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칼럼] 국치 110년, 자율공간·평화공존·중립화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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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칼럼] 국치 110년, 자율공간·평화공존·중립화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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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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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치 110주년(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ㆍ경술국치)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느 때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세에 위기에 위기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 4월혁명 60주년, 광주민주항쟁 40주년, 분단 한반도의 큰 전기를 마련한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기도 하다. 

당시 망국은 명치유신에 성공하여 구미의 신문명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한 일본이 영국·미국과 손잡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견제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반도가 먼저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임진전쟁(1592년) 7년의 잊을 수 없는 역사적 기억으로 일본에 대한 원한은 깊었지만 근대국가로 등장한 일본의 실상 그리고 그에 따른 일본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엄청나게 덩치가 큰 나라들이었지만 청나라와 러시아는 노쇠한 제국이었던 반면에 일본은 쇄신을 통해 나라를 바꾼 신흥국이었다. 당시 조선이나 마찬가지로 청나라와 러시아도 왕조와 제국의 무능한 신분-관료제에 저항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밑으로부터의 항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침략하려는 영국과 미국의 첨병이 되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한반도를 동아시아 패권의 교두보로 우선 확보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실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왕조의 폐정을 극복하고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는 이중(二重)의 과제를 제기한 동학농민항쟁에 대해 당시 조정과 지배층은 그 에너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진압하는 데만 급급했다. 갑신정변(1884년)의 실패로 일본은 청나라보다 수세에 몰려 일단 조선에서 한 발 빠져 있던 터였는데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며 청 군대가 조선에 들어온 일은 일본에게 놓칠 수 없는 호기였으며, 일제 강점의 물꼬를 터놓은 셈이 됐다. 조선 조정이 1차 봉기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대승적으로 받아들이고 민심을 수습하는 자세를 보이지 못한 것은 기울어가는 왕조의 운명을 가른 패착이었다. 일본군을 끌어들여 제 백성을 도륙하는 조정을 믿을 백성이 어디 있었겠는가. 

분단 70여년이 지난 오늘의 한반도를 망국 당시의 한반도와 비교할 수는 없다. 비록 갈라져 대치하고 있어도 한국과 조선은 망국 당시 무너지기 직전의 조선왕조와는 다른 현대국가들이다. 1950년 국제적 냉전이 한반도에서 열전으로 전개되면서 남북은 처절한 동족상잔전쟁을 치러야했다. 서로 다른 이념에 따라 지난 70여 년 동안 다른 길을 걸어왔어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온전한 통일국가를 세우자는 목표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방법에는 견해가 다르다. 

대한민국은 지난 1960년 4월 민주혁명으로 이승만 독재를 바꾸고 민주주의를 향한 어려운 항쟁 과정을 걸었다. 군사독재의 학정과 양극화 빈부격차의 후유증을 겪었지만 민주시민의식이 성숙되면서 정권교체와 경제민주화, 남북관계의 발전을 인내심 있게 실현해 가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1980년대 말 소련방 해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과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수교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조선과의 수교를 기대했지만 거부당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조선은 핵무장의 길을 걸었으며 그 대가는 제재와 봉쇄였고 그 최종적 목표는 조선의 붕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부터 세계 제2 혹은 제3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한 일본은 본질적으로 ‘戰前 일본’으로부터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한반도 주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할 당시 동맹국으로 출발한 일본과 미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략에 있어서 전후에는 같은 이익을 추구해왔다. 현재 미국의 한반도-동아시아 정책에는 일본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일본의 안보는 한반도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한반도의 정세는 워싱턴보다는 도쿄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것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쳐다보고 있다. 출처: 조선중앙통신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것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쳐다보고 있다. 출처: 조선중앙통신

 

미국의 제재와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라 체제 붕괴의 위기에 직면한 조선의 핵무장은 그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는다. 조선도 자신에 대한 체제위협이 종식되면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남북의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조선이 비대칭적 무장을 보유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남북의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려는 한국도 미국의 간섭과 견제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실현할 수 없다. 오히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갈 정도로 남북관계는 후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남북은 스스로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자율공간의 확대-창출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과 일본이 금 그어놓은 대로 더 이상 대결과 충돌로 나아갈 수는 없다. 우선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제재와 봉쇄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남북의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해야한다. 설령 저촉되는 수준에서도 인도적 부분과 조선의 군사적 안보적 강화에 기여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미국과 조율하여 남북의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식량지원과 어린이영양 원조, 보건·위생 협력에 적극 나서야한다. 코로나19 방역의 협력에 가장 먼저 나서야한다. 이런 문제에 간섭-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보건기구(WHO), 유엔 인권위에 중재를 요청해야 한다. 남북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한국이 이와 같은 노력에 미국의 이해와 협력을 얻으면서 때로는 갈등과 대립까지 감수해나가는 정책이 자율공간을 넓히는 작업이다.

남북이 갖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든지 한반도 자율공간의 확대는 남북의 상호인정과 공존을 가져올 것이다. 상호인정과 공존, 즉 평화공존이 남북의 분단을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인사들에게 과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평화통일로 갈 수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 몇 번 하는 것으로 평화통일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한다고 외세의 간섭이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이 함께 한반도 자율공간을 확대하는 작업에 손발을 맞춰가는 일이, 평화공존하는 일이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다. 

자율공간 확대를 통한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하다 보면 한반도 중립화의 미래구상도 제기될 것이다. 자율공간 확대-평화공존-중립화의 논의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열쇠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이 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격월간 잡지 <독립정신> 7-8월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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