례도 있다. 이 또한 번식이 목적이 아니다. 단순한 본능도 아니다. 펭귄을 강간하는 물개는 다른 더 나이든 물개의 강간을 학습하고 그를 따라 한다. 이들 또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암컷 물개와 섹스하지 못하는 일종의 한을 푸는 행위다결국 이런 강압적 커뮤니케이션은 일종의 폭력이고 타자에 대한 배제이기도 하다. 집단 따돌림이나 폭행, 살인과 마찬가지로 강간 등의 성폭력 또한 동물 세계에선 강압적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하는 보노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섹스를 이용하는 보노보.

 

여기에서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또한 섹스를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만약 섹스의 목적이 번식에 한정되었다면 부부가 일생에 섹스를 할 일은 10~20번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 많은 미혼 청춘남녀가 애써 모텔로 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서도 이미 섹스는 번식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이제 섹스에 유전자재조합이라는 애초의 역할 외에도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었다. 아니 어쩌면 섹스가 가지는 세 가지 의미, 번식, 유전자재조합, 커뮤니케이션 중 이제 인간에게 있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세 번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이전에는 부부관계에서만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부부건 연인이건 이성이건 동성이건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이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자연스럽게 섹스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섹스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음란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숭고한 번식을 위한 수단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나 기타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것도 섹스의 목적이 오로지 숭고한 번식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유류에게서도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 사이에선 동성애가 성행한다. 이들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섹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하지만 사람은 동물과 달리 강압적 커뮤니케이션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합의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이성적 사고를 하고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누구도 타인의 동의 없는 강압적 성행위를 해선 안 된다. 동성애가 범죄가 아니라 성폭력이나 성착취가 범죄인 것은 서로간의 동의가 없고, 일방의 강압적 행위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범죄에는 처벌이 필요하고,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이는 격리시켜야 한다,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공범자인 돈을 내고 가입한 이들 전원에 대한 합당한 그리고 무관용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소피아 헨슨의 강간 재현 작품 중 일부. 출처: huffpost.com/entry/sophia-hewson-rape-representation_n_57444612e4b00e09e89feafb
소피아 헨슨의 강간 재현 작품 중 일부. 출처: huffpost.com/entry/sophia-hewson-rape-representation_n_57444612e4b00e09e89feafb

 

또한 모방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어려서부터 성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필요하다. 단순히 피임방법이나 성인이 되기 전에는 성행위를 하면 안된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섹스는 평등하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의 평등은 동성과 이성의 섹스가 서로 다른 층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도 있지만 성행위에 참여하는 주체가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섹스는 참여하는 자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이해를 높이며, 기꺼이 서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라는 그 원칙을 교육해야 한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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