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연동형'이 '48.1cm'와 무슨 상관인가

[김수민의 선거제도체크] 투표용지 길이에 집착한 정치권과 언론

  • 기사입력 2020.04.10 08:09
  • 최종수정 2020.04.10 08:25
  • 기자명 김수민

“이번 총선에 참가하는 정당은 41개이며 그 가운데 비례대표 선거에 참가하는 정당이 무려 35개나 되는 것으로 하여 정당투표 용지의 길이는 선거역사상 최고인 48.1㎝를 기록하게 되었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개표를 자동투표용지분류기로 하지 못하고 100% 사람이 직접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기성정치권에서 마구잡이 선거판을 벌려놓은 것을 기화(핑계)로 남의 팔매에 밤 줍기 하듯 별의별 형형색색의 정당들이 다 생겨나 권력잡기에 벌떼같이 달라붙고 있는 것” “말이 선거판이지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면 개판, 난장판”.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가 지난 4월 7일 발표한 논평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뛰는 격」의 주요 대목이다. 자동투표용지분류기가 아무 쓸모도 없는 북한이 남한의 긴 투표용지에 대고 험담을 퍼부었다. ‘별의별 형형색색의 정당’이 흉이 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의 차원은 다른가. <조선일보>는 「北도 비웃는 48.1cm 투표용지… "선거판이 아니라 난장판"」이라며 북한 매체의 비웃음을 인용하며 긴 투표지를 비웃었다.

 

투표용지가 긴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정당을 설립하고 선거에 참가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 자유다. 오히려 한국의 정당법과 선거법은 각종 장벽으로 이것을 가로막아왔다는 것이 진실이다.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광역시나 도에서 정당 지부를 창설할 수 있으며 이것이 5개는 모여야 정당을 만들 수 있다. 필자는 4년 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만들고 싶다던 시민과 ‘창당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사실을 알리는 즉시 그는 창당을 포기했다. 한국은 게다가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방정당(Local Party)이나 정당끼리 연합해서 만드는 정당도 인정되지 않으며, 복수 정당에 이중으로 가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당체제가 단층이며 경직되었다.

선거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기탁금을 납부해야 하며,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10% 미만의 득표를 하는 후보자는 선거비용 보전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 총선 지지율이 2% 미만인 정당이 자동으로 등록이 취소되고 그 당명을 다음 총선까지를 포함한 기간동안 다시 쓸 수 없다는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아 선거 이후 겨우 존립이 가능하도록 보장했을 뿐이다. 여기에 기호 순번제도까지 다수정당이 유리하도록 채택되어 있다.

투표용지가 크거나 복잡한 것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 전세계 다수 국가는 지지하는 정당에 기표하는 동시에 자신이 선호하는 인물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후보자 이름까지 들어가니 투표용지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사실상의 전국 단일지역구인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권역을 나눠서 선출하는 스웨덴도 1)정당명과 후보명이 모두 기재된 투표용지 2)특정정당을 의미하는 투표용지(이것을 그냥 집어넣으면 그 정당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며, 여기에 후보명을 기입할 수 있다) 3)손으로 정당 및 후보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한 투표용지(스웨덴은 입후보자가 아닌 사람의 이름을 기입해서 그 사람을 당선시키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스웨덴 투표자들이 후보자 외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적는 이름으로는 ‘해리 포터’가 있다) 등 세 가지 버전의 용지를 투표소에 비치하고 있다.

네덜란드 투표용지.
네덜란드 투표용지.

 

‘48.1cm’를 기화로 정당 활동의 자유를 대범하게 비웃는 논평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 투표지의 원인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찾는 거짓 선동도 잇따르고 있다. 특정 기사를 예시할 수 없을 만큼 이런 진단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투표지가 길어지는 것이 아무 흠결이 되지 않거니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참가 정당 증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는 정당투표에서 3%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정당만 참가한다. ‘진입장벽 3%’는 정당투표 시행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준연동형 시행으로 달라진 점은 3%를 넘긴 정당이 가져갈 의석이 예전보다 더 늘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예전엔 3%를 얻어봤자 1~2석만 가져갔지만, 이제는 더 많이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창당을 해볼까?” 이런 심산으로 임하는 정치세력이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 ‘3% 진입장벽’은 결코 쉽지 않다. 총선에서 처음 정당투표가 실시된 2004년 이래, 3% 대 득표율을 올린 정당은 많지 않다. 2008년의 창조한국당(3.80%), 2012년 자유선진당(3.2%)이 있을 뿐이다. 두 당 다 2007년 대선에서 각각 문국현, 이회창(출마 당시는 무소속)이라는 후보를 내서 4위, 3위 득표를 했다. 전성기에는 저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던 정당들이고, 자유선진당의 경우 지역 기반(충청권)도 있었다.

3% 문턱 앞에서 주저앉은 정당을 보자. 2008년 진보신당(2.94%), 2004년 자유민주연합(2.80%). 고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라는 스타정치인을 가진 진보신당도 창당 직후 치른 총선에서 좌절을 했었고, 고 김종필 전 총리가 지휘했던 자민련도 비례대표 의석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보수 기독교단을 밑바탕으로 만든 기독 계열 정당도 번번이 비례대표 배출에 실패했다.

네덜란드 투표용지.
네덜란드 투표용지.

