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할인-에픽 무료, 한국웹툰은 어느 길로 가야하나

[기고] 스팀과 에픽, 그리고 한국웹툰의 마케팅 전략 포인트

  • 기사입력 2020.06.05 10:00
  • 최종수정 2020.06.05 11:18
  • 기자명 뉴스톱

2018년 12월 6일 문을 연 디지털 PC게임 유통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가 지난 1월 이용자 1억 명과 매출 7876억원을 넘어섰다. 1년 남짓한 기간만에 시장 독과점 지위에 있는 스팀(STEAM)의 경쟁자로 등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성과이다. 

'연쇄할인마' 스팀 독과점에 균열 낸 '에픽게임즈'

출범 초기에 부정적인 전망과 게이머들의 비판이 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픽게임즈 스토어가 단기 고성장을 이룬 까닭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배포중인 100여 개의 무료게임에 있다. 특히 최근에는 <GTA5>, <문명6>, <보더랜드> 등 유명 게임을 무료로 배포하여 경쟁 플랫폼인 스팀의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까지 에픽의 무료게임 이용자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에픽 게임즈 출범 초기에 무료게임을 받기 위해 가입했던 이용자들이 1년 넘게 이어지는 무료게임 배포로 인해 서서히 유료 구매자로 변화하고 있기도 하다. 스팀이 ‘연쇄할인마’로 불리면서 가격 할인정책으로 시장지배자에 등극했다면, 에픽은 아예 ‘무료배포’라는 더 강력한 정책으로 스팀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애초에 2019년까지만 하겠다던 무료배포가 올해 들어 더 강력해지자 게이머들은 무료정책을 위해 에픽이 투자하는 자금이 얼마나 될지, 또는 저렇게 돈을 쏟아부어도 회사가 괜찮을지 걱정과 호기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략 게임 1개당 평균 단가를 1만원이라고만 해도 100개의 게임 1000만 카피가 무료로 배포되었다면 10조원의 자금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베스트셀러 게임들의 판매량이 1000만장을 넘고, 에픽 회원수가 1억 명임을 고려하면 무료게임은 수천만 장이 배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아무리 에픽이 포트나이트 게임과 언리얼 엔진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 없다. 에픽이 무료게임 배포를 위해 투자한 자금의 규모는 공식적으로 알 수 없지만,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속성을 감안하면 수십조원의 돈을 쓰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지 출처: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구매와 구독, 결정적 차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식은 크게 ‘구매’와 ‘구독’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국내 IPTV의 경우 '구매' 형태가 중심이고, 넷플릭스 같은 해외 플랫폼은 주로 '구독' 형식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구매’는 정해진 콘텐츠의 가격을 지불하고 영구(플랫폼이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소유하는 것인데 디지털 형태의 제품이기 때문에 물리적 실체가 있는 현물 제품처럼 빌려주거나, 중고로 판매하거나, 진열장에 세워둘 수 없다. 비록 다운로드를 받아서 내 PC에 저장했다고 해도 특정 플랫폼에서만 이용이 가능한 방식이라 내 PC에서 소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내가 실제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플랫폼의 계정이고, 그 계정의 라이브러리에 구매한 제품이 존재할 뿐이다.

‘구독’은 일정기간 요금을 지불하고 플랫폼에서 정해놓은 다수의 제품들을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제품을 소유할 권한은 없다. 구매와 마찬가지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계정일 뿐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구매’와 ‘구독’의 방식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와 기간, 가격이 각각 달라진다.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은 서버에 콘텐츠들을 저장해두고 라이브러리를 구축하여 이용자들이 계정을 통해 접속하도록 한다. 구매는 이 라이브러리에서 특정 콘텐츠를 평생 이용하는 것이고, 구독은 라이브러리의 전체 혹은 일부를 정해진 기간 이용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구매는 무기한이지만 콘텐츠를 제한하는 접속권한이고, 구독은 콘텐츠 제한은 없지만 이용기한을 제한하는 접속권한이다. 즉, 구매나 구독이나 사업자 입장에서는 구축 후 유지중인 라이브러리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계정)을 이용자에게 부여하는 방식의 차이에 불과하다.

결국 에픽은 이용자들에게 무료 게임을 배포하기 위해, 해당 게임이 라이브러리의 전체 이용량에서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비율에 대한 가치에 후발주자로서의 프리미엄을 추가한 정도를 개발사에 지급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료로 배포되는 게임은 출시된 지 오래된 구작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무료게임을 이용하기 위해 라이브러리에 접속하는 이용자 수도 적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투자 금액은 훨씬 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픽게임즈 입장에서는 이미 구축하여 운영중인 라이브러리를 유료 판매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무료배포를 해서라도 계정 수를 늘리고 활성화시키는 것이 이익이란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 경우 실제로 늘어나는 비용은 서버 트래픽 증설비 정도이다. 에픽게임즈의 이 같은 전략은 최근 'K웹툰'이라 불리며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한류의 주역을 꿈꾸는 국내 웹툰 플랫폼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갈무리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갈무리

 

국내 웹툰 플랫폼 사용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은?

국내 웹툰 플랫폼은 이용자 입장에서 고비용 구조의 가격정책으로 되어 있다. 웹툰 한 편 보는데 200원 정도 하는데 왜 고비용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구매가격과 수량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 관점에서 유리하게 결합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국내 웹툰의 유료 가격 정책은 ‘기다리면 무료’, ‘미리보기’ 등 주로 대여 형태로 되어 있다. 특정 콘텐츠에 대해 1주일 등의 정해진 기간만 이용이 가능한 ‘기간 제한(구독형)'과 '콘텐츠 제한(구매형)’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이용자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경쟁이 붙어 구매에서 구독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이는 것과 달리, 사업자에게 유리한 두 가지 속성을 결합한 국내 웹툰 가격 모델은 상대적으로 소비자에게는 고비용 구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무료로 웹툰을 보는 독자를 대신하여 유료 독자들이 비용을 부담해 주는 형태이다.

초기 웹툰 시장의 규모가 작아서일 수도 있고 포털이 웹툰을 사이트 유입의 용도로 활용한 관행이 굳어져서 일수도 있지만, 고가의 가격정책 때문에 작품 소재가 자극과 중독성이 강한 일부 장르로 과하게 쏠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어 우려가 된다. 현재까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에픽게임즈의 마케팅 전략이 새로운 글로벌 한류를 꿈꾸는 국내 웹툰계에도 적용되면 어떨까하는 바람이다.

*필자 전병진은 웹툰과 애니메이션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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