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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사카 사요 "인생은 조작된 이미지의 나를 부수는 일의 반복"[홍상현의 인터뷰]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히로인 아카사카 사요

치카우라 케이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히로인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아카사카 사요를 처음 본 것은, 3년 전이다. 도쿄대에서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학생들의 웨이보 계정을 통해서였다. (웨이보는 미사용자에게 사용자가 업데이트한 콘텐츠를 공개하지 않는다) 패션모델로써 정점을 찍던 시절 그녀의 프로필이 일본어판 위키피디아가 아닌 바이두바이케(百度百科)에 소개되어 있는 이유도 그녀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곳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 아카사카의 인지도는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을 열거하면, 그녀는 2014년 9월이듬해 5월, 《엘르》(차이나) 패션무비에 등장했고, 2015년 8월에는 로레알(차이나)의 CF에 주인공이 되었다. 어쩌면 한국의 인구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 한 번 이상 그녀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필자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을 것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저 수많은 유명인들처럼.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에게 SNS란 톱모델로서 철저하게 ‘기획된’ 이미지를 뒤집어 가는 ‘전복의 장’이었다. 이른바 ‘팔리는 이미지’도, ‘여간한 용기 없이는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이미지’도 거침없이 내걸었다. 그렇게 나날이 견고해질 수도 있었을 스테레오타이프에 집요하게 스크래치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해 이맘때쯤 그녀의 배우 데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후 필자의 의식을 지배한 것은 두 가지다. 우선은 ‘안도감’이었다. 그녀는 ‘깜찍하고 말끔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메이저스튜디오의 ‘공산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날것의(raw)’ 느낌을 추구하며 ‘업계의 룰’을 거부하고, 그런 이유로 감독이 회사를 운영해 번 돈을 고스란히 제작비로 털어 넣은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 출연하기로 했다. 다음은 ‘기대’였다. 치카우라 감독이 온몸을 던져 쌓아올린 무대에서 보게 될 ‘가공되지 않은’ 그녀에 대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한 달 전, 취재협조를 요청해, 상영회보다는 일찍 스크리너를 볼 수 있었음에도, 그 짧은 기다림이 고통스러웠다. 결국 9월 7일 진행된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에 지인의 참석을 종용했다. 이튿날 새벽에 걸려온 친구의 만족스러운 음성, 영어단어 ‘리얼리티(reality)’의 알파벳 한 자 한 자가 보석가루처럼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오랜만에 긴 잠을 잤다. 물론 히후 영화를 보고나서의 만족감은 필자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도화되지 않은(non-institutionalized) 눈빛은 아카사카 사요의 가장 큰 무기다. ⓒSayo Akasaka

홍상현: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상하이’다. 유수의 패션매거진인 《소엔》, 《GINZA》 등에서 특유의 보이시한 이미지로 각광받으며 커리어를 쌓다가 느닷없이 상하이로 건너갔다.

아카사카 사요:

당시 친하게 지내던 베이징 출신 친구가 현지에서 론칭한 자기 브랜드의 모델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중국에 가게 되었는데, 일단 SNS 계정부터 만들어 PR에 활용했다. 효과가 기대 이상이더라.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제의도 들어오고 순식간에 일에 속도가 붙었다.

홍상현:

아, 상하이는 그 다음이었나. 아무래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치카우라 케이 감독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착각을 한 것 같다.

아카사카 사요:

상하이에서는 정말 즐거웠다. ’일본에도 이런 시대가 있었나?‘ 하는 느낌. 모든 것이 새로운 분위기 속에 막 서브컬처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의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평등하게 찬스가 있는. 도시도 친구들도 에너지가 넘쳤다.

홍상현: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려면 분위기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다. 제 페이스북 계정에 약 5000명 정도의 친구들이 있다.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인데, 10월 2일 날 친구공개로 《하이바오(HAIBAO)》의 화보를 보여주며 인터뷰를 예고했더니 순식간에 357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미소년 아이돌그룹 멤버 같다"는 평이었다. 대개 이런 인물들은 학창시절 동경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아카사카 사요:

남자 같다는 말을 워낙 자주 듣는다. 중성적이라든지. 별로 의식해 본 적은 없는데, 그냥 이런 얼굴이니까.

