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주 대상은 성소수자가 아니라 비정규직이다

  • 기자명 윤구현
  • 기사승인 2020.07.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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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진다. 길게는 제 2차세계대전 후부터, 짧게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인권기구들의 포괄적 인권법의 제정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별 등의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훈련 등에서 특별한 사람은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진정을 받고 조사를 하며, 결과에 따라 수사의뢰, 시정 권고, 합의 종결 등을 한다. 대부분은 시정을 권고하는데 권고를 수용하는 비율은 90%를 넘는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시정 권고’에 그치지만 차별금지법은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며, 악의적 차별인 경우 ‘2~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부터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해 2006년 안을 만들어 정부에 넘겼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정부안이 발표됐다. 그 후 논의는 다들 기억할 것이다. ‘성적 지향’에 대한 논의만 10여년째 하고 있다. 이때 함께 논의하던 장애계는 2008년 별다른 논란이 없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따로 만들어 시행 중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안을 기초로 정부안을 만들었을 때 예시된 차별 사유 중 ‘성적 지향’, ‘병력’, ‘고용 형태’ 세 가지가 빠졌다. 법제처는 마지막에  ‘~등’을 붙이고 대표적인 차별금지 사유를 명시하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했지만 껄끄러운 것을 뺐다는 뒷 이야기였다.

차별금지법이 제정 되었을 때 ‘성적 지향’이 주된 이슈가 될까?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진정이 몰리고, 시정 명령이 내려지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내려질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매년 발간하는 <2019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보자.

2019년 총 2716건의 차별 진정이 접수되었고 이중 ‘성적 지향’은 20건이었다. 가장 많은 것은 1212건의 ‘장애’였고 사회적 신분(363건), 성별(223건) 순이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논란 만큼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기 때문에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장애’로 인한 차별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더 달라지는 것은 없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적 신분’과 ‘성별’이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재화 등 공급이나 이용’, ‘교육시설 등 이용’, ‘행정서비스 등 제공이나 이용’ 네 가지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행정서비스 등 제공이나 이용’이 없고 ‘성희롱’을 진정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재화 등 공급이나 이용에서의 차별’을 이유로 들어온 진정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건 대부분 장애를 이유로 들어왔고 별도의 법이 있는 ‘장애’를 빼면 전체 진정의 절반은 ‘고용에서의 차별’(752/1504건)이다.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의 대부분(339/363건)은 고용 영역에서 차별이었고 임신/출산(26/31건), 용모/신체조건(15/20건), 병력 (13/30건)에서 고용 차별 비중이 컸다. 성적지향은 스무 건 중 두 건 만 고용에서의 차별이었다.

그럼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적 신분’이 무얼까 궁금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하는 ‘결정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기간제 교원에 대한 맞춤형 복지점수 배정 차별’, ‘оо공사의 청원경찰에 대한 임금피크제 적용 차별’, ‘교육공무직 영양사에 대한 고용차별’, ‘지방공무원 호봉 산정시 민간 경력 차별’, ‘무기계약직 조리사에 대한 임금 등의 차별’,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공가 사용 불허’, ‘기술직군 공무원에 대한 교육차별’,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복리후생 등 차별’, ‘방위병 복무기간의 공무원 호봉과 공무원재직기간 미반영’ 등등이다. 다수가 고용형태, 비정규직 차별 문제이다. 즉, 차별금지법의 주된 대상은 고용형태, 비정규직 문제이다.

 

차별금지법은 ‘시정 명령’을 내리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지원하며 악의적(고의성, 반복성, 보속성, 피해의 내용 및 규모에 따라) 차별이라면 2~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내릴 수 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고용이나 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가해지는 일은 드물고 주로 ‘모욕’이 진정 대상이 될 것인데 집단에 대한 모욕은 손해배상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 법이 배상 기준으로 삼는 ‘재산상 손해’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용’에서의 차별은 손해액 산정이 간단하다.

성적 지향을 문제삼는 것은 대부분 일부 개신교계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교회에서 설교로 동성애를 비판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그렇지 않다. 지난 주 모 시사 방송에 출연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종교계를 만나 종교내의 일은 차별금지법 대상이 아니라고  설득하고 있으나 종교계는 좀처럼 믿지 못한다고 한다(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20. 7. 2.). 그런데 종교 내부의 일이 차별금지법 적용을 받으면 ‘동성애 비판’이 문제가 아니다.

남성만 신부가 될 수 있는 가톨릭에게 성별에 대한 차별을 한다고 시정 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손해배상이 내려질까?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은 일부 개신교 교단은? 여성에게 히잡이나 부르카를 강제하는 이슬람교 역시 차별금지법 적용을 받게 될까? 불교 승려가 용모 차별이라며 두발 자유를 요구한다면? 종교 내부의 일을 개입할 수 있는 법은 아니다.

이 법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차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 나온 40대 아저씨가 나레이터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성별, 용모 차별이 되지는 않는다. 단 합리적 차별이라는 것은 피진정인이 증명해야 한다.

2007년 항공기 승무원의 신장 제한이 차별이라는 진정이 있었다. 인권위는 항공기 승무원은 높은 선반에 짐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 키 이상이거나 팔을 뻗었을 때 일정 높이 이상에 닿아야 하기 때문에 키를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162cm이상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은 맞지 않아 시정을 권고했고 일부 항공사는 이를 수용했고 일부 항공사는 수용하지 않았다.

지원해서 들어온 대학에서 종교 수업을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인 차별이라 판단되었고 일반 기업에서 특정 종교 신자를 우선 채용하는 것은 합리적이라 인정받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대부분의 차별이 없어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13년째 시해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법안과 내용은 거의 같으나 처벌 규정은 강력하다. 차별금지법안은 악의적 차별을 했을 때 2~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으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만으로 처벌 받은 사례는 없고 시정 권고를 따르지 않아 시정 명령까지 받은 사례는 두 건 뿐이고 명령을 따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90%가 넘는 권고 수용률 을 볼 때 대부분의 차별은 잘 몰라서 벌어지고 지적하면 대부분 시정한다. 손해배상 가능성이 있다면 이 비율은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지적하고 시정할 기회를 주는 법이다.

10여년간 우리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논쟁을 해왔다. 정말 해야 할 논의는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승급,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차별금지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이다.

*필자 윤구현은 사회복지사며 간사랑동우회 대표다. 질병관리본부 혈액관리위원회 수혈부작용소위원회 위원,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건강정보분과 위원, 대한종양내과학회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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