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현충원 파묘" 주장이 이 시점에 나온 이유는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5.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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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뜬금없이 현충원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발단은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당선인이었습니다. 이 당선인은 김병기 당선인과 함께 지난 24일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2020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행사에 참여한 뒤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친일파 묘역을 파묘하는 법률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래통합당에선 반인륜적 부관참시라며 여당이 앞장서 국론을 분열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후 국가보훈처 직원들이 6.25 전쟁 공훈자인 백선엽 장군측을 찾아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백장군이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가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는 일이 생길까 걱정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중됐습니다. 올해 100살인 백선엽 장군은 대한민국 창군 멤버로서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 전투를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지만 1941년 만주군 간도특설대 소위로 임관해 친일파 논란이 있습니다.

이후 김홍걸 민주당 당선인은 페이스북에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글을 썼고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과 윤상현 의원, 원희룡 제주시자 등이 이를 비판했습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8일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만나 백 장군을 언급하며 6.25전쟁 영웅의 공적에 걸맞은 예우를 요청했습니다. 어찌보면 갑작스러운 현충원 친일파 파묘 논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역사 재평가' 러시

역사 재평가 문제가 여당의 총선 압승 이후 쏟아지고 있습니다. 친일파 현충원 파묘 논란을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사건 재심/재조사, 김재규 재심 추진 등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부마민주항쟁은 40년만에 국가기념일로 재평가됐고, 동학농민운동 역시 혁명 차원에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혹은 저평가된 역사를 재평가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입니다만, 정치적 논란과 국론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4대개혁입법 추진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여당입장에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울 겁니다. 최근 현충원 친일파 파묘 주장이 새 당선인들에게서만 나오고 민주당 지도부나 중진들이 참전하지 않는 것도 이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이 시급한 상황이어서 더욱 조심스러울 겁니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 정치권에선 역사바로세우기 혹은 역사적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반공에서 친일청산으로

전통적으로 보수는 반공을, 진보는 친일청산을 내세우며 상대편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에서는 간첩 사건이 지속적으로 터졌고,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죄로 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과거사진상규명법과 국가보안법 개정 및 폐지 문제를 놓고 진보 보수간 갈등이 있었습니다. 현충원 친일파 파묘는 참여정부 시절의 역사바로세우기의 연장선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 국립묘지에 안정된 사람을 재심할 근거는 없습니다민주당은 이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친일 전력이 있는 국립묘지 안장자 60명에 대해 국가보훈처장 또는 국방부 장관에게 이장 요구권한을 주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여야간 합의가 아니라 일방적 밀어붙이기 방식이 된다면 상당한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친일파 문제는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입니다. 어디까지를 친일로 볼 것이냐의 기준이 없습니다. 백선엽장군의 경우 1940년대 일제 말기에 만주군 간도특설대 소위로 임관했는데모든 일본군 복무자를 친일파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고, 적극적 가담자와 아닌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게다가 만주군 전력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친일파 이장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3. 윤미향 구하기 논란

최근 정의기억연대 회계 불투명성과 횡령 의혹으로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사퇴 압력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여권에서는 '지금 시점에 정의연과 윤미향을 공격하는 사람은 일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토착왜구다'라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수진 당선인의 친일파 파묘 발언은 친일파 청산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여당의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당선인 발언이 의도적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현충원 친일파 파묘 문제가 친일 프레임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친일 논란 유공자 중 상당수가 한국전쟁 유공자인 상황에서 민주당이 친일파 파묘를 주장할 경우 친북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고 그리고 부관참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잇습니다. 통합당에 실망해 민주당으로 넘어온 중도보수가 등을 돌릴 수도 있어 반드시 여권에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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