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열애설로 정치이슈 덮는다? 주요 사건 확인해보니...

  • 기자명 권성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6.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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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에 연예계 쪽에 마약사건 하나 터뜨릴 게 있다는 이야기가 도니까 그 일하고 섞이면 아주 쉽게 풀릴 수도 있어”

-영화 <부당거래> 중

 

정치권에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예계에서 열애설이 터져 대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음모론이 널리 퍼져있다.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는 이런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 내용이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이런 '음모론적 사고'가 집중됐다. "묻으려고 터뜨린다"는 이런 음모론을 한단어로 압축한 것이다. 군사 독재정권의 3S(스크린, 섹스, 스포츠) 우민화 정책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주장은 상식처럼 받아들어진다. 그런데 정말 사실일까. <뉴스톱>이 정치·경제 사건과 연예계의 사건을 비교해 해당 주장을 검증해봤다.

실제로 몇몇 정치계의 사건과 연예계의 사건의 시점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2015년 3월 23일에는 이명박 정부 5년 간 한국광물자원공사가 해외자원개발 기업 29곳에 일반 융자 형식으로 2800억 원을 빌려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날 이민호 수지의 열애, 장윤주 결혼소식, 류수영-박하선 열애 소식이 등장했다. 네티즌은 이러한 사실을 덮기 위해 언론이 연예인들의 열애설을 터뜨린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다른 사례도 있다. 2015년에는 유병언과 관련한 음모론이 불거졌다. 당시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6월 29일 유병언씨의 마지막 모습이라며 CCTV 영상을 공개했다. 30일에는 “회장님(유병언)은 타살됐다”는 구원파 핵심 관계자의 증언까지 공개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다. 이종석과 박신혜의 열애설이 등장하면서 정부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열애설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일부 유명인도 음모론 확산에 가세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7월 1일은 국정원 국정조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다음날인 2일 원빈-이나영의 열애설이 주목받자 소설가 이외수씨는 "요즘은 연예인 스캔들이 터지기만 하면 또 뭔가 덮을 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고위층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동시 상영되는 바람에 너무 뻔한 수법이다 싶어 이제는 도무지 신뢰감이 안 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글을 작성했다. 음모론과 가까운 의심을 펼친 것이다.

연예계 뉴스와 정치 사회계 뉴스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하는 표. 출처=디스패치
연예계 뉴스와 정치 사회계 뉴스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하는 표. 출처=디스패치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는 <아시나요, 2013?...연예 7대 뉴스에 파묻힌 진짜 7대뉴스>란 기사에서 이런 음모론을 공식화했다. 세간에 '2013년 7대 뉴스'라고 돌아다니는 위 사진은 디스패치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우연찮게도(?) 주요 연예 기사와 시국 사건의 날짜가 겹친다는 내용인데 사실상 이 음모론을 옹호하는 증거로 쓰였다. 그런데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당장 3월 21일 보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김용만, 불법도박 혐의로 검찰조사> 는 21일에 이뤄졌지만 김용만의 불법도박 관련 혐의 조사는 그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21일이 아닌 19일에도 서울중앙지검은 김용만씨에 관한 소환 조사를 했다. 표에서 같은 날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김학의 전 차관 고위층 성접대 거론> 역시 21일 전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됐던 사안이다. 단지 사퇴만 21일에 이뤄졌을 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해당 표에 나타난 사건은 '우연의 일치'나 '진행 중인 사안을 짜집기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된다. 

<뉴스톱>은 사건 확인을 위해서 특정 기간 중 기사화가 가장 많이 된 정치권 사건과 연예계 사건 5개를 통해 검증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단위로 총 4번을 검증했다. 이런 사건은 수개월동안 이슈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건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를 했다. 

 

➀ 2010~2011년 : 천안함 폭침과 서태지-이지아 이혼

2010년~2011년 주요 사건
2010년~2011년 주요 사건

2010년부터 살펴보자.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함미 인양 (2010년 4월 15일), 연평도 포격 (2010년 11월 23)이 있었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 단독 FTA 비준 (2011년 5월 4일), 무상급식 찬반 투표(2011년 8월 24일)도 있었다. 연예계에는 타블로 학력 논란(2010년 6월 7일), MC몽 병역 기피 논란(2010년 6월 30일), 신정환 해외 원정 도박(2010년 9월 7일)이 있었다. 2011년에는 서태지-이지아 이혼 논란(2011년 4월 21일), 지드래곤 마약 논란(2011년 10월 5일)이 있었다. 

2010년초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말 이슈를 장악한 연평도 포격 사건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할 정도의 대형 사건이었다. 3월 26일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 중이던 선원 46명이 모두 숨졌다. 북한이라는 국외변수에 의한 일이기에 통제가 어려웠던 점이 있지만 사건 대처와 조사 과정 부실로 MB 정부는 큰 지탄을 받았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건 발생 이후 사흘 사이 지지율이 51%에서 40%로 11%p가 감소하는 등 여론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MB 정부의 지지율은 일정 부분 회복했으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다시 3.9%p 감소해 다시 40% 초반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주목 받았던 시점에 연예계쪽에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2010년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연예계 사건이 유독 많았다. MC몽 병역 기피 의혹, 신정환 해외 원정 도박 사건, 타블로 학벌 위조 의혹 제기 등이 있었다. 이밖에 서태지-이지아 이혼 논란지드래곤 마약 논란이 있었지만 시기가 일치하는 사건이 없었다. 

