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갈아넣는' 건 4차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8.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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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에 벤처 붐이 있었다면 요사이는 스타트업 붐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 불안정한 고용을 양산한다는 점은 흔히 간과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 그리고 예상되는 바로 스타트업 대부분은 확률적으로 실패합니다.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쉬하르 가쉬(Shikhar Ghosh)가 2004년에서 2010년간 벤처 캐피털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스타트업 기업 2000개를 대상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10개 중 3~4개는 완전히 실패했고, 나머지 3~4개는 투자금은 건졌고, 남은 1~2개만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는 벤처 캐피탈의 입장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지만 벤처캐피탈에서 투자도 받지 못하는 기업이 받은 기업의 열 배에 달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100개의 스타트업이 시작하면 그 중 1~2개 정도가 성공할까 말까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거죠. 물론 미국의 사례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미국보다 더 힘들지요. 

Photo by Alex Kotliarskyi on Unsplash

그런데 그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해 사회나 정부가 바라는 바 중 하나는 고용을 늘리는 것입니다. 100개 중에 99개가 망하는데? 망할 가능성이 99%인 곳에 취업을 하라고? 그것도 10년 뒤에나 망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하고 5년 이내 망하는데? 만약 본인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이렇게 불안정한 스타트업에 취업을 하려 하진 않을 터지요. 그럼에도 정부가 스타트업을 장려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조사한 ‘2016년 벤처기업 정밀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 벤처기업 매출액 합계는 215조 9000억 원으로 삼성그룹 다음이고 현대차그룹보다 60조 원 정도 더 많습니다. 기업 당 매출액 증가율은 7년째 여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보다 높습니다. 고무적인 통계지요. 또한 고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벤처기업 종사자 수 합계는 72만 8000명으로 전 산업 종사자의 4.6%에 해당하는데 기업 당 종사자 수는 중소기업 평균 종사자 수의 5.8배에 해당합니다. 2017년까지 신규 고용 예상은 3만 명을 웃돈다고 합니다. 이는 정부로부터 벤처 인증을 받은 기업에 대한 통계이며 아직 인증받지 못한 혹은 영원히 벤처 인증 받지 못할 여타 기업들-스타트업을 포함하지 않은 것입니다.

매출로도 만만찮은 성과를 내고 고용 효과도 높습니다. 더구나 앞으로도 더 고용하겠다는 의지도 돋보이죠. 그렇지 않아도 청년 실업 문제로 골치 아픈 정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혹은 벤처기업에 입사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2000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박우성, 노용진 연구위원의 발표한 ‘벤처기업 인적자원 관리의 특성과 과제’(책<디지털경제와 인적자원> 챕터 5) 에 따르면 256개 벤처기업 9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금에 대해서 39.8%가 복리후생은 36.4% 노동시간에 대해선 33.1%가 불만족을 나타내었습니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각각 17.2% 21.9% 19.0%였다. 이직의사가 없다고 밝힌 사람은 오직 9.1%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사 대상의 98%가 노조가 없었으며 29.8%만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벤처기업 인적자원 관리 특성과 과제>에 실린 벤처기업 근로자의 직무만족도.

실제 2000년 5월 2일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최초의 벤처기업 노조가 멀티데이터시스템에서 4월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임직원 22명 중 14명이 모여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임금 수준을 보면 수습 3개월은 40만 원선, 수습을 마치면 55만 원, 입사 2년차 65만 원인데 기본급은 60% 정도. 시간외수당 휴일수당, 기타 법정수당은 전혀 없었습니다. 거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연월차도 없고, 일상적 연장근로가 관행이라 10시 이전 불퇴, 월요일 출근 토요일 퇴근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스타트업 혹은 벤처 기업의 노동자들은 기시감이 들 것입니다. 어, 그 때도? 그렇습니다. IMF 직후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건 벤처밖에 없다며 벤처로 21세기를 선도하겠다고 했던 그 때도, 테헤란로의 사무실이란 사무실마다 벤처기업이 들어차고 눈먼 돈이 벤처로 마구 흘러들어가던 시절, 그 벤처에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고용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빌딩은 일하는 노동자로 밤늦게 불을 밝혔고, 그 이면도로에선 들어온 투자금으로 먹고 마시느라 불야성을 이루었죠. 그리고 2017년도 여전합니다. 물론 이전보다 이면도로 유흥가는 덜 합니다만.

