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입장 밝혀라" 자신감에 찬 문재인 정부의 일본 다그치기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5.13 13: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정부가 12일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과 입장을 5월말까지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상 최후 통첩입니다. 지난 3월에 열린 제 8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서 양국이 해법을 찾지 못한 뒤 428일 청와대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면서 제기한 사유를 우리 정부가 모두 해소했다며 수출규제 원상회복 조치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정부가 기한 내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하거나 세계무역기구(WH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일본에 수출규제 입장 밝히라 요구한 정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코로나19로 더 꼬인 한일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3개 품목 수출규제를 발표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세가지 였습니다. △한일 정책대화가 중단됐다,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가 미흡하다, △한국의 수출관리 조직 인력이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중 한일 정책대화 이슈는 지난해 1236개월만에 양국 국장급 공무원이 대화 테이블에 앉으면서 해소됐습니다. 재래식무기 캐치올 통제도 지난 3월 대외무역법 개정을 통해 명문화했습니다.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선 산업부에 무역안보정책관 신설하는 안을 의결한 바 있습니다. 수출관리 심사 인력도 이미 대폭 늘렸습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해야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이 한국 정부와 관계개선을 할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35일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14일 대기와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중단 등 입국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정치적 조치'라 판단하고 다음날 상응 조치를 내렸습니다. 310일에 화상회의로 한일 양국이 제8차 정책대화를 개최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을 하기로 했다는 원론적인 합의만 했습니다.

어제 한국정부의 수출규제 해제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는 적절한 수출관리 관점에서 수시로 평가할 것이란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의 요구와 무관하게 자국의 정책기조에 맞춰 수출규제 문제를 풀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현 상황에서 수출규제를 푼다면 사실상 한국에 굴복했다는 지지자들의 비난에 시달릴 것입니다. 한국과의 코로나19 방역 협력도 안하는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이달말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2. 꿇릴 것 없는 한국의 자신감

일본 정부가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품목은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그리고 불화폴리이미드입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 수입 비중이 92%, 불화폴리이미드는 94%에 달했으며 에칭가스도 44%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국산화를 지난해 8월 선언한 이후 이들 품목의 일본 비중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지난 41일 소부장 특별법 시행날 문재인 대통령은 구미산단의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불화폴리이미드 소재의 국산화에 성공해 일본 제품을 대체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이미 일본이 사실상 수출규제를 푼 상태입니다. 에칭가스는 중국에서의 수입이 크게 늘어 수입대체선을 찾았다는 평가입니다. 어느 정도 대안을 찾은데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하면 일본 기업도 타격을 받기 때문에 한국이 무조건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본은 비상사태가 이달까지 연장되는 듯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는 한국 정부에 방역 관련 협조요청을 해야한다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으로서는 지난해보다는 일본과의 협상 여건이 크게 개선된 상황입니다. 정부가 일본에 강하게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제반 여건이 한국에 불리하지 않다는 상황인식 때문입니다.

 

3. ‘지소미아 협곡에 다시 들어갈까

정부는 지난해 11월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고 일본과 대화한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당시 지소미아 종료 유예기간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수개월 정도가 될 것이라고 관측됐습니다. 하지만 5월이 지나면 어영부영 반년이 지나게 됩니다. 1년 단위로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이 움직일 시기라고 청와대는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소위 '지소미아 협곡'으로 한국 정부가 다시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지난해에도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놓고 한미일간에 첨예한 긴장이 있었고, 사실상 미국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해 조건부 연장을 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무슨 이유로 갈등을 빚든 지소미아만 유지되면 됩니다. 한국은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결국 한국이 판을 깨는 것으로 비쳐질 겁니다. 지소미아 종료보다는 세계무역기구 제소절차를 재개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해와 한미관계 및 국제정세가 여러모로 변한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당시 정부가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를 선언한데는 북미관계에 대한 고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북미관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 대선 일정으로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며 미국에서 누가 당선되든 원점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3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관계를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도 이런 정세변화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미간 방위비분담금 협상 역시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교착상태입니다. 한미관계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지소미아 종료 검토를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