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가짜뉴스 처벌법’ 국회통과, 복병은 무엇인가

'가짜뉴스 처벌'과 '5.18 왜곡 처벌' 기준은 어떻게 될까

  • 기사입력 2020.05.25 11:40
  • 기자명 이고은 기자

이른바 ‘5.18 가짜뉴스 처벌법(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21대 국회에서 빛을 볼 수 있을지 관심이다.

지난 518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기를 맞아 광주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자들을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출처 : 영화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출처 : 영화 '택시운전사' 예고편 캡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가짜뉴스가 폭주하고, 이에 대한 처벌법이 논의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5.18에 대한 가짜뉴스와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다. 201928일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를 초청해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를 열었다. “종북좌파가 만든 괴물집단”(김순례 의원), “1980년 당시 5.18 사태는 폭동(이종명 의원)라는 망언이 이 공청회에서 나왔다.

이후 해당 망언을 내뱉은 의원들에 대한 징계 문제가 논의되고 진상 규명 논란도 커졌지만, 극우 보수 세력이 유튜브 등을 통해 5.18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졌다. 당해 518문재인 대통령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일침을 날렸다. 

5.18 북한군 투입설의 출발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씨가 2002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 특수부대원이 군중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동아일보에 게재해 주장하면서다. 북한군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전두환이 광주를 진압한 것이 적군을 방어한 것이 되므로, 결국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아 내란목적살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 등이 무죄라는 주장이다.

이에 5.18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지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내란의 수괴인 전두환이 이전에 이런 사실을 주장한 바 없고 20165월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그런 주장을 이후에 들었다고 밝힌 만큼, 지씨의 주장은 애초부터 신빙성이 없었다. 대법원은 2012년 지씨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데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확정했다하지만 지씨의 주장에 구체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지씨의 주장으로 5.18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지씨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었다. 지씨는 이후 5.18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더욱 구체화하며 극우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과거 6차례 이뤄진 국가적 조사에서도 북한군 침투 증거나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에서도 지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나, 5.18에 대한 역사적 왜곡은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왜곡을 막기 위해 20대 국회에서 이미 5.18 가짜뉴스 처벌법이 여럿 발의된 바 있다.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이전에 박광온, 김동철 의원 등이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공청회를 계기로는 더불어민주당과 당시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3당이 함께 5.18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법안에서는 출판물, 전시물, 인터넷, 공연 등에서 5.18을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후에도 관련 법안이 꾸준히 발의되었지만 여야 간 입장 차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9년 여야 4당 공조로 발의된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2019년 여야 4당 공조로 발의된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지난해 국회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 전에 여야 4당이 합의한 5.18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5.18 특별법 개정안 자체에 있다기보다, 국회 임시회 개원 문제를 두고 벌어진 여야 간의 첨예한 줄다리기 때문이었다. 5.18은 또 한 번 정치적 갈등의 소재로 소모되었고, 그에 따라 역사를 둘러싼 왜곡과 날조는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80석 슈퍼 여당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면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없다. 민주당 광주·전남 지역 당선인들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5.18 특별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또한 지난해 극우로 치닫던 모습과 달리 야당의 입장에도 온도차가 나타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망언과 선을 그었고,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며 화해의 제스처도 취했다.

이로써 ‘5.18 가짜뉴스 처벌법의 무탈한 국회 통과가 점쳐지고 있으나, 기류가 조금씩 바뀔 가능성도 엿보인다. 521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내 처리의 뜻을 밝히면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올해 안에 처리되느냐 아니냐 이런 논의 방식이 문제라며 기한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하면 안 된다고 대응했다. 여야 간 갈등 없이 대승적 합의 아래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을 예고한다.

 

 

사실상 의석수로 따진다면 여당이 5.18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야당 입장에서는 여당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법안 처리에 순순히 따라줄 수 없다. 스스로 존재 이유를 저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당이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과거와 같은 극우적 행위에 대해서는 선을 긋더라도, 향후 입법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당의 실력 행사를 빌미 삼아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명분을 지키되 야당으로서의 존재감과 실리를 챙기고, 여당의 실책을 계기로 여론의 반전을 꾀하겠다는 야당의 정치적 계산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여당의 ‘5.18 가짜뉴스 처벌법은 거여 의석의 21대 국회가 성공할 수 있을지 내다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서 볼 관점은 사안이 가짜뉴스 처벌법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서부터 가짜뉴스 처벌법을 현실화하고자 꾸준히 노력해 왔다.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 규제라는 측면에서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5.18 관련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은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왔다. 이해찬 대표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짜뉴스 규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던 문재인 정부 초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달리, 지난해 취임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가짜뉴스 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21대 국회 개원과 더불어, 정부 여당이 가짜뉴스 규제의 딜레마 속에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받는 이유다.

이고은   freetree@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5년부터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2016년 '독박육아'를 이유로 퇴사했다. 정치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고 온라인 저널리즘 연구팀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아이 엄마로서 아이키우기 힘든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알리는 일에도 열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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