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⑬ '링컨에 대한 찬사'가 '링컨의 자기 자랑'으로 와전된 전말

  • 기사입력 2020.04.29 10:43
  • 최종수정 2021.01.27 18:29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⑫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⑬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역경은 대부분의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라”

(Nearly all men can stand adversity, but if you want to test a man’s character, give him power)

- 에이브러햄 링컨

 

용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로 알려져 있다. 진정 위대한 인물은 고난의 풍파를 버텨낸 인물이 아니라 권력의 무게를 견뎌낸 인물이라는 의미다. 링컨쯤 되는 위인이 아니고서야 인격을 발가벗기는 권력의 마수 앞에 요령부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링컨이 되지 못한 정치인들을 꾸짖는 말로 언론에서 곧잘 인용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반기문 전 총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꾸지람을 들은 바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중앙일보 김환영 기자의 책 <곁에 두고 읽는 인생 문장>에서도 발견된다. 영미권에도 링컨의 명언으로 퍼져 있다. 미국의 우익 비영리단체 ‘TRUSA(Turnig Point USA)’가 페이스북에 ‘큰 정부론’ 비판 포스팅을 올리며 위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실상

링컨의 말이 아니다. 링컨이 직접 이 같은 말을 했다는 기록이나 증거가 없다. 해외의 독립 팩트체크 미디어 ‘스놉스(Snopes)’‘쿼트 인베스티게이터(Quote Investigator)’ 등에서는 19세기 중엽 활동한 미국의 연설가 겸 작가 로버트 잉거솔을 원 출처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로버트 잉거솔은 1883년 1월 16일 워싱턴D.C.의 어느 연단 자리에서 링컨에 대해 강의할 연사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위대한 웅변가와 그저 그런 연설가의 차이를 알고 싶다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과 에버렛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같이 읽어보세요. 하나는 가슴에서 우러난 것인데 다른 하나는 그냥 목소리 뿐이지요…(중략)…만약 어떤 사람의 밑바닥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세요. 누구나 역경(adversity)을 견딜 수는 있지만 오직 위대한 한 사람만이 성공(prosperity)을 견딜 수 있습니다. 자비의 측면에서가 아니면 결코 권력을 남용하지 않은 것이 링컨의 위업입니다”

로버트 잉거솔이 1883년 연설 내용이 담긴 신문 기사. 현재 링컨의 명언으로 알려진 문구의 원문이 실려 있다.
로버트 잉거솔이 1883년 연설 내용이 담긴 신문 기사. 현재 링컨의 명언으로 알려진 문구의 원문이 실려 있다.

보다시피 권력과 시련에 대한 위 문장은 링컨의 말이 아니라 링컨에 대한 잉거솔의 말이다. 비슷한 문구는 잉거솔의 저작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위 연설을 한 같은 해 4월 출간한 종교간행물 <유니티(Unity)>, 1895년 발행한 <에이브러햄 링컨, 강의>, 잉거솔 사후인 1902년 출판된 <로버트 G.잉거솔 선집> 3권 등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경을 이겨낸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권력을 줘봐라. 이것이 가장 확실한 테스트”라는 구절이 담겨 있다. ‘링컨의 말’이라는 식의 표시는 없다.

한편에는 이 명언의 원문이 영국의 역사가이자 사회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의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잉거솔의 것보다 40여년 앞선 1841년 출간된 칼라일의 대표 저작 <영웅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에는 “역경(adversity)은 종종 인간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백 명 있다면 성공(prosperity)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라는 구절이 있다. 표현에 차이가 있으나 ‘시련보다 시련 이후 쟁취한 권력을 통해 영웅의 면모가 드러난다’는 함의와 ‘성공(prosperity)’등의 키워드가 유사하다.

토머스 칼라일 '영웅숭배론' 캡처.
토머스 칼라일 '영웅숭배론' 캡처.

링컨의 말로 알려진 이 ‘권력 명언’은 링컨의 것이 아니다. 19세기 중후반 영국과 미국의 지식인 토머스 칼라일과 로버트 잉거솔이 명언의 저작권자다. 칼라일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역경과 성공, 영웅’의 관계를 표현했고 잉거솔은 비슷한 표현을 빌어 링컨을 수식했다. 잉거솔의 ‘링컨 찬사’는 이후 1930년대 무렵부터 신문을 통해 링컨의 ‘셀프 자랑’으로 와전된다. 이는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링컨의 문장으로 전승되었고 원작자 잉거솔은 잊혀졌다. '링컨 명언'의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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