홍상현:

물론 그 후 행보도 성공적이었다. 《보그》나 《하퍼스 바자》같은 국제적인 패션매거진을 누비며 활약하는 등.

아카사카 사요:

그렇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반응은 정말 머쓱할 정도였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모델들이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활약상을 나열하는데 쓰는 것과 다르게)

아카사카 사요는 상품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일들을 즐긴다. 사진은 하라주쿠의 벽면광고. ⓒSayo Akasaka

홍상현:

이즈음에서 다른 키워드 하나를 꺼내보자. ‘아카사카 사요’라는 이름이 내게 떠올리게 하는 말은 레벌루션(revolution). 당신의 큰 매력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류의 스테레오타입을 뛰어넘는.

아카사카 사요:

감사하다. 늘 아시아라는 공간 안에서 옥신각신 하지 말고 다 같이 협력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쟁의식이 윤활제 역할을 해서 모두가 발전하는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국경이나 그 밖에 수많은 경계선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일이 훨씬 즐겁다.

홍상현:

어조에서도 기쁨이 드러난다. 한편, 그런 당신의 이미지에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요소가 혼재돼있다. 평생 땅 한 번 밟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화려함과, 거리를 걷다 보면 다운타운의 골목 어디쯤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것 같은 내추럴 함.

아카사카 사요:

종종 저에 대한 주변의 태도 변화를 보며 ‘아,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웃음) 또한 평소에 제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변함없이 저를 대해주는 친구들과 지내고 있다. 에이전시에선 럭셔리한 이미지를 원하지만, 전 보통사람이라서. 까치발을 하다보면 지치니까 보통이 좋다. 또 여행 마니아라서, 현지에서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분위기에 젖어들고는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즐긴다.

홍상현:

지난 5월 홋카이도의 작은 보습학원에서 서른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던 추억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많은 사진을 찍고, 글로 꼼꼼히 기록해 놓은 것이 감동적이었다.

아카사카 사요:

문화복장학원 시절 친구가 홋카이도 출신인데, 낙향해서 예술 활동을 하며 학원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저를 불러주었다. 뭔가 이야기를 해달라기에 제가 해 온 일들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평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무척 즐거웠다. 다같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든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홋카이도의 자연 속에 뛰놀며 공부할 수 있다니, 최고라고 생각한다.

홍상현:

슬슬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치카우라 감독은 당신의 사진을 보자마자 상하이로 날아갔다. 느닷없이 시나리오를 가져온, 아직 데뷔하기도 전이던 신인 감독을 만나 당혹스럽지 않았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직업이지만, 영화에서의 연기는 처음이기도 하고.

아카사카 사요:

마침 그 무렵 제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아트디렉터, 즉, 창작 작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 시기에 치카우라 감독을 만난 거지. 영화라는 미지의 무대 앞에서 조금 당황스럽고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치카우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안감도 걷히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홍상현:

그렇게 스크린에 태어나게 된 하즈키(葉月)는 불체자이며 이방인인 주인공 첸량(여율래 분)에게 마법을 걸어 잠시나마 야마가타(山形)와 허난(河南)에서 이어지던 고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요정과 같은 존재다. 하즈키와 대면한 느낌은 어땠나?

아카사카 사요:

처음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니 ‘일본어를 참 못하는구나’ 싶었다. (웃음)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상대역 여율래(왼쪽)와 아카사카 사요 ⓒCreatps Inc.

홍상현:

특히 반응이 뜨거웠던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를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고 한다. 특유의 몽환적인 미소도 그렇지만 보이스가 무척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별도의 리허설을 거쳤나?

아카사카 사요:

연기를 공부해 두는 게 좋겠냐고 치카우라 감독에게 물었더니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정말 평소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뻤고.

홍상현:

예컨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던 첸량이 사과하자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면서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살짝 볼을 꼬집는 장면처럼? (웃음)

아카사카 사요:

그건 감독님이 요구하신 거다. 꼬집거나 하는 건 초등학생일 때 이후로 처음이라 부끄러웠다. (웃음)

홍상현:

촬영이 1개월 반의 빡빡한 스케줄로 진행된 것으로 안다. 독립영화의 제작환경 상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아카사카 사요:

제가 합류한 기간은 야마가타에서 촬영을 진행하던 2주 정도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정말 즐거웠다. 소풍 온 것 같은 느낌? 헤어와 메이크업도 친구가 담당했기 때문에 아주 편했다. 촬영 분량이 비어 있을 때는 근처의 긴잔(銀山)온천에 가기도 하고. (웃음) 최고였지. 치카우라 감독님의 마음 넓으심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홍상현:

치카우라 감독이 제게 “영화출연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예상대로 대단히 만족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더라.