 

② 2012~2013년: 지소미아 체결과 원빈-이나영 열애

2012년~2013년 주요 사건
2012년~2013년 주요 사건

2012년에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부정의혹(2012년 1월 5일), 대법원 징용 판결(2012년 5월 24일), 한-일 지소미아 체결(2012년 6월 26일)이 있었다. 이듬해에는 NLL 대화록 유출 논란(2013년 6월 24일), 통진당 내란음모 사건(2013년 8월 28일)이 있었다. 연예계에서는 에이미 마약 투여 사건(2012년 9월), 고영욱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2012년 12월 1일)이 있었다. 비-김태희 열애설(2013년 1월 1일), 조성민 자살 (2013년 1월 6일), 원빈-이나영 열애설(2013년 7월 3일)이 2013년에 있었다. 

2012년은 18대 대선이 있는 특별한 해였다. 정치계에서는 사건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기 역시 정치·경제계 주요 사건과 연예계 사건의 시점이 일치하지 않아 연예계 활용 사건·사고 은폐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2012년은 1월부터 정치계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고승덕 전 의원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이 들어간 봉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고 전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 중 한명으로부터 300만원이 든 봉투가 온 적이 있어서 곧 돌려줬다”고 했다. 

당시 사건으로 지지율 1위를 유지하던 한나라당과 뒤를 추격하고 있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 MB 정부의 레임덕이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해당 사건까지 겹쳐 여당은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연예계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은폐설의 논리대로라면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사건이 발생했어야만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오히려 연예계의 사건·사고는 2012년 하반기에 나타났다. 상반기에는 류시원 파혼(4월) 정도가 전부였다. 2012년 하반기에는 에미이 마약 투여 사건, 고영욱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 2013년에는 비-김태희 열애설,  원빈-이나영 열애설 등이 나온 바 있으나 주요 사건과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후 찬반이 대립했던 한-일 지소미아 협정 체결, 안보 무능으로 지탄받았던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2012년 10월 2일) 때 역시 연예계 사건과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③ 2014~2015년: 세월호 참사와 배용준-박수진 결혼

2014년~2015년 주요 사건
2014년~2015년 주요 사건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2014년 12월 9일)이 있었다. 2015년에는 메르스 첫 환자 발생(2015년 5월 20일), 목함지뢰 매설 사건(2015년 8월 4일), 교육부 한국사 국정 교과서 확정(2015년 10월 12일)이 있었다. 연예계에서는 이승기-윤아 열애설(2014년 6월 7일), 신해철 사망(2014년 10월 27일)이 있었다. 김현중 친자 분쟁(2015년 2월), 배용준-박수진 결혼 발표(2015년 5월 14일), 레이디스코드 교통사고(2015년 9월 3일)이 2015년에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에게 슬픔을 안겨줬다. 실종자를 포함해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들 중 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나던 고등학생이었다. 구조 과정에서 나온 정부의 대처 미숙과 무능은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었다. 탄핵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언급이 나올 만큼 파장은 컸다. 그 뒤 정치계의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은 8월 서울고등법원이 이석기 의원 내란죄를 유죄판결한 사건이다. 고등법원 이후 대법원에서도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통합진보당 역시 논란 끝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정당 해산심판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들이 발생했던 시점 역시 연예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2014년에는 신해철씨의 사망 사건이 논란이 됐으나 정치계의 사건과는 시점이 다르다. 시점이 가깝지 않아 논란을 잠식시키려고 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④ 2016~2017년: 사드 배치와 송준기-송혜교 결혼

2016년~2017년 주요 사건
2016년~2017년 주요 사건

2016년과 2017년에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2016년 2월 23일), 사드 배치 확정(2016년 7월 13일), K스포츠 재단 배후 최순실 등장(2016년 9월 20일), 최순실 소유 추정 태블릿 PC 등장(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2017년 3월 10일)이 있었다. 연예계 사건으로는 조영남 대작 사건(2016년 5월 16일), 홍상수-김민희 열애(2016년 6월 21일), 송중기-송혜교 결혼 발표(2017년 7월 5일), 김광석 타살설(2017년 9월), 조덕제 성추행 유죄 판결(2017년 10월 17일)이 있었다. 

2016년에 알려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존재는 헌정 사상 첫 탄핵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사드배치 확정(2016년 7월), 최순실 등장(2016년 9월), 최순실 태블릿PC 등장(2016년 10월) 등이 주목을 받았다. 연예계에서는 조영남 대작 사건(2016년 5월), 홍상수-김민희 열애 (2016년 6월), 송중기-송혜교 결혼 발표(2017년 7월), 김광석 타살설(2017년 9월), 조덕제 성추행 유죄(2017년 10월) 등의 사건이 있었으나 시기가 모두 엇갈린다. 

 

정리하자면 정치 경제계 사건의 주목하는 여론을 돌리기 위한 ‘물타기’ 의혹은 성립할 수 없다. ➀~④까지 시점을 보면 정치 경제계의 사건과 연예계의 사건은 시점조차 일치하지 않는다. 여론에 큰 파장을 가져올 사건일수록 그 즈음 연예계 사건이 나타나야 하지만 그것도 없었다.  물타기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한국 연예계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연예계만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매체가 있을 정도로 한국 연예계에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매주 누군가는 결혼하고 다른 누군가는 구설수에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전반에 불신이 겹치면 사람들은 근거없이 의심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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