 

진입장벽 3%는 그대로... 호들갑 떨어온 건 정당이 아니라 언론

결코 쉽지 않은 ‘3%’를 두고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견해도 선거개혁운동에서 곧잘 제출되었다. 여기에는 ‘독일은 5%나 되고, 스웨덴은 4%다(해당 선거구에서 12% 이상 득표하면 그 선거구 의석 배분에는 포함)’라는 반론이 있고, ‘비례성이 가뜩이나 낮은 한국 선거제도에서는 진입장벽이라도 낮춰줘야 한다’는 재반론이 있다. 전국단일선거구 비례대표제인 네덜란드에서는 아예 진입장벽이 따로 설정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앞으로 더 꾸준히 논의할 일이지만, 현재의 진입장벽을 그대로 두고 벌어진 ‘48.1㎝ 투표지’를 조소하며 준연동형을 비난하는 담론이 지속된다면, 진입장벽을 낮추거나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늘리는 다원주의적 정치개혁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준연동형으로 인한 기대효과도 없고 진입장벽도 그대로인데도 여러 소수정당이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위에서 기술한 이치를 알지 못해 ‘헛물’을 켠 경우다. 둘째, 아무 기대 없이 지속적인 활동과 홍보를 위해 투표지에 이름을 올린 정당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준연동형 비례제와는 무관하며, 2014년 헌재 판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셋째, 언론이 유난을 떠는 바람에 ‘준연동형 도입으로 소수정당 원내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가 정설로 통용되는 걸 보며, 소수정당이 ‘유권자들의 심리가 바뀔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요컨대, 긴 투표용지를 비웃는 여러 언론이야말로 지금까지 비례대표 출마 정당의 수를 더 늘리는 데 합세했다는 이야기다. 다수 언론은 긴 투표지만이 아니라 비례대표 투표지에 1, 2번이 없는 현실, 즉 ‘위성정당’도 비판하고 있다. 이런 언론이라면 더더욱이나 ‘준연동형이 긴 투표지를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위성정당은 준연동형의 효과를 없애는 꼼수다. ‘준연동형 때문에 정당이 난립한다’는 주장이 맞다면, 위성정당을 계기로 여러 정당들은 출마를 포기해야 맞다.

현시기에 언론이 짚어야 할 현실은 따로 있다. 유권자들은 이미 과열된 공천경쟁을 목도했다. 정당간 경쟁보다 정당내 경쟁이 더 뜨거운 것이 한국 정치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당선가능성이 급증하는 구조 속에서 본선거가 가진 힘은 약화된다. 유권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또한 공천 자체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지지층으로 편입되지 않은 유권자들을 지나치게 의식해 무리한 컷오프가 남발될 수 있다. 심지어 이것은 최근 며칠 사이에도 ‘막말 후보’를 걸러내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당 스스로 판단한 후보는 거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표를 더 얻거나 덜 잃는 방법이기도 하기에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선거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물’뿐 아니라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수도권 접전지를 의식해 최근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외치고 다니고 있다. 이것은 종부세 강화를 찬성한 지지층을 동요케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진보적인 시민이 통합당 지지쪽으로 옮겨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을 지지할 의사가 희박했지만 종부세 완화에 혹해 민주당에 투표하기로 한 사람들도, 만에 하나 선거 뒤 민주당이 다시 입장을 바꾼다면 실망과 환멸을 겪을 것이다.

 

1등만 뽑는 선거제도가 '정책 회피' 선거문화 만들어

어느 언론이나 이번 선거에서 정책과 공약이 실종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런지는 성찰하지 않는다. 1대1 대결을 부추기는 선거제도,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가 핵심 원인이다. ‘실점을 덜하는 쪽’이 유리해진 탓에 정책경쟁은 회피하고 ‘누가 공천받느냐’에 가장 큰 무게가 실린다. 반대 사례를 들어보자.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는 선거제도에서 다당제가 안착이 되었을 경우, 정책 제시에 소홀한 정당은 상대적으로 지향이 비슷한 다른 정당에게 지지층을 빼앗기게 된다. 일단 선거 과정에서 정당은 소신을 분명하게 하고, 그 다음 정권을 구성하거나 국회에서 논의할 때 여러 정당이 모여 절충안을 만들게 된다.

한국은 이와 반대다. 정당간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지지층은 ‘잡아놓은 물고기’이고 선거에서는 그 이상을 더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무리한 방법이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양대정당 중심의 정당체제는 선거 이후 실제로 정책을 구현하는 데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한 정당이 골수 지지층 중심으로 치달을 경우 이 정당은 외연 확장을 포기한 셈이니까, 상대 정당 역시도 ‘우리도 지지층 중심으로만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다.

반면, 한 정당이 외연확장을 시도하면, 그 상대정당도 밀리지 않기 위해 외연확장을 시도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책적으로 타협은 쉬워진다. 하지만 이 절충은 각자의 지지층을 도외시한 채 이뤄질 수 있으며, 특히 이렇게 타결된 정책에 대해 국민 반대가 높다면 더 큰 문제가 된다. 한국 정치에서는 개인정보3법,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몇몇 사회경제정책들이 상당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양당의 타협으로 시행된 사례들이 쌓여 있다.

이번 총선의 문제는 역대 최장 길이의 투표용지가 아니라, 역대 총선에서 연이어 나타났던 폐해들이 반복되거나 확대·강화되었다는 데 있다. 아직도 한국 선거제도를 설명하는 주요 단어는 ‘준연동형’이 아니라 ‘소선거구제’나 ‘저비례성 선거제도’다. 언론은 이를 얼마나 말하고 있는가.

김수민   sumin-gumi@hanmail.net  최근글보기
2010~2014년 구미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정당에서 지역 실무, 선거본부 대변인, 홍보 책임자를 경험했다. 현재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을 진행하며 KBS 1라디오, SBS CNBC, K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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