아카사카 사요:

방금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감독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달라’고 하신 점이 가장 큰 격려가 되었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연기자 생활을 이어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 전 돌아가신 키키 키린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홍상현:

그리고 보니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서른 줄에 접어든다. 이미 국제적으로 다양하게 활약해 왔고, 두 군데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의 히로인으로 성공적인 연기자 데뷔까지 마쳤는데.

아카사카 사요:

두근두근한 느낌으로 서른을 맞는다.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줄곧 도쿄에서만 지낸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것을 꿈꿨다. 문화나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계속 미지의 세계를 보고, 그것을 영상이나 행위예술의 형태로 표현해보고 싶다.

그렇게 몇 살이 되더라도 ‘제로(Zero)’인 나 자신에 머물러 있고 싶다.

아카사카 사요의 연출로 사진작가 이소베 아키코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fruits pin up girl>. ‘어린 시절 혼자 집에서 놀던 기억을 재현해 보았다’고. ⓒSayo Akasaka

홍상현:

마지막 키워드는 ‘토털 아티스트(total artist)’다. 연기자라는 단어 하나로 당신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모델 외에도 아트디렉터, 사진작가 등 폭넓게 활동하며 영상제작까지 하고 있다.

아카사카 사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화복장학원에 다니면서 3년 동안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다. 뭔가를 창조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렇지만 줄곧 ‘옷’이라는 것으로 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표현방법을 모색해왔다. 그렇게 영상이라는 장르에 도달하게 된 것이니 필연이라고 할까. 영상작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보여주고 싶은 것, 모두를 아우를 수 있기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 일단은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만들어보고 있다.

홍상현:

살면서 모든 일에 결론을 내야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이대로 끝내버리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아 한 가지만 질문을 더 해야겠다. 오늘 대화에서 가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톱모델 아카사카 사요’라는 화제가 등장했던 타이밍, 또한 가장 텐션이 올랐던 것은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서 당신이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최근 하고 있는 영상작업에 대해 언급할 때였다.

결국 당신이 추구하는 바는, 패션업계에서 소비되는 것 같은 조작된 환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진정한, ‘실체로써의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으로 봐도 되겠는가?

아카사카 사요:

그렇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일의 반복. ‘자신이다’, ‘이거다’ 싶더라도 다시 부숴버리고. 그렇게 부숴버리다 제로가 된 뒤에도 다시 솟아나는 무엇인가를 진정한 나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이 좋아하니까, 유명하니까, 세상의 기준에서 가치가 있다거나 같은 거 말고, 나한테 뭐가 중요할까, 또한 그 나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가운데, ‘이것이 진정한 나’라는 생각이 드는 대상을 표현하고 싶다.

최근 진행한 <풍령>에는 아카사카 사요 외에 중국인 사진작가 옌저우바오, 메이크업 아티스트 구마자키 신야 등이 참여했다. ⓒSayo Akasaka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필자에게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인 <풍령(風鈴)>을 소개해주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모두 같은 한자로 쓰며 같은 의미를 갖는 타이틀. 유트브의 영상이 시작되는 순간, 필자는 온종일 홀로 빈 방을 지키던 아이 시절, 썩 좋은 동무였던 만화경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몽유하듯 고찰(古刹) 처마 밑을 지나는 바람의 결을 좇아가다, 야나카(谷中)의 오래된 골목 어귀에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그녀의 나른한 음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면서 친구를 만들기도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진정한 친구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은, 이제까지의 세계에 만화경 속에서처럼 반짝거리는 빛이 더해지는 느낌이지요. 이런 마음을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왠지 언어로 풀어 설명하기 힘들만큼 벅차오르는 감정.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강요된 환상’의 파도를 가르며, 상상력의 편주(片舟)에 몸을 싣고 ‘리얼 이미지’로의 항해를 계속해갈 그녀의 건투를 빌며 이 글을 맺어야겠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으니까.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쓰고 있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으로, 현재도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다. 번역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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