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이파리에서 열매가 열렸다? 확인해보니...

진딧물과 벚나무 잎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자연현상

  • 기사입력 2020.05.25 11:46
  • 최종수정 2020.05.25 12:14
  • 기자명 선정수 기자

"벚나무 한 그루에 이상한 물체가 가득 달려 있어요. 벌레도 아니고 열매도 아니고 이상한 것이 있으니 확인 좀 해 주세요."

21일 오후 뉴스톱에 독자제보가 날아 들었다. 위치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야산 등산로에 심어놓은 벚나무에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양천구에서 날아온 독자 제보. 등산로 벚나무 이파리에 이상한 물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날아온 독자 제보. 등산로 벚나무 이파리에 이상한 물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날아온 독자 제보. 등산로 벚나무 이파리에 이상한 물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있다.
이파리를 떼어놓고 크게 찍었다. 제보자는 "밟아보니 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제보를 받은 뉴스톱은 즉시 검토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에게 식별을 의뢰하고 다음날 현장 방문 취재 일정을 조율했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던 중 늘 하던대로 놀이터에 들렀다. 불과 몇 주 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이었는데 이젠 꽃은 간데 없고 버찌가 열렸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다가 갑자기 괴물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하는 마음에 살펴봤더니 역시나... 그 괴물체가 동네 놀이터에도 있었다.

기자가 사는 동네에도 괴물체가 벚나무 이파리에 매달려 있었다.
기자가 사는 동네에도 괴물체가 벚나무 이파리에 매달려 있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현장 검증에 들어갔다. 잘 드는 칼을 꺼내들고 괴물체가 달려있는 이파리를 몇개 땄다. 만져보니 이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촉감이었다. 직관적으로 동물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체를 갈랐다.

괴물체를 반으로 쪼개보니 속엔 진딧물 약충(어린벌레)와 날개 달린 성충이 가득 들어있었다.
괴물체를 반으로 쪼개보니 속엔 진딧물 약충(어린벌레)와 날개 달린 성충이 가득 들어있었다. 꼬물꼬물한 흰 가루 같은 물체는 약충이 벗은 허물이다.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정체는 바로 '사사키잎혹진딧물'이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 괴물체는 '사사키잎혹진딧물'이 벚나무에 기생하면서 생겨난 벌레혹(충영)이다. 사사키잎혹진딧물은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이다.

이 진딧물은 벚나무 가지에서 알로 월동하며 4월 상순에 부화해 잎이 될 새눈의 뒷면에 기생한다. 진딧물 애벌레가 달라붙은 벚나무의 잎은 흡즙 자극에 의해 기생부위가 몸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며 잎 표면은 주머니모양의 벌레혹을 형성한다. 벌레혹은 벚나무 잎 조직이 변형돼 만들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딧물이 벚나무 잎의 비정상 생육을 유발하는 것이다. 벌레혹은 약 20일 동안 부풀어 오르며 뒷면에 뚫린 구멍이 있다. 벌레혹 내에 정착한 암컷 성충이 낳은 약충은 약 1주일이 지나면 성장을 완료한다. 성충이 또다시 번식을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벌레혹 내부는 황색의 약충, 성충과 백색의 탈피각(허물 벗은 껍데기)으로 가득하게 된다.

5~6월이 지나면 진딧물은 주변의 쑥에 달라붙어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이 진딧물은 쑥의 잎 뒷면에 달라붙어 여름을 나고 10월 하순이 되면 날개 달린 성충이 돼 다시 벚나무 가지로 이동해 알을 낳는다. 알 상태로 겨울을 난 진딧물은 봄이 오면 부화해 또다시 새 잎눈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산림청 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정종국 연구사는 사사키잎혹진딧물에 대해 "벌레혹 속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리는 방식의) 뾰족한 화학적 방제법은 없다"고 말했다. 나뭇가지 위에서 알 상태로 겨울을 나기 때문에 지푸라기 등으로 나무 줄기를 감싸놓는 '잠복소'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나방 애벌레가 잠복소 안에서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기는 하지만 진딧물의 천적인 거미나 무당벌레가 들어가 겨울을 나기 때문에 해충 구제 효과보다는 천적을 없애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들 눈에 보기 흉할지는 몰라도 나무에 미치는 피해는 미미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벌레혹은 진딧물이 다 날아가버리면 잎에서 떨어져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광합성을 하는 잎 조직을 갉아먹는 나방류의 애벌레보다 나무에 끼치는 피해가 덜하다는 설명이다.

산책을 하다가 벚나무 이파리에 위 사진처럼 이상한 것이 다닥다닥 붙어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고 '진딧물이 만들어 낸 벌레혹이야'라고 산책 동료에게 설명해주자.  벌레가 잎을 자극해 은신처를 만들어내는 신통방통한 자연현상이라고 말이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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