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그대론데, 서울시 '감염병 용어'는 인권침해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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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그대론데, 서울시 '감염병 용어'는 인권침해 역주행
  • 선정수 팩트체커
  • 승인 2020.06.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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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르스'보다 퇴보한 2020년 '코로나19' 언어순화 정책

<서울시, 자가격리 무단 이탈자 즉시고발 ''원스트라이크아웃제''> 결연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섬뜩한 느낌도 준다. 지난달 7일 서울시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자가 제멋대로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 적발되면 단박에 고발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잠깐. 서울시가 2015년 발표한 다른 정책을 살펴보자. <메르스 용어 순화어 사용 캠페인>이다. 당시 서울시는 "00번 환자, 슈퍼전파자 등과 같이 환자를 객체·물화시키는 비인간적 용어를 개선하고, 긍정적이고 친화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메르스 용어 순화어 사용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2015년 메르스, 서울시 "비인간적 용어 개선하겠다"

서울시가 다듬어 쓰겠다고 한 용어는 모두 11개이다. 00번 환자, 무단이탈자, 격리조치, 격리해제자, 슈퍼전파자, 1:1모니터링, 24시간이동전담반, 메르스신고전화, 메르스행동요령, 코호트격리, 음압병실 등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가 다듬어 쓰겠다고 했던 용어들. [출처: 서울시 보도자료]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가 다듬어 쓰겠다고 했던 용어들. [출처: 서울시 보도자료]

 

서울시는 "용어 순화는 그간 시민이 받았을 불쾌감이나 메르스 환자와 가족이 받았을 사회적 낙인감을 줄이고, 메르스와 관련된 어려운 용어를 친절하고 배려하는 표현으로 개선하여,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메르스를 극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5년이 지난 2020년 또다른 감염병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서울시는 순화어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체크해봤다.

 

◆2020년 코로나19, 비인간적 용어순화 학점은 'C'

우선 환자를 객체·물화시키는 비인간적 용어로 지목된 단어부터 점검해보자. 서울시 홈페이지 검색결과 '00번 환자'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엔 '00번째 확진환자'라는 다듬은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번호를 매기는 것이 의미없을 정도로 확진자들이 늘어나면서 00번째 확진환자라는 표현도 찾아보기 어렵다.

'슈퍼전파자'라는 표현도 서울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엔 슈퍼전파자를 '다수전파환자'로 바꿔 쓰기로 했지만 이번 코로나19 관련해 서울시 홈페이지에선 '다수전파환자'라는 표현도 찾아볼 수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는 '격리조치'라는 용어를 '외출제한조치'로 바꿔쓰기로 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도 여전히 '격리조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 보도자료]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는 '격리조치'라는 용어를 '외출제한조치'로 바꿔쓰기로 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도 여전히 '격리조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 보도자료]

 

하지만 '무단이탈자', '격리조치', '격리해제자'라는 용어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무단이탈자'의 다듬은 말인 '임의이탈 시민'과 '격리조치'를 대체하려했던 '외출제한 조치'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격리해제자'라는 용어 대신 쓰겠다던 '일상복귀 시민'도 마찬가지로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1:1모니터링'은 전혀 검색되지 않았지만 환자를 객체·물화 시키는 비인간적 용어의 핵심이었던 '모니터링'은 그대로 살아남아 'AI 모니터링 콜 시스템' 등에 쓰이고 있다. '메르스 신고전화'는 '메르스 상담전화'로 다듬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선 '코로나19 상담전화', '코로나19 신고전화' 모두 검색이 되지 않았다.  '메르스 행동요령'은 '메르스 행동지침'으로 순화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선 여전히 '시민행동요령'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순화대상 용어였던 '메르스행동요령'은 코로나19 사태에 '시민행동요령'으로 바뀌었다. 별로 순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순화대상 용어였던 '메르스행동요령'은 코로나19 사태에 '시민행동요령'으로 바뀌었다. 별로 순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들어도 모를 말... 코호트 격리? 음압병실??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는 '코호트격리'라는 용어를 '병동보호격리'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동일한 집단을 한꺼번에 묶어 격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이를 '동일집단격리'라는 표현으로 다듬었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코호트 격리=병동 격리' 라는 등식이 성립했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요양원 등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집단 감염이 일어났기 때문에 '병동보호격리' 보다는 '동일집단격리'가 더 적확한 표현이 됐다.

음압병실(병상)은 병실(병상) 내부의 압력을 다른 곳보다 낮게 유지해 공기 흐름이 밖에서 안으로 흘러드는 구조로 만들어진 병실(병상)을 뜻한다. 치료 과정에서 생성되는 감염성 에어로졸이 병실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해 감염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많이 언급돼 이제는 널리 알려졌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대중에게 생소한 단어라 서울시는 괄호안에 '감염차단저압력병실'을 함께 표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는 유효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 지침은 왜 지켜지지 않나? 

뉴스톱이 서울시에 '메르스 용어 바로잡기' 정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물었다. 해당 정책을 담당한 시민소통기획관실은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뉴스톱이 '메르스 용어 바로잡기' 보도자료가 배포된 연도와 날짜를 알려주자 그제서야 "파악해 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메르스 사태가 종식되고 정책 입안자가 인사 이동으로 타 부서로 발령이 난 뒤 관련 정책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실 산하에는 국어책임관 업무를 담당하는 시민소통담당관실과 2015년 당시 보도자료 생산부서로 기록돼 있는 도시브랜드담당관실이 있다. 양쪽 부서 모두 정책 지속여부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서울 시정의 최고 책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도 서울시장은 박 시장이다. 메르스와 코로나19 모두 감염병이고 쓰이는 용어도 사실상 같다. 그런데 왜 다듬어 쓰겠다고 했던 '비인간적인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메르스 사태 때는 "환자를 객체·물화시키는 비인간적 용어"였던 단어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는 '인간적''으로 바뀌었을까? 인구 1000만 거대도시 서울시의 책임감 있는 정책 추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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