 

2013년 IT노동조합이 전국의 IT노동자 102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간 평균 57.3시간 일을 하지만 시간외 근로수당을 받는 비율은 10%선이었습니다. 특히 농협정보시스템의 경우는 이런 상황의 끝판왕을 보여줍니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2년 여간 개발자로 근무한 양 모씨의 경우 야근으로만 4525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한국 연간 평균 노동시간 2116시간의 두 배이며, 주간으로 환산하면 77시간, 일주일 중 5일로 계산하면 하루 15.4시간 일한 셈이죠. 결국 폐렴진단을 받아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냈고, 결핵성 폐농양 초기 진단을 받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게임업체는 ‘구로의 등대’라고 불립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해서 사옥의 불이 꺼지질 않는다는 뜻이죠. 2016년 11월 이 회사의 직원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습니다. “발병 전 12주 동안 불규칙한 야간근무 및 초과근무가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발병 4주 전 1주간 근무시간이 78시간, 발병 7주 전 1주간 89시간의 근무 시간이 확인되었다.“는 겁니다. 1주일에 78시간, 89시간 근무면 대체 얼마나 일한 걸까요? 하루에 12시간씩 토, 일까지 일해도 82시간입니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닌 거죠.

이런 것이 소위 게임업계의 크런치 모드입니다. 크런치 모드란 ‘게임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 활동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저녁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요일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2월부터 석 달 동안 넷마블과 관련 계열사 12곳에 대해 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63%가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을 했으며, 44억 원의 연장근로수당 또한 미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초장시간 노동도 힘든 판에 수당도 떼먹었다는 이야기죠.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2017년 8월 4일 넷마블은 야근 및 주말 근무 금지 등 일하는 문화 개선안을 도입해 시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넷마블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사실 회사 사정 어렵다고 그러면 안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임업계에선 아주 잘 나가는 회사입니다. 2017년 5월 상장 되자마자 시가총액이 엘지 전자를 앞질러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은 3조 원대 주식부호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출처:정의당 트위터

이런 크런치 모드가 넷마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게임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1,2년 된 일도 아니고 계속 지속된 일입니다. 사람을 '갈아 넣는' 크런치 모드와 비슷하게 방송업계에선 디졸브(dissolve)란 용어를 씁니다. 디졸브는 원래 한 화면이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화면이 점차 나타나는 장면 전환 기법인데, 방송 현장에선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 아주 잠깐 눈을 붙인 후 다시 다음날 현장에 투입되는 노동 과정을 묘사하는 용어로 쓰인답니다. 비슷한 일들은 패션업계에서도 일어났으며, 대학의 연구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패션업계의 이름난 디자이너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문하생을 착취하다 언론에 폭로되고, 대학의 연구소에서 석사나 박사과정의 연구원들에게 제대로 된 페이를 지급하지 않고 지도교수가 떼먹는 파렴치한 짓들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술로 전 세계를 호령하면 뭐하나요? 자사의 에어컨을 설치하는 노동자들을 하청으로 떼어내고 비정규직으로 값 싸게 부려먹는 이들이 무슨 산업혁명을 한다고 폼을 잡는가 말입니다. 에어컨 설치 기사들이 살인적 스케쥴로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할 새 없이 2층, 3층 난간에 기대어 에어컨을 설치하다 추락사하는 일이 매년 발생하는데 삼성, LG가 어떻게 초일류기업입니까? 2016년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에어컨 설치/수리, 통신 케이블 노동자 사망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4명, 2015년 5명, 2016년 6명(2016. 9. 7. 기준)이 사망했습니다. 이중 10명이 추락에 의한 사고입니다. 안정장비 미착용이 표면적인 이유이나 ’50분에 한 건 씩 밀려드는 일감을 소화하려면 안전하게 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삼성이나 LG전자의 직영정규직이 아닙니다. 서비스 자회사의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란 굉장히 복잡한 신분입니다.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은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스마트한 경영 방식이라 여기는 거지요. 흔히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고용시장의 유연화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들 혁신의 아이콘으로 우러러 받드는 애플의 스티브잡스도 마찬가지였죠. 아이폰은 전 세계에서 팔리는 모든 스마트폰의 수익률 90%를 가져갑니다. 아이폰이 이렇게 엄청난 마진율을 자랑할 때 그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다 연쇄적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2010년 18명의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을 시도하고, 그 중 14명이 사망하면서 폭스콘은 ’자살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매년 십여 명이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2012년엔 노동자 150명이 공장 옥상에서 처우 개선을 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나선 끝에 임금을 올려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 건 폭스콘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폭스콘의 매출은 2005년 210억 달러였고, 2015년엔 6배가 커져서 1360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2016년엔 일본의 샤프전자를 인수했고, 2017년엔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회의 시간에 공개 질책을 당하고, 서약서를 읽어야 했습니다. 이 회사가 노동자의 자살에 대한 대책으로 들고 나온 것은 건물 벽에 대형 그물을 설치하고, 기숙사 창문에 쇠창살을 설치해서 투신을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해질 노릇이지요.

