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은재 '혈서 투혼' 진짜 맞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4.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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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 국어 사전은 '제 몸의 피를 내어 쓴 글씨'라고 정의한다. 주로 결의를 다질 때, 결기를 내보이기 위해 혈서를 쓴다. 이은재 한국경제당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킨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해 혈서를 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세간에서 혈서 자체가 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튜브 이용자 콩****은 “글자도 틀렸지만. 하다하다 이젠 혈서도 구라를 치네. 손가락 깨무른 척. 피색깔도 저렇게 허접할수가. 참 허접스럽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또다른 이용자 한**은 “손가락 깨무는 척에 순간 눈 튀어나올 만큼 뿜었다. ㅋ ㅋ ㅋ”고 적었다.

뉴스톱은 혈서가 사실인지 팩트체크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은재 의원측에 부상부위 사진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 혈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혈서" 주장했으나 현장에 있던 매체는 시사포커스TV 뿐

이은재 한국경제당 대표는 1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사수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이 대표는 준비해 온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참석이 확인된 매체는 보수성향의 시사포커스TV 뿐이다. 연합뉴스 기사를 시작으로 많은 매체들이 '이은재 혈서'란 제목의 기사를 썼지만 혈서는 이은재 의원측의 주장일뿐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유일한 증거물인 시사포커스TV 영상을 살펴보자(5분부터). 이 대표는 당 관계자가 “지금으로부터 혈서를 쓰겠습니다. 준비해주십시오”라고 하자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뒤 미간을 찌푸리면서 허리를 숙여 왼손에 들고 있던 붕대로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동여맨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 여러분입니다. 함께 싸워주십시오.”라고 미리 인쇄된 현수막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 붕대를 감은 손가락으로 글을 적었다.

잠시 화면이 편집되고 이 대표는 당 관계자가 가져다주는 종이컵에 붕대를 감은 손가락을 넣었다 뺀 뒤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윤’자와 ‘석’자를 적은 뒤 글씨가 잘 써지지 않자 재차 종이컵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붕대에 적신 뒤 다시 글씨를 적었다. 완성된 글자는 ‘윤석렬 사수’.

이은재 의원이 손가락을 깨무는 모습. 시사포커스TV 유튜브 화면 캡처.
이은재 의원이 손가락을 깨무는 모습. 시사포커스TV 유튜브 화면 캡처.
이은재 의원이 수행하는 여성이 가져온 종이컵에 손가락을 담그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화면 캡처.
이은재 의원이 수행하는 여성이 가져온 종이컵에 손가락을 담그고 있다. 시사포커스TV 유튜브 화면 캡처.

 

"모잘라", "아까징끼", "색이 왜 이래" 의문의 발언들

동영상으로는 이 대표가 손가락을 깨물고 ‘혈서’를 작성하는 일련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손가락을 깨무는 장면도 굉장히 작위적이고, 당 관계자가 미리 준비한 액체가 담긴 종이컵을 가져다주는 점도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첫 글자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미리 준비한 액체를 손가락 끝 붕대에 적셔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5분 28초 이은재 의원이 "모잘라"라고 말하자 수행여성이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다. 5분 42초엔 영상에 나오지 않는 한 남성이 "아까징끼"라고 말한다. 아까징끼는 과거 빨간약으로 불렸던 포비돈 요오드의 일본말이다. 이은재 의원이 혈서에 피 대신 '빨간약'을 사용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5분 46초엔 한 남성이 "색깔이 왜 이래"라고 말한다. 피색깔이 진하지 않게 나와 한 말일수도 있지만 '빨간약'의 색깔이 누렇게 나오자 이를 지적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수의 매체들이 이 대표의 퍼포먼스를 보도했다. 대부분 ‘혈서’라고 보도했다. 상당수 언론사들은 이 대표가 윤 총장 이름을 ‘윤석열’이 아닌 ‘윤석렬’이라고 잘못 썼다는데 주목했다. <대검 앞 손가락 혈서 쓴 이은재..'윤석렬' 이름 오자로 쓰기도 (중앙일보)>, <최강욱 "이은재, 윤석열 이름도 모르면서 웬 사수"…혈서에 '렬' 비아냥(뉴스1)>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혈서 퍼포먼스를 확인한 언론은 없었다. 대부분 언론은 연합뉴스를 받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빨이 부딪히지 않았는데 피가 저렇게 많이 났다고?

통상 혈서를 쓸 때는 피가 떨어지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붕대를 감은 손가락에 미리 받아 놓은 무언가를 적셔 글씨를 쓰는 것은 흔치 않은 방법이다.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이 지난해 1월 지역  현안의 해결을 요구하며 혈서를 쓸 때도 맨 손가락으로 썼다. 김 의원은 문구용 커터를 이용해 손에서 피를 냈다. 

동영상을 확인해봐도 이 대표가 손가락을 깨무는 시늉을 할 때 이가 맞부딛치지 않는다.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가 깨무는 시늉을 하면서 새끼 손가락이 몸 바깥쪽을 향하도록 손목을 돌리면서 손을 떼어낸다. 손가락이 입에서 나온 뒤에야 미간을 찌푸리면서 약간 입을 닫는다. 동영상으로 나타나는 이 행위만으로 이 대표의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은재 한국경제당 대표가 보내온 손가락 사진.
이은재 한국경제당 대표가 보내온 손가락 사진.

뉴스톱은 한국경제당에 이 대표 혈서의 진위를 확인했다. 첫번째로 돌아온 회신은 붕대를 감고 있는 손가락 사진이었다. 의료진의 처치라고는 볼 수 없는 조악한 모습이었다. 뉴스톱은 한 치의 의혹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국경제당에 붕대를 풀고 찍은 손가락 사진을 요청했다. 하지만 4월 13일 오후 3시까지 한국경제당은 회신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혈서를 쓸 정도로 절박한 심정을 가졌다면 국민들이 보내고 있는 의심어린 눈초리를 사그라들게 할 수 있는 설득력있는 증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거짓 혈서 논란을 일으켰던 블랙 코미디의 인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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