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명언 팩트체크]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⑮ 왜곡과 과장 사이, 퍼거슨 명언의 원문

  • 기사입력 2020.06.05 10:05
  • 최종수정 2021.01.27 18:31
  • 기자명 박강수 기자

가짜 명언들이 판 치고 있다. 뉴스톱은 대표적인 가짜 명언을 모아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장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퍼지는데 대체로 정치인과 언론이 앞장을 섰다. 전혀 출처를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들 격언의 진위를 폭로하는 기사 또한 많으나 한번 어긋난 말들의 생명력은 여전히 질기다. 뉴스톱은 시리즈로 가짜명언의 진실을 팩트체크한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

① 중립을 지킨 자에게 지옥이 예약? 단테는 그런 말한 적 없다

② 동의하지 않지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볼테르 발언 아니다

③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선관위도 속은 명언

④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무한도전이 퍼뜨린 가짜 신채호 명언

⑤ 내 옆으로 와 친구가 되어 다오? 카뮈는 말한 적 없는 '감성명언'

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준다? 한국에서만 쓰이는 앤디 워홀 명언

⑦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려진 '악법도 법’ 사실인가 아닌가

대처는 "Design or Resign"이란 말을 한 적 없다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

 늙어서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 포퍼도 처칠도 한 적 없는 말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권력을 줘보면 인격을 안다? 링컨이 한 말 아니다

⑭ 링컨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⑮ 퍼거슨의 '트인낭'은 오역인가

⑯ "케이크를 먹여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

 

 

SNS는 인생의 낭비다.

- 알렉스 퍼거슨

용례

영국 프로축구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前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로, 한국에서 이 문장은 알렉스 퍼거슨 본인보다 유명하다. 지금도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유명인사들의 소셜미디어 구설수를 다룬 기사 수천 건이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있다. 상황에 따라 ‘퍼거슨 1승 추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 SNS에서의 언동으로 곤란을 겪을 때 ‘퍼거슨의 명언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변용이다. 네티즌들은 알렉스 퍼거슨을 ‘만고의 진리를 통찰한 현인’으로 여긴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명언의 배경은 2011년 5월 20일 기자회견장이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축구선수 웨인 루니가 트위터에서 한 팔로워와 벌인 설전이 영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얼마 뒤 기자회견 자리에서 해당 사안과 관련한 질문에 퍼거슨 감독이 의견을 밝히면서 말이 퍼졌다.

퍼거슨 연승행진의 첫 제물이 되어준 웨인 루니의 트윗. 트위터 캡처.
퍼거슨 연승행진의 첫 제물이 되어준 웨인 루니의 트윗. 트위터 캡처.

 

실상

퍼거슨 감독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주장이 있다. 골닷컴의 이성모 기자는 2017년 다음 스포츠 칼럼을 통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이를 정설처럼 받아들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라고 주장한다. 당시 퍼거슨 발언의 원문은 “트위터는 시간 낭비다(Twitter is a Waste of time)”이고 이는 ‘인생의 낭비’와는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실제 퍼거슨 감독의 당시 발언은 아래와 같다.

“이건 책임의 문제입니다. 그들은(프로축구선수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트위터에서 한 말들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에 왜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시간을 어떻게 내죠? 그것 없이도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백만 가지는 됩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읽으세요(기자들 웃음). 진심입니다. 그건 시간낭비예요.

“It's about responsibility. I think they (players) are responsible for their actions, responsible for what they said on Twitter. I don't understand it, to be honest with you. I don't know why anybody can be bothered with that kind of stuff. How do you find the time to do that?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in your life without that. Get yourself down to the library and read a book. Seriously. It is a waste of time."

보다시피 SNS라는 직접적인 지칭이나 ‘인생의 낭비’같은 표현은 없다. 대신 ‘시간 낭비(waste of time)’라는 평범한 영어 표현이 있을 뿐이다. 이를 근거로 이성모 기자는 “시간 낭비를 인생 낭비로 옮기는 것은 명백한 오역이며 뉘앙스가 아닌 팩트 자체를 왜곡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다음부터 누군가 잘못된 인용을 하면 이 칼럼을 보여주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므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라고 말함으로써 독자 여러분이 직접 진실을 바로 세워주길 바란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 기자의 비판은 번역의 엄밀함에 기초한다. 직역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충실한 번역’으로, 의역을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린 번역’으로 정의한다면 ‘waste of time’은 직역했을 때 ‘시간의 낭비’가 되고 의역해도 ‘인생의 낭비’가 되기는 어렵다. ‘waste of time’이라는 표현이 영어권에서 갖는 사회적 뉘앙스는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관용구에 지나지 않는 반면 ‘인생의 낭비’는 한국어에서 그보다 사회적으로 강한 어감을 갖는다. 원어의 뉘앙스를 과장하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기자의 말처럼 “이것은 직역도 의역도 될 수 없다”. 퍼거슨의 발언이 명언이 된 것은 ‘인생의 낭비’라는 비범한 어감으로 옮겨진 덕분이다.

‘waste of time’은 시간낭비라는 뜻에 그치지만 time에는 ‘일생(lifetime)’이라는 뜻도 없지 않다. 메리엄웹스터 사전 온라인 화면 캡처.
‘waste of time’은 시간낭비라는 뜻에 그치지만 time에는 ‘일생(lifetime)’이라는 뜻도 없지 않다. 메리엄웹스터 사전 온라인 화면 캡처.

다만, ‘이 번역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본의를 왜곡했는가’, 혹은 ‘그 왜곡이 중대한가’의 측면에서는 판단이 갈릴 수 밖에 없겠다. 이성모 기자는 퍼거슨이 “나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I don’t have time to do it)”라고 말하는 등 ‘시간(time)’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써가며 의미를 시간에 한정했다고 분석한다. 일단 그가 인용한 문장은 기자회견 영상과 이를 다룬 가디언 기사에 나오는 “그럴 시간을 어떻게 내죠(How do you find the time to do that)?” 부분을 잘못 들은 것으로 보인다. 원문 인용의 오류다.

아울러 그보다 명백한 지점은 퍼거슨의 발언에 ‘시간’이 두 번이나 나오듯 “인생에는(in your life) 그것(SNS)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백만 가지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퍼거슨은 트위터를 인생에 무용한 것으로 봤다’고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은 틀린 해석이고 본래 의미를 왜곡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퍼거슨의 “SNS는 인생의 낭비” 명언은 사실무근의 ‘가짜명언’이나 본뜻을 곡해한 아전인수보다는 원문의 뉘앙스를 과장한 번역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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