 

스티브 잡스는 2010년 ”폭스콘은 노동 착취 현장이 아니라 공장이다. 그것도 식당과 영화관까지 갖춘 공장“, ”자살 시도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40만 명에 달하는 공장 직원들의 수를 감안하면 미국 전체 자살율보다 낮다“고 말했습니다. 폭스콘이 노동자를 쥐어짜서 만든 낮은 공급가가 애플의 이윤의 원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애플의 최고 목적으로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를 쥐어짜 주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21세기 대기업들의 당면 목표인 거지요.

 

이들이 이제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주 52시간이면 주 5일 8시간 일하고도 12시간을 더 근무해야 하죠. 즉 매일 정규시간외 근무를 2시간 너머 해야 가능한 노동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이게 모자라다고 근무 탄력성을 키워달라고 하지요. 대체 일주일에 얼마나 일해야 이들의 성에 찰까요?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바쁠 땐 밤 10시까지 일하고 가끔 날밤도 새고 주말에도 일하게끔 해달라는 거죠. 물론 추가 수당 없이 말이죠. 대신 회사 일없을 때 놀아란 거지요. 회사가 바쁘면 노동자는 개인의 일상을 모두 회사에 바치고, 회사가 일이 없을 때 놀라니 이건 회사의 노예가 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런 양아치가 어디 있나요? 회사 일이 많을 때 직원 늘릴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든 공짜로 일 시켜먹을 생각만 하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고용불안이 더 심해지죠. 11월 13일 이철희 의원실 주최로 열린 'IT노동자 직장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는 충격적인 증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IT스타트업에서 2년반동안 용돈으로 15만원 받았다" "미니선풍기 샀다는 이유로 맞았다" 등 직장 갑질 및 노동착취의 다양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자본가의 문제는 게으르거나 혁신적이지 못하거나, 혹은 열정이 없거나, 창의적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자본가는 부지런합니다. 스타트업만 그런 것이 아니죠. 대부분 고용한 직원들보다 부지런합니다. 직원들이 휴가를 가도 자신은 일을 하고 직원들이 퇴근해도 자신은 일을 하고, 주말에 직원은 출근하지 않아도 자신은 일을 하지요. 끊임없이 회사의 발전을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그러면 됩니다. 직원들에겐 정해진 근무시간에만 열심히, 창의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하라고 해야 합니다. 왜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직원들에게, 임금을 줄여가며 강요하나요? 이런 일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노동자의 혁명‘을 부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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